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K경남은행에서 발생한 3000억원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횡령사고를 기점으로 지방은행권에 대한 금융감독과 내부통제가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중은행 전환을 앞둔 대구은행에서도 일부 영업점 직원들이 핵심성과지표(KPI) 달성을 위해 허위 문서를 만들어 1662건의 불법 증권계좌를 개설해, 지역사회에 충격을 줬다.
두 사건 모두 본점 차원의 내부통제를 통한 사전예방도, 감독당국의 외부통제를 통한 사후적발도 실패했단 공통점이 있다. 업계에선 지방은행의 느슨한 내부통제 문화, 중앙과의 물리적인 거리차에 따른 관리·감독 소홀 등을 주원인으로 꼽는다.
무늬만 내부통제…15년간 직무분리도 안돼
경남은행 횡령사건을 보면 사고자 이모씨(51)는 입사(1990년) 이후 2007년 12월 부동산금융팀장으로 발령받은 이래 2008년엔 투자금융부 과장, 2010년엔 투자금융부 차장, 2014년엔 투자금융부 부부장, 2021년엔 투자금융2부장, 올해엔 투자금융기획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올해 4월 횡령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대기발령 조치가 될 때까지 약 15년 5개월간 PF 사업을 다루는 동일부서에서 근무한 셈이다.
특히 그는 해당 부서에 장기 근무하며 부동산 PF 대출계약 관리와 함께 대출금의 인출 및 원리금 상환 관리 업무도 수행해 왔다. 다시 말해 자신이 취급한 PF 대출의 사후관리까지 담당하는 등 직무분리조차 돼 있지 않았단 얘기다. 설상가상으로 사고자에 대한 명령휴가제도 이뤄지지 않았다. 명령휴가제란 금융사고 발생가능성이 높은 업무를 하는 임직원에게 강제 휴가를 내리고, 그사이 해당 임직원의 비리·사고 여부를 점검하는 제도다.
여신관리나 사후점검 과정에도 구멍이 많았다. 대출금을 지급할 때 대출약정서에 명시된 계좌를 통해서만 하도록 통제하는 절차도 없었으며, 대출상환시 업무처리 절차도 규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대출 실행·상환 시 이를 차주에게 통지하는 과정도 없었다.
지역에 근무하는 한 은행 관계자는 “제대로 된 내부통제가 이뤄지려면 이를 설계하는 사람, 실행하는 사람, 모니터링하는 사람이 구분돼야 한다”면서 “이런 직무분리가 잘 가동하지 않는다면 위험은 시중은행, 지방은행, 인터넷전문은행을 떠나 어디에든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선 경남은행을 비롯한 지방은행의 전문인력 부족을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지방은행의 전체 인력규모는 은행마다 다르지만 대략 1000~2700명(제주은행 제외) 수준으로 시중은행(1만~1만4000여명)과 큰 차이를 보인다. 서울에 자본시장 역량이 집중된 국내 현실 속에서 연고지서 전문인력을 채용하기도 쉽지는 않다.
지방은행 한 관계자는 “규모에 차이는 있지만, 지방은행도 시중은행이 하는 업무와 프로세스는 동일하게 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인력에 한계가 있다 보니 내부통제 교육 담당자와 대상자가 같아 본인이 본인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웃지 못할 촌극도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다만 금융권에선 인력부족 등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감독당국 관계자는 “최근엔 웬만한 은행이면 고위험 업무인 PF 사업의 경우 통상 현업부서, 리스크 관리부서, 컴플라이언스 부서 등이 프론트·미들·백오피스(Front·Middle·Back Office)의 삼선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 “전문인력이나 조직의 역량 부족으로 이런 삼선체계를 가동하지 못한다면 해당 사업을 하지 않는 게 맞는 것 아닌가”라고 전했다.
지주회사의 통제도 부족했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엔 지주회사의 업무로 ‘자회사의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를 지목하고 있다. 경남은행 건을 보면 BNK금융지주는 경남은행의 내부통제와 관련한 주제에 대해 서면 점검을 해 왔지만, 경남은행이 지주에 편입된 2014년 이후 고위험 업무로 분류되는 PF 대출과 그 취급·관리에 대해선 점검을 하지 않았다. 지주의 경남은행 자체검사에서도 현물 점검을 제외하면 본점의 사고예방 검사 실적은 전무했다.
케이스는 다르나 대구은행의 경우 2021년 다수 증권계좌 개설 서비스를 도입했지만 정작 관련 내규 등 별도의 업무처리절차를 마련하지 않았다. 아울러 증권계좌 개설 실적을 개인 및 영업점 핵심성과지표(KPI)에 반영키로 하면서도 이를 계기로 부당취급 발생 가능성이 있음에도 이를 자점감사 기준 등에 반영하지 않았다. 자점감사는 각 영업점에서 처리한 업무가 규정·지침을 준수했는지 자체적으로 점검하는 것을 일컫는다.
