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적 연결 없이 전기신호로만 바퀴 제어
실내 공간 활용 높아지는 등 전동화 맞춤 기술
방전 시 조향 불가·이중 설계 고비용 해결돼야
렉서스 2025년 탑재 예정·테슬라 특허 신청
2030년 어느 날. 차량을 타고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완전 자율주행이 시작되자 운전대가 운전석에서 조수석으로 이동한다. 필요 없어진 운전대가 움직여 운전석 공간을 확보했다. 이 공간에서 운전자는 책을 보거나, 식사를 한다.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 후 목적지인 시내에 진입했다. 운전을 하고 싶어 자율주행을 그만하자 핸들이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왔다. 신호 대기를 하다 유턴을 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가속 페달을 살살 밟으며 핸들을 90도만 꺾자 차량이 180도 돌며 유턴했다.
운전대가 차 바퀴와 직접 연결되지 않은 스티어 바이 와이어(Steer by Wire·SbW)가 상용화된다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실내 공간을 더 활용할 수 있는 등 전동화 차량에 적합한 이 기술 개발에 완성차, 부품사들이 앞다퉈 나서고 있다. 이미 렉서스는 자사 첫 전기차에 SbW를 옵션으로 제공할 예정이며, 테슬라도 신형 모델 3에 탑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만 소프트웨어 기반 기술이다 보니 해킹에 취약하거나 갑작스런 고장에 취약할 수 있는 점은 상용화에 걸림돌이다.
SbW는 운전대를 전자식으로 움직이는 기술이다. 일반적으로 자동차는 운전대가 하나의 축을 통해 앞바퀴와 연결돼 방향을 바꾼다. 하지만 SbW는 운전대와 바퀴가 완전히 분리돼 전기 신호만으로 바퀴를 움직인다.
SbW를 적용하면 운전대 위치를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다. 운전대 이동이 가능하니 오른쪽에 핸들이 있는 국가(영국, 일본 등)를 위한 차량을 따로 만들 필요가 없어진다.
전기차와 ‘궁합’도 잘 맞는다. SbW가 전기차의 장점인 실내 공간 활용도를 극대화시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전기차는 ‘스케이트보드’ 플랫폼을 이용해 만들어진다. 이 플랫폼의 특징은 배터리, 구동모터 등이 모듈(개별 부품을 한 덩어리로 만든 것) 형태로 차체 하부에 모여 있다. 즉, 전기차는 차량 전면부에 엔진이 있는 내연기관 차량에 비해 부품 수도 적고, 실내 공간도 넓다. 넓어진 만큼 설계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데, SbW를 적용하면 앞바퀴와 핸들을 연결하던 축 같은 부품을 더 없앨 수 있다. 기존 전기차보다도 운전석을 포함한 앞 좌석에 공간이 커진다는 것이다.
운전 편의성도 높아진다. 일본 자동차 업체 렉서스가 개발한 SbW인 원모션그립(One Motion Grip)을 적용한 차량은 핸들을 2~3회씩 회전할 필요 없이 좌우 150도 정도만 돌려 운전할 수 있다. 차량 속도에 따라 조향 기어비도 자유롭게 설정된다. 저속에선 조금만 핸들을 돌려도 많이 돌아갈 수 있게, 고속에선 기어비를 높게 설정해 핸들이 잘 움직이지 않도록 할 수 있다.
다만 단점도 있다. 전기차 방전 시 조향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각종 고장에 대비한 이중화 설계(잠재적인 오류에 대비한 소프트웨어 등 복제본을 만드는 것)가 필요한 것도 문제다.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의미다. 전현주 한국자동차연구원 산업분석실 선임은 “기계식 조향에 비해 해킹에 취약해 사이버 보안강화가 필요하며 이중화 설계로 인한 제조 비용 상승으로 양산시 고비용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완성차 업체들은 이미 SbW를 상용화하기 시작했다. 렉서스는 이 기술이 탑재된 전기차 RZ450e를 내년 상반기부터 생산한다. 카사이 요이치로 RZ 부수석 엔지니어는 “운전 편의성, 주행 즐거움, 운전석 디자인에 주안점을 두고 개발 중이다”며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게 해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이중화 설계를 통한 보조 시스템 장착과 별도 배터리를 포함해 안전도 신경 썼다. 테슬라도 지난달 SbW 특허를 신청했으며 올 하반기 모델 3에 탑재할 것으로 보인다.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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