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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탄생 140주년에 다시 읽는 ‘카프카의 연애편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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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한집이나 일기를 읽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가 쓰는 편지나 일기는 연인이나 나만 읽기가 허락된 경우다. 다른 사람이 읽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쓰여지는 글이기에 진솔한 감정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기에는 그 사람의 내면 풍경이 고스란히 비쳐진다. 일기를 자아를 향한 기도라고 하는 이유다.


올해는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1883~1924) 140주년. 카프카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140주년 기념으로 어떤 걸 쓰는 게 좋을까, 연초부터 고민했다. 마침 막스 브로트의 ‘카프카 평전’도 번역 출간되었으니 브로트와의 관계를 자세히 쓸까.

[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탄생 140주년에 다시 읽는 ‘카프카의 연애편지’(상) 죽기 1년 전인 1923년의 프란츠 카프카. [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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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깊어가는 이 가을 카프카의 연애편지 이야기를 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하는 여러 경험 중 사랑보다 가치 있는 일이 과연 또 있을까. 더군다나 카프카는 20세기 3대 소설가로 상찬되는 사람이 아닌가.


카프카의 41년 생애에는 네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두 번 약혼했으나 두 번 파혼으로 끝난 펠리체 바우어, 결혼하고 싶어 했으나 유대인이어서 결혼을 하지 못한 율리에 보흐르체크, 병상에서 각혈하는 카프카의 손을 잡아준 마지막 사랑 도라 디아만트, 그리고 저널리스트 밀레나 예젠스카.


연애편지를 쓴 시점은 1920~1923년. 대상은 유명한 저널리스트·작가·번역가 밀레나 예젠스카 부인. 밀레나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 살고 있었고, 카프카는 폐결핵으로 인해 체코슬로바키아 메란에서 요양 중이었다. 카프카 나이는 서른일곱, 밀레나는 스물셋. 밀레나는 결혼해 빈에서 살고 있었으나 남편의 불성실로 결혼생활은 파탄으로 치닫고 있었다.

[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탄생 140주년에 다시 읽는 ‘카프카의 연애편지’(상) 밀레나 예젠스카. [사진=위키피디아]

두 사람이 알게 된 것은 카프카의 독일어 작품을 밀레나가 체코어로 번역하면서다. 카프카는 체코어로 말하고 읽을 줄 알았지만 쓰는 것은 힘들어했다. 오스트리아 지배층의 언어인 독일어 사용 학교와 대학을 다녔기에 글을 쓸 때는 언제나 독일어였다.


1919년 밀레나가 프라하의 카프카에게 작품을 체코어로 번역할 수 있게 허락해달라는 편지를 보내면서 관계가 싹튼다. 같은 해 10월 카프카는 밀레나를 프라하의 한 카페에서 만난다. 그리고 1920년 4월부터 두 사람은 편지 교환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번역 이야기를 주로 나누다 카프카가 밀레나의 지성에 반하면서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두 사람은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의 국경 도시 그뮌에서 밀회(密會)를 갖기도 한다.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카프카가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가 훨씬 더 많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3년간 지속되다가 끝난다. 밀레나는 카프카의 편지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보관했다. 결별 8개월 뒤인 1924년 6월, 카프카가 폐결핵으로 눈을 감았을 때 밀레나는 프라하 신문에 추도사를 싣는다. 오직 밀레나만이 쓸 수 있는 명추도사다.


여기서 잠깐 20세기의 한 장면을 들춰본다. 1938년 9월, 뮌헨 협정이 체결된다. 히틀러의 위세에 겁에 질린 영국·프랑스·이탈리아 3국 지도자가 히틀러가 요구한, 접경 지역인 슈데텐란트를 독일에 양도하는 안에 서명한다. 런던으로 돌아온 영국 수상 체임벌린이 협정 문서를 흔들며 마침내 유럽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선언하자 영국 신문과 국민은 체임벌린에 환호했다. 하지만 뮌헨 협정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인 1939년 초 독일은 프라하를 침공했다.

[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탄생 140주년에 다시 읽는 ‘카프카의 연애편지’(상) 1939년 3월, 아돌프 히틀러가 프라하성 정문 앞을 사열하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독일의 침공 직전인 프라하.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프라하 탈출 러시가 일어났다. 밀레나는 프라하에서 지인인 저널리스트 빌리 하스를 만났다. 빌리 하스 역시 프라하를 탈출할 계획이었다. 밀레나는 다음날 인편으로 하스에게 편지 뭉치가 든 종이 상자를 보냈다. 빌리 하스는 호기심에 편지 묶음을 풀어 편지 몇 장을 읽어 보았다.


‘그러나 곧 그 묶음을 닫아버렸다. 마치 작렬하고 있는 쇠를 손에 댄 것과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절망, 사랑의 번뇌, 고뇌하는 사랑, 굴종과 저주의 작렬하는 빛이 나의 심장을 꿰뚫고 있는 듯하였다. 한낱 개인의 인간으로서 타인의 이처럼 깊은 비밀을 들여본다는 것은,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묶음에 봉인을 하였다.’


빌리 하스의 최종 목적지는 인도였다. 그는 프라하를 탈출하기 직전, 가까운 친척을 찾아가 편지 상자를 맡기며 신신당부를 했다.


