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군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을 위해 한평생 헌신했던 마가렛 피사렉 간호사. 지난달 29일 고향인 오스트리아 현지에서 향년 88세로 선종한 마가렛은 동료 마리안느 스퇴거(89) 간호사와 함께 '소록도의 천사' '한센인의 어머니'로 불렸다. 이들은 천주교에 종신 서원을 했지만 수녀가 아닌 평신도 재속회원으로서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간호학교를 졸업한 두 사람은 1959년 구호단체 다미아재단을 통해 한국에 입국했다. 전쟁으로 파괴되고 열악했던 한국 땅에서 봉사하기로 결심하고 1962년과 1966년 각각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 파견됐다. 당시 격리 수용된 한센인들이 모여 살았던 소록도 마을의 처지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다. 치료 약은 말할 것도 없고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전 세계인의 95%는 한센병에 대한 자연 저항을 갖고 있지만, 의료 지식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던 그 당시에는 한국인 의사들도 한센인을 만지기 꺼려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매일 새벽 경구 섭취마저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 따뜻한 우유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 환자들의 짓무른 손발을 맨손으로 소독하고 약을 투약하고, 이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가깝게 지냈다.
한센병에 대한 편견과 차별 때문에 타인에게 쉽게 마음이 문을 열지 못했던 환자들은 마리안느와 마가렛과 매일 작은 대화를 나누며 몸과 마음을 치유해나갔다. 어린 나이부터 부모와 떨어져 격리 생활을 하던 한센인들에게는 어머니 역할까지 했다.
젊은 시절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수녀님'이라는 존칭으로 부르던 환자들은 나이가 들어가던 두 간호사를 '할매'라고 친근하게 불렀고, 마리안느와 마가렛도 이 호칭을 가장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는 오랜 세월 무보수로 한센인들의 간호와 복지 향상에 헌신한 공을 기려 마가렛과 마리안느에게 1972년 국민훈장, 1983년 대통령 표창, 1996년 국민훈장 모란장 등을 수여했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40년을 소록도에서 봉사해온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자신들의 몸이 늙어 건강도 나빠지고 환자들을 돌보기 힘들어지자 2005년 11월 "섬사람들에게 부담 주기 싫다"며 편지 한 장만 남긴 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소록도를 떠나 고향인 오스트리아로 돌아갔다.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마리안느는 암 투병으로, 마가렛은 경증 치매를 앓으며 요양원에서 생활한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지기도 했지만 이들의 숭고한 선행을 기억하려는 움직임도 본격화했다. 소록도성당, 국립소록도병원, 고흥군을 중심으로 두 사람을 선양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일어났고 2016년 한국에 초청해 마리안느 간호사가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에도 마가렛은 건강이 좋지 못해 오지 못했다.
결국 별세할 때까지 한국 땅을 다시 밟지 못한 마가렛은 생전에 자신의 시신을 대학에 해부용으로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마지막까지도 사회를 위해 헌신하며 세상을 떠났다.
2017년 9월 마가렛을 만나기 위해 오스트리아를 찾았던 천주교광주대교구 김연준 신부는 "(그녀가 당시에도) 소록도에 살던 이웃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고 있었고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했다. 모든 어머니가 그렇듯 세월이 지나도 한센인들에 대한 한없는 애정이 느껴졌다"며 "우리를 위해 일생을 바쳐 헌신한 그 이름을 우리도 잊지 않고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영민 고흥군수는 애도문을 통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평생 한센인을 위해 헌신했던 마가렛의 숭고한 나눔과 섬김의 정신을 영원히 기억하며, 군민 모두의 마음을 모아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고 전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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