허술한 전산망도 문제…비용·인력도 빡빡
전산시스템의 허점이 잇단 사고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일례로 대구은행 전산망의 경우 고객이 전자서명한 서류를 전산오류 등 예외적인 경우가 아님에도 출력할 수 있도록 돼 있었고, 심지어 이를 타 증권사의 계좌개설신청서로도 이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유독 증권계좌 개설 시에만 담당직원이 고객의 휴대전화 번호를 변경할 수 있도록 운영됐다.
대구은행 사고 직원들은 이런 허점을 이용해 고객 몰래 또 다른 증권계좌를 개설했다. 창구에서 고객이 A증권사의 계좌 개설을 위해 전자 증권계좌개설신청서를 작성하면, 이를 사본으로 출력해 고객 몰래 B증권사의 증권계좌개설신청서를 만들고 이를 전산처리하는 방식을 시용한 것이다.
사례는 상이하지만 경남은행에서 빚어진 대규모 횡령사고 역시 촘촘한 전산망이 구축돼 있었다면 비교적 조기에 발견할 수 있었단 관측도 있다. 지방은행 한 관계자는 “경남은행의 경우 BNK금융지주 편입 이후 통합문제로 갈등이 깊어져 전산망 개선이 더딘 측면이 있다. 전산보다 사람에 의존하다 보니 사고자가 만든 허위 자료가 전산망에 오르고, 결과적으로 검증되지 않게 된 것”이라며 “결국 사고예방이 잘 되고 안 되고의 차이는 전산망이 얼마나 자동화돼 있고 세세한 부분까지 컨트롤 하도록 설계됐는지 아닌지 여부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런 전산망 구축은 은행에게 ‘비용’인 만큼 쉽지 않은 과제다. 전반적인 시스템 구축과 관리에 수천억원이 소요되는데 연간 순이익 규모가 1조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방은행에겐 큰 부담이기도 하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서울에 본점을 두고 있는 시중은행조차 대형 IT기업 등에 떠밀려 전산·IT 개발인력을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런 만큼 (지방은행은) 통상 외주로 돌려 개발을 할 텐데, 비용 절감 때문에 퀄리티를 보장하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했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경남은행, 대구은행에서 발생한 금융사고의 또 다른 공통점은 사전감시뿐만 아니라 검사당국의 ‘사후감시’에도 실패했다는 점이다. 경남은행 횡령사고의 경우 예금보험공사가 검찰에 사고자를 수사의뢰하고, 검찰이 압수수색을 실시하면서 은행·당국은 뒤늦게 경위 파악에 나섰다. 대구은행 사고 역시 소비자 제보에서 출발했다.
금감원의 은행별 정기검사 주기를 보면 금융지주계열 시중은행은 2.5년, 인터넷전문은행과 지방은행은 3.5~4.5년을 단위로 검사하게 돼 있다. 시중은행은 다른 은행에 비해 전체 금융시스템에 끼치는 영향이 큰 만큼 검사주기가 비교적 짧다. 이번에 불법 증권계좌개설 사고와 횡령사고가 발생한 대구은행과 경남은행은 각기 2014년, 2015년 이후로 정기검사를 받지 않았다.
물론 금감원에도 현실적인 벽은 있다. 중앙과 지방이란 물리적인 갭(gap)을 배제할 수 없단 얘기다. 현재 시중은행 외 은행의 감독을 맡은 은행감독2국 산하엔 상시검사팀을 제외한 4개 검사팀이 가동 중이다. 2팀은 BNK금융지주, 부산은행, 경남은행을, 3팀은 DGB금융지주, JB금융지주, 대구은행, 광주은행, 전북은행을 담당한다. 나머지팀은 각기 특수은행과 정책금융기관을 맡는다.
정기검사엔 통상 담당팀을 포함해 2~3개 팀이 함께 조를 이뤄 검사반으로 편성되는 만큼 검사주기를 확대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잇단 대형사고가 터진 올해 일부 팀은 연중 지방출장을 할 정도로 바쁜 일정을 보냈다고 한다. 특히 대형 횡령사고나 이번 불법계좌개설 사건 등 중차대한 사건의 경우 사고자들이 발각을 우려해 여러 단계의 ‘안전장치’를 설정해 놓는 만큼 적발하기에도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당국 한 관계자는 “지방은행도 오장육부(五臟六腑)가 다 있어 검사 자체는 시중은행에 비해 쉽다고 하기 어렵다. 또 수년 전부터 금융회사의 방어권을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검사체계가 개편되면서 들여다볼 수 있는 사안에도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검사주기를 확대하려면 인원을 확대하거나 검사기간을 단축해야 하는데 모두 일장일단이 있는 문제라 쉽게 결정을 내릴 사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국내 11개 지역에 금감원 지원이 존재하지만, 역할이 달라 검사를 보조하는 수준에 그친다. 한 지원장은 “각 지원의 가장 큰 기능은 금융소비자보호 기능으로 민원업무가 주를 이룬다”면서 “상호금융조합의 단위조합 검사 외엔 대부분 검사를 보조하는 역할 정도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부산=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대구=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