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으로 원작 분석해 새 스토리·그림
"아들이 고인 된 아버지로 돈벌이" 비난도
'우주 소년 아톰', '밀림의 왕자 레오' 등으로 유명한 일본의 만화가 고(故) 데즈카 오사무의 히트작 중 하나인 '블랙잭'의 신작이 나온다.
'블랙잭', '데즈카 2023' 프로젝트로 재연재
지난 13일 일본 NHK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데즈카 오사무의 대표작이자 의학 만화의 시초로 불리는 작품 '블랙잭'이 생성형 인공지능(AI)인 챗 GPT 등의 도움으로 올가을 주간 '소년 챔피언'에 연재될 예정이다.
'블랙잭'은 데즈카 오사무가 1973년부터 10년간 총 242회 연재했다. 난치병 치료에 천재적 재능을 보인 무면허 의사의 활약상을 담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일본 의료 시스템의 한계를 꼬집고 존엄사·장기 이식 등 의료 윤리들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블랙잭'이 '데즈카 2023'이란 이름의 프로젝트로 다시 태어난다. 데즈카 오사무의 장남이자 애니메이션 감독인 데즈카 마코토(62)씨가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다.
시나리오 구상은 챗 GPT 의 최신 버전인 GPT-4가 담당한다. GPT-4는 200화가 넘는 원작 에피소드를 분석해 작품 줄거리와 세계관, 주제, 등장인물 간 관계 등을 학습했다. 이를 토대로 인간이 특정 지시어를 입력하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내게 된다.
예를 들어 '낙도(落島)'와 '코로나'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주인공 블랙잭이 어느 외딴섬에서 원주민들과 협력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아이들을 구한다는 내용이 생성된다.
그림은 이미지 생성 AI인 '스테이블 디퓨전'이 맡았다. 스테이블 디퓨전 역시 원작의 붓질과 특유의 캐릭터 표정 등 화풍을 배웠다.
"고인 모독" vs "도전하는 게 중요"
'데즈카 2023' 프로젝트 소식이 전해지자 데즈카 오사무의 열성 팬 사이에선 "고인 작품에 대한 모독이다", "아들이 아버지 유산을 끌고 와 돈을 벌려고 한다" 등의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데즈카 마코토는 "단순히 신작을 발표하겠다는 것이 아닌 인간의 창조성과 재미 추구에서 AI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를 연구하려는 것"이라며 "아버지가 살아있었다면 AI를 사용해 본보기를 보여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도전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림과 스토리를 만드는 것은 AI지만, 이를 지시하고 감독하는 것은 인간 창작자라는 점을 짚으며 "AI로 인간을 대체하겠다는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지원을 위한 도구로 쓰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한 구리하라 사토시 게이오대 교수는 "이번 프로젝트로 AI와 인간이 어떤 관계를 구축할 것인가를 넘어 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데즈카 2020'부터 이어온 프로젝트…한국서도 시도돼
대본소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야구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이현세 작)
한편 AI로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을 이어가려는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데즈카 마코토가 주도한 '데즈카 2020'팀은 2020년에 비슷한 방식으로 신작 '파이돈'을 공개했다. AI 학습을 통해 데즈카 오사무가 살아있었다면 그렸을 법한 만화를 창작한 것이다. 다만 AI의 역할이 캐릭터 설정과 스토리 구상에 그쳤고, 그 외 작업 대부분은 인간의 손을 거쳐야 한다는 한계를 가졌다.
지금 뜨는 뉴스
우리나라의 경우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유명한 만화가 이현세(67) 화백이 '공포의 외인구단'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작품을 AI에 학습시키는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이 화백 사후에도 그의 화풍으로 그려진 만화가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프로젝트이다. 만화 기획사 재담미디어는 올해 안으로 이 AI가 그린 신작을 출간할 계획이다.
구나리 인턴기자 forsythia26@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