독일군 프라하 점령 직후 밀레나는 지하 레지스탕스에 참여해 나치 독일에 저항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밀레나는 체포되었고, 라벤스부리크 강제수용소에서 1944년 5월 숨진다.


2차대전이 끝나고 빌리 하스가 프라하로 돌아왔을 때 친척은 6년 넘게 보관한 편지 상자를 돌려주었다. 카프카의 편지 꾸러미를 돌려 받으며 빌리 하스는 얼마나 안도했고 기뻐했을까.

[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탄생 140주년에 다시 읽는 ‘카프카의 연애편지’(상) 머그컵에 새겨진 프란츠 카프카 이미지. [사진=조성관 작가]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윤동주를 떠올리게 된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윤동주가 1942년 일본 유학을 가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필사본 시집 한 권을 문과 2년 후배인 정병욱에게 선물한다. 정병욱은 학병으로 끌려가기 직전, 고향의 어머니께 시고(詩稿)를 잘 보관해달라고 부탁한다. 윤동주 동생 일주가 만주에서 서울로 내려와 정병욱을 찾아갔을 때 정병욱은 어머니가 보관해온 시집을 일주에게 건넸다. 무명의 윤동주가 시인으로 탄생하는 순간이다.


빌리 하스는 편지 꾸러미를 카프카 책을 펴낸 출판사에 들고 갔다. 그리고 텔아비브에 머무는 카프카의 절친 막스 브로트에게 연락했다. 막스 브로트의 조언을 받으며 편집한 서한집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Briefe an Milena)'가 1952년 프라하에서 나왔다. 이 서한집에 필자가 앞서 인용한 빌리 하스의 소감이 실렸다.


‘내가 실제로 이 편지를 읽은 것은 1947년의 일이다. 2차대전이 끝나고 런던에 머물 때였다. 뉴욕의 쇽켄출판사와 텔아비브의 막스 브로트로부터 이 편지를 카프카 전집을 위하여 편집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때의 일이다. 나는 8년 전과 똑같이 전율과 황홀감이 뒤섞인 느낌을 받았다(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 빌리 하스).'


박환덕 서울대 독문과 교수는 1982년 독일 ‘북라인-베스트팔렌’주 부퍼탈 대학에서 교환교수 자격으로 카프카 문학을 연구하고 있었다. 부퍼탈(Wuppertal)은 1963년 백남준이 미디어 아트의 효시 격인 ‘음악의 전시’를 개최한 곳이다. 독일은 이로 인해 백남준의 미디어 아트가 독일에서 태동했다는 자부심을 갖는다.


부퍼탈 대학의 프라하문학 연구소장인 보른 교수가 박 교수에게 마르바흐의 독일문학자료관에 방문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한다. 마르바흐 독일문학자료관에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 원본이 보관 중이라는 말에 박 교수는 마르바흐(Marbach)를 방문하기로 한다. 마르바흐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도시로 프리드리히 실러의 고향이기도 하다. 헤르만 헤세의 고향 칼브와 멀지 않은 곳.

[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탄생 140주년에 다시 읽는 ‘카프카의 연애편지’(상) 마르바흐 독일문학자료관 전경. 사진=위키피디아

마르바흐는 부퍼탈에서 남쪽으로 한참을 내려가야 한다. 마르바흐 독일문학자료관에 들어간 박 교수는 ‘편지 원본’ 열람 신청을 했다. 그때는 원고 원본들이 아직 마이크로필름으로 디지털화되지 않았을 때다. 잠시 후 편지 꾸러미가 박 교수 앞에 놓였다. 이때의 느낌을 박 교수는 번역본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 서문에서 이렇게 쓴다.


‘이미 색이 많이 변한 A4용지 크기의 편지 묶음을 받아들고 귀중본 열람실에 혼자 앉았다. 필자는 흥분되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누가 보아도 카프카의 필체가 분명했다. 나는 혹 손 떼가 묻을까봐, 혹 종이가 삭아서 훼손되지나 않을까 매우 두려웠다. 나는 엄청난 죄를 짓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 공간에는 나와 편지 뭉치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어딘가에 카프카가 서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편지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마치 카프카가 지켜보는 것 같은 생각에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꼼짝 않고 앉아만 있었다. 이것이 필자에게는 길이 잊을 수 없는 카프카와의 직접적인 만남이었다.’


카프카는 편지를 쓸 때 날짜를 기록하지 않고 요일만을 표기하는 버릇이 있었다.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도 마찬가지다. 밀레나는 편지 봉투를 버리고 편지만을 묶어 보관했다. 빌리 하스가 ‘밀레나에게 쓰는 편지’를 편집하면서 가장 애를 먹었던 것은 시간순으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1983년 부퍼탈 대학의 보른 교수와 책임연구원 뮐러 박사에 의해 증보판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가 나왔다. 초판이 나온 지 31년만이다. 편지가 쓰여진 시점을 확인하는 문제로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서한집은 세계 문학사에서 20세기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평가된다. 카프카가 밀레나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는 1923년 10월에 쓰여진 편지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이다.(상)


[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탄생 140주년에 다시 읽는 ‘카프카의 연애편지’(상)

조성관 작가·천재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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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어스 테이블' 운영자, 전 주간조선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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