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환 이후 비극 뻔한데도 '불법체류자' 간주
북송 우려 속 인권침해…中, 현황조차 함구
유엔, 中 책임론 회피…"자본력에 흔들리나"
중국이 조만간 탈북민에 대한 강제북송을 재개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중국 내 탈북민은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 국경을 폐쇄한 이후 극심한 식량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김은주씨 사례처럼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넌 탈북민이 부지기수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중국은 탈북민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관련 통계마저 공개하지 않고 있다.
25일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지난달 27일 해외(중국) 체류 주민들의 귀국을 공식 승인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국경을 봉쇄한 지 3년 7개월 만에 개방을 선언한 것이다. 이달 들어서는 아시안게임을 참가를 위해 북한 선수단이 잇따라 파견되는 등 인적 교류도 점차 재개됐다. 특히 왕야쥔 주북 중국대사가 지난 21일 북측 고위 인사를 만나 "인적 왕래의 조속한 정상화를 기대한다"고 전하면서 '북송 데드라인'이 앞당겨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북송 뒤 비극 알면서도…'난민협약' 무시하는 중국
탈북민을 체포·구금·북송하는 중국 정부의 정책은 탈북민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방침에 기인한다. 국제사회에선 1951년 7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체결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조약(난민지위협약)'에 담긴 이른바 '농 르풀망(non-refoulement)' 원칙에 따라 난민을 보호하고 있다. 농 르풀망이란 '짓밟지 않는다'는 뜻의 프랑스어로, 망명자를 박해가 우려되는 국가로 송환해선 안 된다는 국제법상 원칙이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등은 탈북민이 북송될 경우 정치범 수용소에서의 강제노역과 자의적 구금, 고문, 심지어는 처형당할 위험에 노출된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북한을 탈출한 주민들은 난민지위협약에 따라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탈북민을 '경제적 목적'에 따른 불법체류자(불법이민자)로 간주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탈북한 것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해 중국에 불법 입국했다고 보는 것이다.
앞서 지난 4월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 등 인권단체 3곳은 재중 탈북민의 인권침해 실태를 다룬 보고서를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에 제출했다. 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중국 정부를 대상으로 탈북민 통계를 요구했다. 그러나 중국 대표단 측은 '탈북민은 난민이 아닌 불법이민자'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관련 데이터를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난민지위협약 ▲고문방지협약 등 국제법상 원칙의 '당사국'으로, 탈북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 국제사회 중론이다. 그러나 난민으로 인정하기는커녕 현황마저 공개하지 않고 있어, 북송 위기에 내몰린 탈북민의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규모 불분명한 재중 탈북민…1170명? 2600명?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제적으로 인용되는 수치도 명확한 근거 없이 산발적인 상태다.
먼저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2021년 7월 "중국이 탈북민 1170명을 여러 시설에 구금하고 있다"며 시설별 인원까지 공개한 바 있다. 이어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지난해 9월 구금된 탈북민이 200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최근 들어서는 그 수가 2600명에 육박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는 태국 등 탈북 루트로 이어지는 남방 지역에 거주할 것으로 예상되는 탈북민 수를 합친 것인데, 이들 수치는 대체로 '불명확한 추정'이라는 한계가 있다.
난민 지위를 부여받지 못한 탓에 규모를 가늠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범죄의 표적이 된다는 문제도 있다. 신분 발각을 두려워한다는 점이 악용되는 것이다. 여성을 겨냥한 인신매매와 강제결혼, 성범죄가 대표적이다. 우리 단체들이 CEDAW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탈북 여성들이 매춘(인신매매) 등에 동원된 결과로 발생한 재원은 1억5000만달러(1970억원)에 달한다. 이 같은 인권침해는 강제분리와 (북송 이후) 강제낙태, 영아살해 등 2차 피해로 대물림된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의 탈북민 강제북송을 막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으로 유엔을 통한 '우회적 압박'이 거론된다. 하지만 유엔이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례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서울사무소는 올해 3월 북한 여성들의 인신매매를 다룬 보고서에서 중국을 '이웃국'으로 표현하며 책임 적시를 회피했다. 최근에는 북송 저지 관련 세미나에 잇따라 불참을 통보하며 인권단체들의 반발을 샀다.
유엔이 '중국의 자본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탓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신화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는 최근 한 세미나에서 필리포 그란디 유엔 난민기구(UNHCR) 최고대표가 중국을 찾아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한 난민 수용국 투자 필요성'을 강조한 뒤 시진핑 주석이 10억달러 지원 계획을 밝힌 점을 상기하며 '유엔 기구가 지켜야 할 독립성의 한계'를 꼬집었다. 중국의 재정적 지원을 잃지 않기 위해 유엔이 탈북민과 다른 난민 문제를 취사선택하고 있다는 지적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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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사는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UNHCR은 1995년 체결한 특별협정을 통해 중국 내 난민에 접근할 권리가 있지만, 중국 정부가 탈북민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걸림돌"이라며 "국제법상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UNHCR은 협정 외에 제3자의 중재를 요청하는 역할도 수행할 수 있지만, 2013년 이후로는 탈북민 강제송환 문제에 대한 공개적 언급을 멈췄다"며 "이 시기는 중국의 국제적 지위가 급격히 상승한 시점"이라고 에둘러 비판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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