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상명하복 문화·고행, 이젠 사라져
고기·술 무조건 금기 아냐… 사유재산도 가능
타인에 피해 주지 않는다면 죄악시 하지 않아
스스로 깨달음의 길에서 욕망과 멀어질 뿐
궁금하다면 체험해보길, 새로운 세상 발견할 것
과거 적잖은 대중 인식 속에서 출가는 속세와 연을 끊고 산에 들어가 수행에 전념하는 구도(求道)의 삶으로 여겨졌다. 삭발하고, 괴색(壞色) 옷을 입고 생활하며, 속세의 번민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구하는 삶. 대중에게 그런 모습은 무소유와 고행의 삶으로 간주하게 됐고, 경외심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무소유’를 실천했던 법정 스님은 시대의 어른으로 추앙받았다. 대중은 스님의 삶을 긍정했고,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불교는 삼국시대에 처음 승인된 이래 오랫동안 민중의 심리적 버팀목으로 자리해왔다. 부의 화려함 앞에서 초연한 태도를, 국난 앞에서 호국의 힘을 품어냈다. 하지만 물질주의가 만연하고, 기존 가치의 권위가 재검증되는 최근, 불교 역시 여타 종교와 마찬가지로 시대 풍파 속 위기 상황에 놓였다. 여러 설문조사에서 불교는 가장 친근한 종교로 조사되지만, 그럼에도 출가의 당사자가 되기는 꺼리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과거 한 해 500명을 넘기던 출가자 수는 지난해 두 자릿수로 감소했다. 출가를 그간 삶에서 누려왔던 것들의 ‘포기’로 여기며 출가를 포기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불교계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런 내용에 관해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장 범해 스님에게 물었다.
- 출가하는 인원이 많이 줄었다고 들었다.
▲역대 최고 많이 지원했을 때가 2000년 528명이다. 이후 2010년 287명, 2020년 131명으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84명이 출가했다. 20여년 동안 꾸준히 감소했다는 것을 통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출가 연령을 보더라도 과거에는 20~30대 출가자가 가장 많았지만, 이제는 30~50대가 가장 많다. 규율에 따르면 마주쳤을 때 후배가 먼저 선배에게 인사하게 되어 있는데, 이제는 연배만 보고 먼저 인사했다가는 상대가 후배인 경우도 많다.(웃음)
- 스님들 간 규율이 엄격한 편인가. 요즘 OTT 등에서 군기 잡는 스님들 콘텐츠가 주목받기도 한데….
▲30년 이전에는 상명하복 문화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행자 중에는 “여기가 군대나”며 반발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그때는 그런 반발 자체도 ‘에고(자아)’에서 나온 것이라며 극기적인 마음 비우기 훈련을 강요받았다. 당시 성철 스님이란 정신적인 사표가 기준이 됐다. “그분도 했는데 그대들은 왜 못하는가”라는 주장이 정당성을 얻었다. 하지만 이젠 세월이 많이 바뀌었다. 시대와 세대가 바뀌었고, 달라진 세대 경향이 지금 시대를 장악하고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살살할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높은 관문을 세우기보다, 먼저 들이고 이후 행보를 선택하게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 출가를 가로막는 현실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 의지다. 사람이 마음을 먹으면 산이라도 옮길 수 있다. 모든 건 마음 먹기에 달렸다. 100억 부자와 아닌 자의 차이도 그 시작은 100억 부자가 되겠다는 마음 먹기에 있다. 그럼 왜 마음을 먹지 않느냐. 제약이 많다고 느끼기 때문일 테다. 고기도 못 먹고, 술도 못 마시고, 담배도 못 피우고…. 실제로 많은 규율을 지켜야 한다. 예전같이 새벽 2~3시는 아니어도 새벽 4시에는 일어나 예불을 준비하는 등 평범한 마음으로는 지키기 어려운 규율도 있다. 그러나 꼭 출가수행자가 아니더라도 훌륭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단체와 개인이 합의한 규율 정도는 준수할 수 있는 책임과 긍지는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 규율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나.
▲출가를 했다는 건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살겠다는 다짐이다. 그러기 위해 규율이 존재하지만, 이전과 많은 변화가 있다. 고기만 해도 지금은 먹어도 된다. 스님 따라 다르지만, 무엇이 꼭 옳다는 획일적인 기준이 많이 사라졌다. 선택사항이다. 술도 무조건 금기는 아니다. 때와 장소를 가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죄악시하지 않는다. 수백, 수천개의 계율이 있지만,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있다. 상황에 따라 버릴 수 있고, 바꿀 수도 있다. 신도가 마지막 남은 양식으로 국수를 만들었는데 새우젓 하나가 올라갔다는 이유로 안 먹고 돌아가신 스님의 이야기는 상황과 해석에 따라 지계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한다. 선종을 가장 높은 가치로 보는 한국에서는 무조건이 아니라 안목을 가지고 계를 여닫을 수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있다. 이것을 지범개차(持犯開遮) 즉, 가지고 범하고 여닫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부처님께서도 당신의 가르침을 뗏목에 비유하지 않았는가.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넜더라도 건넌 이후에는 뗏목을 버릴 수도 있다는 가르침이다.
- 과거 혜민 스님의 경우 대중 눈높이와 차이가 컸고, 그만큼 부정적 파장이 컸다.
