오너가 장남 "통합은 명백한 위법 소지" 차남과 연대 시사
OCI그룹과 통합 작업, 장녀 승계 공식화에 반발
국민연금, 지분 6.76%로 4대 주주…캐스팅보트 가능성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 창업주의 장남 임종윤 코리그룹 회장이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 간의 통합 작업에 공개적으로 반발하면서 '남매의 난'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인다. 임 회장은 15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모펀드(PEF)와 손잡고 지분 확보에 나설 계획이 있다"며 "통합은 명백한 위법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차남인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과의 연대도 시사했다. 이에 따라 경영권 분쟁이 현실화할 경우 한미사이언스(한미약품그룹 지주회사)의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의 움직임에 귀추가 주목된다.
앞서 지난 12일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은 한미사이언스와 OCI 홀딩스(OCI 지주회사)의 지분을 맞교환했다. OCI홀딩스가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3%를 갖고, 반대로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이 OCI홀딩스의 10.4%를 갖는 것이 골자다. 통합이 발표된 직후 임 회장은 X(구 트위터) 계정을 통해 "한미사이언스와 OCI 발표와 관련해 한미 측이나 가족으로부터 어떠한 형태의 고지나 정보, 자료도 전달받은 적이 없다"며 반발했다. 임성기 창업주의 장녀인 임주현 사장이 한미약품그룹의 후계자로 사실상 굳어진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국민연금, '캐스팅보드'로 떠오를 수도
양사의 지분 맞교환 이후 한미사이언스의 지분 구조를 보면 최대 주주는 OCI홀딩스(27.03%)다. 임종윤 회장(11.12%)과 임종훈 사장(6.59%)의 지분을 합쳐도 17.71%다. 꽤 차이가 난다. 그러나 임성기 창업주와 생전 각별했던 사이였던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11.12%)이 만약 '형제'의 편에 선다면 합계 28.83%로 엇비슷해진다. 이들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주주는 국민연금(6.76%)이다. '캐스팅 보트'가 될 수 있는 수준의 지분을 가진 셈이다.
2020년 한진칼(한진그룹 지주회사) 경영권 분쟁도 '남매의 난'으로 불렸다. 오너가의 장남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경영권을 놓고 벌였던 분쟁이었다. 조 전 부사장은 KCGI, 반도건설과 '3자 연합'을 꾸려 조 회장과 팽팽히 맞섰지만, 한진칼 지분 2.92%만큼의 의결권을 보유 중이었던 국민연금이 조 회장 편에 가세하면서 40%가 넘는 의결권을 확보한 조 회장의 승리로 '남매의 난'은 막을 내렸다.
국민연금이 '경영 참여'하려면 어떤 과정 거치나
국민연금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철저한 가이드라인에 따라 경영 참여가 가능하다"며 "제1의 원칙은 주주 이익이 가장 우선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만약 경영에 참여하려면 먼저 보유 목적을 '경영 참여'로 변경해야 한다. 현재 국민연금의 한미사이언스 보유 목적은 '단순 투자'다. 단순 투자는 주주총회 안건에 의결권 정도만 행사하는 소극적 참여만 가능하다. 반면 경영 참여는 회사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기금위)가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 여부 및 행사 범위를 결정한다.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탁자책임위)의 검토를 거쳐 기금위가 최종 결정을 내린다. 한진그룹 경영권 분쟁 당시에는 기금위 일부 위원들이 대한항공·한진칼에 대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제안했고, 수탁자책임위의 의견을 반영해 최종적으로 조원태 현 한진그룹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오유교 기자 5625@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