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혜리씨(32·여)는 한 때 접었던 주식투자를 최근 다시 시작했다. 이차전지주가 폭등하는 흐름을 보이면서다. 투자자금은 기존에 보유한 인터넷전문은행 수시입출금통장에서 인출했다. 그는 "투자 이후 이차전지주 전체가 내림세를 보이면서 별 이득은 못 봤다"면서도 "2%대 이자를 꼬박 받는 것보단 (증시가) 상승하는 흐름에 올라타는 게 낫다"고 말했다.
시중의 부동자금이 은행에서 주식·부동산 등 자산시장으로 대이동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해석이 힘을 받고 있는데다, 이전 자산가격 폭등기를 겪은 투자자들이 최근 증권시장의 이차전지 주(株) 급등, 부동산 시장의 주택가격 반등 기미 등에 빠르게 반응하면서다.
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자예탁금(장내 파생상품 거래 예수금 제외)은 지난 1일 기준 57조160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1월 말(49조2749억원) 대비로 16.0%(7조8856억원) 증가한 수치다. 불과 하루 전인 지난달 31일(55조9865억원)보다도 1조원 넘게 증가한 셈이다.
증시 대기자금 성격인 투자자예탁금은 2022년 1월만 해도 75조원대를 보였으나, 이후 기준금리 인상이 지속되면서 줄곧 감소해 올 2월 말엔 47조원대까지 수직 낙하한 바 있다. 올 들어선 3월 이후 50조~53조원 수준을 횡보하다가 지난달부터 뚜렷한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반면 은행에 머물던 대기성 자금은 뚜렷한 이탈세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요구불예금(MMDA 포함) 잔액은 600조4492억원으로 전월 대비 23조4239억원(3.8%) 감소했다. 요구불예금은 정기 예·적금과 달리 언제든 입출금이 자유로워 은행으로선 수익성에 도움이 되고, 금융소비자로선 자금을 유동적으로 운용할 수 있단 장점이 있다.
지난해 연중 하락했던 부동산 시장도 조금씩 회복 기미를 보인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679조2209억원으로 전월보다 9755억원 늘었다. 가계대출 잔액 증가 폭은 5월(1431억원)부터 순증으로 전환해 6월 6332억원, 7월 9755억원 등 매달 확대되는 추세다.
이를 방증하듯 주택거래량도 아직 평시 수준에 미치지는 못하나 완연한 회복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월 2만5761건에 머물던 전국의 주택매매량은 지난 6월엔 5만2592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지난 5월엔 5만5000건을 돌파해 연중 최고치를 보이기도 했다.
시중자금이 자산시장으로 다시 향하고 있는 것은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이 막바지에 다다랐단 해석이 힘을 얻고 있어서다. 당국 한 관계자는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했는데, 2012년의 사례를 보면 시장이 크게 흔들렸겠지만, 이번엔 별 충격이 없다"면서 "미국 경기가 상대적으로 튼튼하고, 시장의 기대감도 꺾이지 않고 있는 점이 원인"이라고 했다.
부동산 시장 역시 정부의 적극적인 유동성 공급으로 연착륙 가능성이 확대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적용되지 않는 특례보금자리론을 공급하는 한편, 역전세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등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를 지속해서 보내고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아직 금리는 조금씩 오르고 있으나, 시장 전반적으로 Fed나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이 막바지라는 인식이 넓게 퍼지면서 우려보단 기대감이 더 커진 상황"이라면서 "2020~2021년께 부동산 폭등을 지켜봐야 했던 30대를 비롯해, 포모증후군(FOMO·Fear Of Missing Out)을 겪은 금융소비자들이 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