▲혜민 스님의 잘못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 눈높이가 기준이 되다 보니 간극이 컸던 것 같다. 스님도 사유재산을 보유할 수 있다. 사전에 대중과의 소통에 문제가 없었거나 혹은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는 노력이 따라줬었더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 과거 법정 스님은 대중의 큰 존경을 받았다. 다만 이제는 그런 어른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입적하신 지 10여년이 지난 법정 스님이 지금도 회자되는 걸 보면 스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훌륭하셨는지 알 수 있다. 다만 시대는 항상 산을 오르고 내리듯 리듬을 가지고 있다. 법정 스님 같은 어른이 안 계신 것 같지만 지금도 무한 정진하는 스님들이 있고, 언젠가 법정 스님 못지않은 스님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법정 스님께서 수필로 대중에게 친근하게 접근했지만 모든 스님이 꼭 그럴 필요는 없다. 멀리서 봤을 때는 누가 특별한 사람인지 한눈에 알 수 없지만, 자세히 보면 다양한 수행과 기발한 방편으로 교단과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스님이 많이 계시다. 넓게 보면 지금도 희망찬 미래를 향해 약진하는 중이라 생각한다.
- 최근 2권의 출가장려 도서를 출간했다. 출가의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며 출가가 ‘포기’가 아닌 새로운 ‘도전’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포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기혼자라면 혼인 관계나 양육권이 정리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외에는 포기할 것이 거의 없다. 사유재산도 허용되고, 세속적인 욕망의 포기도 율법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출가라는 건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며, 더 큰 깨달음의 길 위에서 욕망은 자연스레 멀어진다. 짧은 인생을 투자해서 영원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면 한 번 해볼 만한 일 아닌가. 소를 희생해서 대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값싼 커피를 고수하면 값비싼 커피를 잔에 채울 수 없다. 자신을 비워내고,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집중해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활동상도 다양해졌다. 최근엔 젊음의 거리 홍대에 선원을 열어서 신분과 분야를 넘나드는 소통이 이루어지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유튜브를 찍는 스님도 있다. 개인의 가치관을 위해서 불교인으로 신분을 바꾸는 것일 뿐 율법으로 자신을 지키면서도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것이 출가인의 삶이다.
- 출가해도 가능해진 것들이 많아졌다면, 신실한 불자와 출가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예를 들어 사법고시에 응시해서 판검사가 되려고 한다고 했을 때, 고시학원에 가는 것을 출가라 할 수 있다. 고시원이나 집에서 혼자 공부할 수도 있지만, 고시학원에서 규칙을 지키며 공부하는 거다. 단체의 구속력이 있어 마음을 지킬 수도 있고 많은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이 고시원의 특징이듯, 출가에는 수많은 장점이 있다는 점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 개인적인 관점에서 더 나아가 대중에게 승려는 어떤 존재인가. 깨달음을 돕는 자들인가.
▲스님이란 이름의 어원이 스승님이라고 한다. 스님은 어찌 보면 지도적인 인사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을 돕는 자다. 배고픈 사람에게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줄 수도 있고, 때로는 고기를 줄 수도 있다. 무소유를 주장했던 과거에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고방식을 가르치는 ‘법보시’ 위주였다. 행복을 개발하는 명상 등에 치중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물질로 돕는 ‘재보시’도 할 수 있다. 명상만이 아니라 다양한 능력을 개발해서 물질로 도우면서 정신적 행복까지 얻도록 돕는 출가인이 찬사를 받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 출가장려를 위해 어떤 노력이 이뤄지고 있나.
▲템플스테이에 상주하는 지도법사의 출가 상담 역할을 확대하고, 출가 전문 사이트를 개발해 연구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연등회, 불교박람회 등 각종 행사 현장에서 홍보부스를 운영하고, 출가 홍보 에세이 출간에도 힘썼다. 17~20세 소년출가자와 20세 이상 청년출가자의 장학 혜택을 마련하고, 동국대 입학-군법사 지원 코스도 선보였다. 지난해에는 전국 규모의 대학생전법단을 조직해 불교동아리 지원, 장학제도 정비 및 장학기금 모금 등 전국에 분포한 대학생들의 신생 활동 기반을 주도했다. 2027년 내 연간 출가자 200인 배출을 목표로 지혜와 역량을 모을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 불교가 추구하는 사회적 역할을 무엇이며, 어떻게 감당하고 있나.
▲부처님께서는 ‘법등명자등명(法燈明自燈明)’이라고 하셨다. “법을 등불로 삼고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며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불교는 소원이나 구원을 비는 종교가 아니다. 불교는 ‘자력종교’다.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면 스스로에게 자신을 구원할 힘이 있음을 알게 된다는 이치를 내포하고 있다. 불교는 그런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고 있다. “모두 와서 보라!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은 가르침이 여기에 있노라!” 하신 부처님 말씀은 이런 가르침에 대한 확신이 있다.
-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 전하고픈 말이 있다면.
▲스님들의 생활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고 불합리한 고행이나 상명하복 체제도 거의 없어졌다. 원하는 만큼 배울 수 있고, 가지고 싶은 만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과거의 개념을 모두 버린 것은 아니다. 무소유를 원하는 사람은 무소유를 실천할 수 있고, 원한다면 신념을 지키며 금욕을 할 수도 있다. 다만 지금은 불교의 신·구(新舊)가 공존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같은 헤어스타일에 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는다는 것 외에 다양한 개성이 허용된다. 관심이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들어와 살아보기를 바란다.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 번 발 담그면 못 나가고 그런 곳이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웃음)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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