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 인터뷰
中 경기회복 카드 '내수'뿐인데
'블랙스완' 불안감에 소비 억제
中정부, 자국 대기업-中企 매칭 나서
대중국 수출 적자 구조 심해질 것
기회 삼고 경쟁·협력 병행해야
“중국이 노동집약형에서 기술집약형으로 산업 구조 방향성을 틀고 있던 차에 코로나19와 미·중 관계 문제가 터져 어그러졌습니다. 내수로 경기를 회복하려 하지만 쉽지 않은 모양새죠. 오히려 지금이 중국 시장 진출의 적기일 수 있습니다.”
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는 지난달 26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중국을 살릴 수 있는 건 수출보다는 내수지만, '흉터효과'가 길어지면 경기회복 지연 상황이 더 오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가 말하는 흉터효과란 중국인들이 지난 3년 동안 코로나19를 겪으며 생긴 소비 억제 습관이다. 지난해 중국 가계 연간 저축액은 17조8000억 위안(약 3415조원) 증가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한 바 있다. 그는 "정부에서 내수를 살리기 위해 소비 쿠폰을 발행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으나, 중국 국민들은 '언제 또 코로나19 같은 블랙스완(예상치 못한 악재)이 찾아올지 모른다'라는 불안감에 지갑 열기를 머뭇거린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우리가 중국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발을 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들이밀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미-중 간 충돌 속에 중국은 현재 한국 산업과 기업의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수소차 분야에서 중국은 일본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며 "우리가 정치외교적 이슈로 머뭇거리는 사이, 두 나라 간 협력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중국이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자국 기업 살리기 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펼칠 거라고 예상했다. 소위 '빅테크 때리기' 같은 전적이 있긴 하지만, '모난 돌이 정 맞은' 수준이었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중소 민영기업을 키우기 위한 노력도 확장될 것이라 전망했다. 그는 "중국에서 청년 실업률이 가파르게 올라가는 이유는 중소기업들이 힘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중국 공산당 리더십의 바로미터인 실업률을 잡지 못하면 3연임 중인 시진핑 주석의 정권 유지 명분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아래는 박 교수와의 일문일답.
-중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의 상황은 어떤가.
▲현대차나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들이 철수하면서 동반 진출한 국내 기업도 같이 나왔다. 현대차가 처음 중국에 진출한다고 했을 때 동반 진출할 벤더사 대상으로 교육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에 약 200개 중견·중소기업이 함께 나갔다고 들었다. 그렇게 국내 대기업만 바라봤던 수백개 기업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거다.
-다 중국에서 실패한 건가.
▲반대 사례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시작해 중국에 진출한 기업 중 ’포스오스템’이라는 자동차 부품 회사가 있다. 포스코와 오스템의 합자회사다. 2016년 후베이성 우한시에 자리 잡았는데 현재 중국에 공장을 4개 갖고 있다. 여타 자동차 부품기업처럼 대기업을 따라 나갔지만, 나가서 발을 넓힌 기업이다. 중국 로컬 자동차 메이커에 납품하기 시작했고, 차이나 리스크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중국뿐만 아니라 해외에 있는 바이어와도 거래해 성장했다. 우리 기업이 탈중국한다고 하지만, 중국으로 가는 기업도 많다. 소개가 덜 될 뿐이다. 철수하는 기업 중에는 노동집약형이라 중국에서 이미 경쟁력을 잃은 기업들인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은 앞으로 어떻게 될 거라고 보나.
▲중국의 자국 기업 살리기 정책으로 대중국 수출은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중국은 중소기업을 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중소기업이 내는 세금이 중국 세수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이에 중국은 3년 전부터 '융통발전'을 시작했다.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같은 개념인데, 중국 정부가 나서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이 자국 내 최대 디스플레이업체 BOE를 지원하면서, 공장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중소 민영기업이 만드는 중간자재를 쓰라고 독려했다. 우리나라 대중국 수출의 80%를 소재·부품·장비가 차지한다. 그런데 중국이 중소 민영기업을 살린다고 한국 제품을 덜 수입하고 중국 제품을 쓰라고 했으니 대중국 수출에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국은 미국 때문에라도 앞으로 기술 자립에 더 투자할 것이다. 이에 따라 장기적으로 대중국 수출 적자 구조는 더 심화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취해야 할 전략은.
▲첨단산업 분야에서 경쟁과 협력을 함께 해야 한다. 기본 전제로 미·중 관계는 독립변수고, 한중관계는 그에 따른 종속변수다. 미·중 관계가 꼬이면 한중관계도 휘청일 수 있다. 미중 간 기술패권 경쟁은 몇십 년 더 이어질 듯하니 우리 나름의 경쟁력을 장착해야 한다. 첨단 산업 중에서 핵심 기술이 아닌 산업, 예를 들어 반도체 산업에서도 후공정 부분에서는 중국 기업과 협력할 방법을 타진해야 한다. ‘DB하이텍’처럼 미국의 직접 제재 대상이 아닌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중국과 사업하며 수익을 내고 있다.
-우리 기술을 뺏기면 어떡하나.
▲협력을 안 한다고 해서 중국이 우리 기술력을 못 따라오는 게 아니다. 따라오는 건 시간 문제라고 본다. 그러니 기업 입장에서 봤을 때는 중국이 가장 우리를 필요로 할 때 기술력과 중국의 자본·시장을 융합해 돈을 벌어야 한다.
-차이나 리스크는 없다고 보는 건가.
▲지난달 24일 열린 중앙정치국회의 결과를 보니, 중국 정부가 해외 기업에 대해 더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려는 뉘앙스를 담았더라. 지금은 중국 정부가 외부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다. 차이나 리스크 가능성에 매몰되면 오히려 기회를 놓칠 수 있다.
내수 부진이나 부동산 리스크 이슈가 생각보다 길어지면 중국 경제가 올해 5% 이상 성장하는 게 버거울 수 있다. 내수가 중국 경제의 68%를 차지한다. 오랫동안 1인당 국민소득이 오르지 못하고 지금 수준에서 계속 머무르면 정말 중진국 함정에 빠지는 거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를 악물고 산업구조를 고도화할 거다. 이전처럼 공장으로 일자리 창출하는 구조를 장기적인 모델로 보고 있지 않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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