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후 7개월, 조사기구 구성도 안돼
'세월호 특조위'도 與 방해 속 활동 제약
野 행안위 '단독 강행' 딜레마
지난해 핼로윈데이를 앞두고 발생한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7개월이 지났다. 국회가 야권 주도로 발의한 '이태원 특별법'은 지난 2014년 '세월호 특별법'처럼 독립적 조사기구 구성을 추진하면서도, 한편으로 '구조적 원인 규명'이라는 그동안 달성하지 못했던 목표를 다시 내세웠다. 더불어민주당이 특별법 통과를 재추진하고 나선 가운데 온전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전날 정책의원총회를 열고 이태원 특별법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오는 30일 본회의에서 신속처리대상(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하기로 결정했다.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6월 내 본회의에서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되지 않으면 특별법이 통과되기 어려운 여러가지 국회 내 여건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조위 구성' 담긴 이태원 특별법
지난해 10월29일 참사 이후 국회는 국정조사를 진행했다.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55일간 활동한 후 지난 1월 활동 기간이 종료됐다. 짧은 기간 탓에 700여쪽에 달하는 결과보고서에는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의 내용보다는 공청회 자리에서의 여야 간 공방이 중점적으로 담겼다.
이에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전국 릴레이 행진, 서명운동, 추모대회 등을 통해 목소리를 냈다. 이에 지난 4월20일 야4당(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진보당)은 독립적인 진상기구 설치와 피해자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10·29이태원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법안'을 공동 발의했다.
생존자와 유가족 측의 요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특별법의 핵심은 '진상 규명'과 '피해자 지원' 두 가지다. 진상규명을 위해서 특별법은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한다. 이들에게 직권으로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조사를 수행하고, 자료 및 물건의 제출명령, 고발·수사요청 권한을 지니도록 한다.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할 경우 국회에 이를 요청할 수 있고, 상임위원회는 3개월 내 심사를 마쳐야 한다.
피해자 지원을 위해서 국무총리 소속에 참사피해구제심의위원회를 두도록 하며, 국가가 의료지원금 지급, 심리 지원 등 피해자의 생활 전반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도록 한다. 또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 개발, 추모공원 조성 등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 마련과 관련된 내용도 담았다. 특조위는 1년간(6개월 한차례 연장 가능) 활동하도록 한다.
'세월호 특조위'와 어떻게 다른가

대형 참사 이후 구성된 특별조사위원회의 대표적인 사례는 2014년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다. 2014년 참사 발생 이후 검찰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정부 책임자에 대한 수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이에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는 독립적 진상조사기구의 구성을 요구하고 나섰다.
대규모 법률가 단체와 시민사회단체들이 움직이면서 6개월 만인 11월7일 세월호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세월호 특조위는 특검 요청권을 확보했고, 청문회와 안전사회 대책 이행에 대한 규정을 마련할 수 있었다. 특히 3차례 청문회를 거치면서 정부의 허위 발표, 사고 원인 등에 대해 일부 규명했다.
하지만 한계점은 명확했다. 당시 특조위는 구성 단계부터 한계를 지녔다. 특조위는 출범 첫해인 2015년도에 요구했던 159억원에 절반을 웃도는 예산을 책정받았다. 조사 기한도 시작 시점에 대해 여야가 이견을 보이면서 사실상 1년을 채우지 못했다. 17명의 위원 중 15명이 법률 전문가로 치중된 탓에 입체적인 원인 규명도 이뤄지지 못했다. 조사 과정에서도 과제 선정부터 의결까지 행정 절차에 많은 인력과 시간을 낭비하면서 사회 구조적 원인을 밝히는 데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이태원 특별법 역시 위원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되는 독립 기구를 만든다는 점에서 세월호 특별법와 궤를 같이 한다. 다만 가장 큰 차이점은 '추천권'이다. 세월호 특조위는 국회 선출 10명, 대법원장 지명 2명, 대한변호사협회장 지명 2명, 유가족 측 선출 3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반면 이태원 특별법은 조사기구를 국회 조사위원 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은 17명의 위원으로 구성하도록 한다. 조사 대상에 포함되는 대통령이 위원 구성에 관여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추천 위원은 여당과 야당, 유가족이 각각 3명씩 추천하고 국회의장이 임명하도록 한다.
또 이태원 특별법은 이전 사례들과 달리 '구조적 원인 규명'에 방점을 찍는다. 특별법에 따른 조사 범위에는 ▲참사 원인 및 책임소재 ▲국가 등 정책 결정, 행정조치 적정성 ▲재난 및 안전관리 법령 등 개선 또는 대책 수립 ▲참사 이후 희생자, 피해자 피해 실태 및 구제 방안 등이 담겼다. 유가족협의회는 지난 2월 법안 초안을 발표할 당시 “철저한 진상규명은 연관된 공직자 일부에게 책임을 묻고 처벌하는 데에 있지 않다”며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모든 사실관계를 성역 없이 살펴보고 구조적인 원인을 조사하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시 입법 독주 시동거는 민주당, 강행 딜레마
국조특위 활동이 마무리되고 5개월이 흘렀지만, 특별법은 그동안 여당의 반발로 인해 상임위 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여당은 국정조사가 추진됐을 때부터 현재까지 진상규명을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 국조특위 당시 여당은 기관증인 명단 채택을 반대하고, 결과보고서 채택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이어 특별법 제정도 일관되게 반대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는 위원장이 민주당 몫인 김교흥 의원으로 바뀌면서 추진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반대하는 여당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행안위는 이날 열리는 전체회의에서 이태원 특별법을 안건으로 상정할 방침이다. 행안위 야당 관계자는 "공청회 개최까지 안건으로 올리자고 요구를 했었는데 (여당 측의) 격렬한 반대가 있어서 관철시키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또 행안위원장이 야당 몫으로 바뀌면서 관례적으로 1소위와 2소위의 소위원장을 여야가 교체해야 하는데, 여당은 특별법을 소관하는 2소위의 위원장을 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행안위원장이 야당 몫인 만큼 특별법 입법은 가능하다. 안건 상정의 권한은 위원장에게 있는데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활용하면 상임위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직회부할 수 있다. 다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최대한 여야의 합의를 시도하겠다는 것이 민주당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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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트트랙 안건 지정부터 본회의 상정까지 약 8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민주당은 안건 지정을 서두르고 있다. 이달 30일 본회의에서 특별법이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될 경우 22대 총선 직전인 내년 3월께 표결에 부쳐질 전망이다. 특별법을 본회의에서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려면 재적 의원 5분의 3(180명)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데, 이 법안 공동 발의자가 183명이어서 안건 지정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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