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10명 중 7명 "휴가 계획 없다"
고물가·폭염에 여행가는 대신 시원한 쇼핑몰로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맞은 가운데 천정부지로 치솟은 물가로 인해 휴가를 미루거나 휴가 계획을 취소하는 일명 '휴포족(휴가 포기자)'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고물가 상황 속에서 기록적인 폭염까지 겹치자 여행을 가는 대신 시원한 대형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다.
"시간도 없고 돈도 없다"…휴가 포기하는 '휴포족'↑
여름휴가가 집중된 이른바 '7말 8초' 피서철을 맞이했으나, 일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올여름 휴가는 포기했다"는 푸념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방역 규제가 완전히 해제된 후 하늘길이 열렸음에도 고물가 여파로 여행 비용에 부담을 느끼고 있어서다.
서울 구로구에서 자취 중인 직장인 김은정씨(26)는 "여름휴가 때 충북 충주에 있는 본가를 다녀올 예정"이라며 "국내 여행이라도 다녀오려고 했으나, 바가지요금이 걱정되기도 하고 날씨도 더워서 엄두가 나지 않더라"고 말했다. 이어 "요즘은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맛있는 음식이나 먹는 게 휴가 같다"고 덧붙였다.
고물가 상황 속에서 역대급 폭염까지 겹치면서 여행 부담은 더욱 커졌다. 앞서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정부는 지난 3일부터 폭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비상근무 2단계를 가동했다. 폭염 대응으로 중대본 1단계가 아닌 2단계가 가동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황이 이렇자 올 여름휴가 계획을 정하지 않은 이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조사 전문기관 피앰아이가 설문 제작 플랫폼 '유니서베이'를 활용해 전국 만 20~69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올여름 휴가에 대한 기획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39.6%는 '여름휴가 계획을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여름휴가 계획이 없다'는 응답도 33.8%로 뒤를 이었다. 즉 직장인 10명 중 7명은 휴가 계획이 없거나 미정인 셈이다.
이들은 휴가 계획을 정하지 않은 이유로 ▲일정 조율이 어려워서(35.4%) ▲비용이 부담돼서(34.8%) 등의 답변을 꼽았다. 이 밖에도 ▲생업(사업) 상의 이유(17.5%) ▲건강 문제가 걱정돼서(11.0%) 등의 답변도 있었다.
무더위 피해 대형쇼핑몰 찾는 '몰캉스족'
휴가를 포기하는 대신 시원한 대형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내려는 이른바 '몰캉스족'이 늘고 있다. '몰캉스'는 '쇼핑몰'과 '바캉스'의 합성어다.
실제로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백화점과 아울렛 등에 몰리면서 방문객 수는 급증하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낮 최고기온이 36도였던 지난 주말(29~30일) 롯데백화점과 롯데아울렛의 방문객 수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0%, 15% 늘어났다.
통상 휴가철인 7~8월은 백화점을 찾는 소비자들이 줄어들어 비수기로 분류된다. 그러나 올해 해외여행 대신 '집콕'을 선택한 이들의 발길이 쇼핑몰로 이어지면서 백화점은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지난 주말 서울 여의도 더 현대를 방문했다고 밝힌 회사원 이서영씨(27)는 "라울 뒤피 전시회를 보러 더 현대를 방문했는데 사람이 많아 깜짝 놀랐다"며 "특히 카페와 빵집 등이 들어서 있는 지하 1층에는 대다수의 매장에서 웨이팅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휴가를 보내는 '도캉스', 미술관에서 바캉스를 즐기는 '미캉스' 등도 인기다. 이는 살인적인 폭염을 피해 냉방시설이 잘 갖춰진 실내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려는 사람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여름휴가 양극화됐다" 지적도
다만 일각에서는 휴가 양극화 현상이 과거보다 뚜렷해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치솟는 물가 탓에 휴포자가 속출하는데도 해외여행을 떠나려는 이들의 수요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한국공항공사 김해공항에 따르면 이번 달 여름 휴가철 성수기(8월 1∼15일) 김해공항 예상 이용객은 58만8000명으로 집계됐다. 국내선 30만6000명, 국제선 28만2000명이다. 이는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이전인 2019년(73만 8000명)과 비교해 80% 수준이다. 오는 13일에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일평균 여객 수가 가장 많은 4만명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모처럼 떠나는 여행인 만큼 휴가에 지출하는 비용을 아끼지 않겠다는 이들도 나온다. 이에 몇백만원에서 몇천만원에 달하는 프리미엄 상품도 불티나게 팔리는 중이다.
하나투어의 하이엔드 맞춤 여행 브랜드 '제우스월드'의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지난해 동기 대비 502% 증가했다. 제우스월드가 제공하는 여행 상품 가격은 대부분 1000만원을 훌쩍 넘는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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