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이 '디플레이션' 위기에 몰렸다. 한국, 미국, 유럽 등 전 세계 주요국이 여전히 인플레이션 때문에 시름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 모습이다. 그만큼 중국 경기가 좋지 않다는 의미다. 코로나19 방역조치 해제 이후 화려한 비상을 꿈꿨던 중국 경제가 이렇게 부진한 것은 내수 시장 침체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부동산 등 자산가격 하락으로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가 얼어붙었고, 위기 때마다 돈을 풀어 경기를 살렸던 정부도 막대한 부채 탓에 획기적인 재정정책을 못 내놓고 있다.
내수 의존도 높은 中…소비·투자 감소는 치명타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 3월 이후 넉 달 연속 전년 동기 대비 0%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생산자물가지수(PPI)는 9개월 연속 하락세다. 지난 6월 소매판매는 3.1% 늘어 시장 예상(3.2~3.5%)보다 낮았고, 민간투자는 5월(-0.1%)과 6월(-0.2%) 두 달 연속 감소폭을 키웠다. 상반기로 봐도 가전제품 소매 판매액 증가율은 1.0%, 통신기기 소매 판매액 증가율도 4.1%로 모두 기대에 못 미쳤다. 경기가 나쁘니 가계와 기업의 소비·투자가 줄고, 이것이 다시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민간소비 침체는 중국 입장에선 치명적이다. 중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수출보다는 내수시장에 초점을 맞춘 경제발전 전략을 취해왔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산다'고 말할 만큼 전체 경제에서 수출의 비중이 크지만, 중국은 반대로 내수 시장이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올해 상반기 최종 소비 부문의 성장 기여도는 77.2%에 달한다. 14억명 인구가 떠받치는 내수는 현재 중국 경제의 최대 성장 동력인 셈이다.
최근 중국 정부가 경기 회복을 위해 소비·투자 등 내수 확대에 집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지난달 말 브리핑에서 "소비 부문이 상반기 중국의 경제 성장을 이끌었으며, 하반기에도 계속 내수에 의한 경제 성장의 흐름을 공고히 하기 위해 소비 활성화 정책을 펴겠다"고 밝혔다. 미국과 동맹국들의 대중 견제가 강해지는 상황에서 수출 등 외부에 의존하기 어려운 중국으로선 내수 회복이 절실하다.
中 부양책에도 소비 대신 저축…디플레이션 맞을까
하지만 중국 정부의 노력에도 민간소비·투자가 단기간에 되살아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한국은행은 최근 중국 경제 전망과 관련해 "하반기에도 부동산 개발 투자의 부진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며 "부동산 경기 회복 지연은 부의 효과 등을 통해 중·고소득층의 소비심리 약화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내수시장에서 부동산과 건설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부동산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 소비·투자 심리가 회복되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신흥경제부장은 "중국 경기 하방 압력이 예상보다 크고, 소비도 좋지 않으며, 부동산은 더블딥(일시 회복 후 재침체)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과거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부양책으로 경기를 끌어올려야 하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기엔 재정 여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중국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내수 활성화를 위해 부동산 규제를 완화할 것임을 시사하긴 했으나 시장에선 여전히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란 평가가 많다.
특히 민간소비 지출이 늘어나려면 국민 가처분소득이 증가해야 하는데, 최근 중국은 청년실업률이 역대 최고인 21.3%까지 치솟을 만큼 고용시장이 좋지 않다. 경제 비관론이 커지면서 중국 가계는 소비 대신 저축을 늘리고 있다. 인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중국의 위안화 예금액은 278조6200억위안(약 4경9986조원)으로 1년 전보다 11% 늘었다. 상반기에만 가계 예금이 11조9100억 위안 증가했다. 이미 물가상승률이 급락한 상황에서 민간소비·투자가 부진하면 구조적인 불황에 빠질 수 있다.
'피크 차이나' 현실화?…한국 경제도 악재
그렇다 보니 시장의 관심은 '피크 차이나' 현실화 여부로 쏠린다. '중국 경제가 정점을 찍고 추락할 것'이란 전망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나왔던 케케묵은 논제지만, 이번엔 무게감이 다르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와 높은 청년 실업률, 한계에 달한 부채 등 중장기적으로 중국의 회복을 가로막는 요인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중국 정부의 부양책 등으로 소비가 일부 되살아나며 경기가 하반기 'N자형 회복'을 보일 수도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순항할지는 미지수다.
'시진핑 리스크'도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소다. 시 주석은 2021년 8월부터 '공동부유'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사회주의 색채를 강화해왔다. 경제 양극화와 사회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으나 이 기조 아래 부동산은 투기를 조장하는 재화로 낙인찍혔고, 빅테크 기업도 대대적인 규제를 받았다. 그러다 경제가 주춤하자 중국 정부는 지난달 24일 다시 부동산 시장 지원과 빅테크 기업 살리기를 시사하는 등 '갈지자(之)' 행보를 보였다. 시 주석은 코로나19 국면에서도 '제로 코비드'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다 올해 초 일시에 폐기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정책 리스크가 시장의 신뢰도를 낮추고, 소비를 위축시킨다고 보고 있다.
중국의 소비·투자 부진은 우리나라에도 악재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4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대중 수출품 중 76.1%가 중국 내수용으로 집계됐다. 기계류는 내수용 비중이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해 90.6%에 육박하고,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 1위 품목인 전기장비는 내수용 비중이 많이 하락했지만 여전히 69.8%로 높은 편이다. 중국 민간 소비가 위축되면 한국의 대중 수출 부진이 더 심화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막대한 中 내수시장…위기 딛고 반등할 수도
물론 중국의 디플레이션이나 장기 경기침체를 언급하기엔 이르다는 의견도 많다. 최근 중국 경제가 부진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중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을 가진 국가이고 흑연, 리튬 등 첨단장비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 공급망도 장악하고 있다. 미·중 갈등 속에서도 프랑스가 중국 견제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미국반도체산업협회가 추가 수출 제한 조치 자제를 촉구한 것도 중국의 거대한 내수 시장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뜻한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현재 중국은 소비 경기 활성화가 경제의 성장 엔진이고 (정부 주도) 투자는 주력이 아닌 일시적인 부양 조치일 뿐"이라며 "중국은 민간소비 회복을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한국국제경제학회장인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 교수는 "중국은 잠재부실 문제가 있긴 하지만 높은 가계·기업부채 문제가 중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며 "결국 성장을 이뤄내면 부채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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