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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징 왜 어렵나]③기상천외한 '범죄수익금 은닉'… "예산·인력 늘리고 독립몰수제 도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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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바닥에 금괴 수백 kg 숨겨… 전 여친 집 사주기도
미국·독일 등 ‘독립몰수제’ 시행… 유죄 확정 전 범죄수익 추징

편집자주최근 잇따르는 코인·주식 시장에서의 시세조종 사건과 수많은 서민 피해자를 양산한 전세사기 등 범죄가 늘어나며 범죄수익을 찾아내 몰수·추징하거나 피해자에게 돌려주는 범죄수익 환수 문제가 다시 이슈로 떠올랐다. 본지는 범죄수익 추징을 가로막는 현실적인 문제점들을 짚어보고 전문가에게 그 대응 방안을 물었다

회삿돈을 횡령한 뒤 '범죄수익금'을 가족이나 제3자에게 넘겨주는 방식으로 은닉하면서, 이를 찾아내야 하는 검찰이 애를 먹고 있다. 차명으로 범죄수익금을 빼돌리는 것은 일반적인 형태고, 타인의 주민등록주소지에 빼돌린 범죄수익을 숨겨두거나 가족들의 집에 금괴를 나눠서 보관하면서 수사망을 교묘하게 피하기도 한다.


문제는 어렵게 찾아낸 재산을 곧바로 국고로 귀속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차명재산 내지 제3자 명의의 재산에 대해서는 추징금이 선고·확정된 형사판결문만으로 추징금 집행을 할 수 없어 별도의 민사소송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줄이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범죄자의 해외 도주나 사망으로 재판이 불가능한 경우나 차명으로 재산을 보유했을 때 유죄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이라도 범죄 수익을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독립몰수제'가 대표적인 방안으로 꼽힌다. 현재 국회에는 독립몰수제 도입을 위해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을 개정하는 법안 등이 계류돼 있다.


[추징 왜 어렵나]③기상천외한 '범죄수익금 은닉'… "예산·인력 늘리고 독립몰수제 도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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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0억원대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임차인 집에 금괴 숨겨

오스템임플란트 재무관리팀장이던 이모씨는 회삿돈 2200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5년과 추징금 1150억여원을 선고받았다.


이씨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이씨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횡령한 회삿돈을 숨겨놨다. 이씨는 회삿돈을 감추기 위해 금괴 851kg를 구매한 뒤, 354kg은 자신의 주거지 옥상 바닥에 은닉했다. 이후 354kg 중 100kg을 다시 자신의 여동생집에 숨겼다. 나머지 497kg은 자신의 명의로 된 오피스텔로 빼돌렸다.


이 과정에서 이씨는 자신의 오피스텔에 거주하고 있던 임차인에게 주민등록상 주소는 옮기지 않는 조건으로 자신이 소유한 인근의 또 다른 오피스텔로 거처를 옮겨주면 이사 비용을 모두 지불하겠다고 제안해 임차인을 이사하게 한 뒤 임차인이 거주하던 오피스텔에 금괴를 숨겼다.


주민등록상 거주자가 다른 세입자로 돼 있다 보니 수사기관으로선 해당 오피스텔에 금괴가 숨겨져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또 이씨는 아내 명의로 리조트 10년 치 보증금과 관리비로 38억여원을 지불하고 처제와 동서의 아파트 구입 비용을 지급했다. 이 밖에도 이씨는 명품시계와 처가 단독주택 건축비용, 수입차, 채권 등을 구매하면서 명의를 차명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와 이씨의 가족들은 재판 과정에서 이씨가 횡령한 회삿돈인지 몰랐기 때문에, 이씨 소유가 아닌 재산을 몰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추징 왜 어렵나]③기상천외한 '범죄수익금 은닉'… "예산·인력 늘리고 독립몰수제 도입해야" 오스템임플란트 회삿돈 2215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는 이모씨가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횡령금으로 전 여친 집 구매… 해외 로펌에 예치하기도

우리은행 직원이던 전모씨 형제는 회삿돈 70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은 차명계좌 등을 이용한 자금 세탁을 통해 채무변제, 사업자금, 부동산·차량·미술품 구입, 해외여행 경비 등에 사용했다. 이들은 횡령금으로 부모님이 거주하는 집에 편백나무 욕조를 설치하기도 했다.


형 전씨는 전 여자친구의 주택 구입자금 등을 대신 내주고 전 여자친구가 사용한 신용카드 대금까지 결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이 여자친구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전씨가 대납한 주택자금이 횡령한 회삿돈인 것을 알았다고 자백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동산등기부상 소유자가 제3자로 돼 있어도 범죄수익금으로 구매했다면, 추징금을 집행할 수 있다.


추징금 납부가 확정됐는데도 외국으로 재산을 은닉했다가 발각된 사례도 있다. 가전제품 수출입 대금을 부풀려 3조원 대의 천문학적 사기대출을 받은 혐의로 징역 15년을 확정받은 박홍석 전 모뉴엘 대표는 미국 로펌에 재산 253만 달러(한화 28억7588만원)를 숨겨뒀다.


검찰은 박 대표가 해당 예치금을 홍콩 페이퍼컴퍼니 계좌로 반환받으려고 하는 사실을 확인, 법원에 예치금 반환채권 압류·추심 신청을 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미국 로펌 측과의 반환 협의를 통해 예치금 전액을 한국 법원에 공탁받았다.

범죄수익 신속 환수 ‘독립몰수제’… 미국·독일 등 시행 중

범죄자의 해외 도주나 사망 등으로 재판 진행이 불가능한 사건 또는 최종 유죄판결이 나오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도 범죄수익을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독립몰수제’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해당 재산이 범죄수익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제3자가 소유하고 있었을 경우, 무죄추정의 원칙 위반 등을 이유로 입법이 지연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이른바 'n번방' 사건처럼 범죄수익은 특정되는데 범죄인을 특정하기 어렵거나, 사망이나 불특정 등으로 범죄인에 대한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경우에도 관련 범죄수익을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대검찰청 범죄수익환수과 관계자는 "현행 법령에서는 범죄인이 막대한 범죄수익을 남겨두고 사망한 경우, 국가가 범죄수익을 가져올 수 없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 사건처럼 사망한다고 추징이 끝나버리는 제도는 바뀌어야 한다. 범죄인이 수천억원을 횡령해 놓고 사망하면, 가문에 훌륭한 조상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범죄수익이 범죄인의 가족들에게 고스란히 상속되도 막을 수 없는 불합리한 구조를 바꿔야 한다"며 "범죄수익이라는 게 명백하더라도 범죄인을 기소할 수 없거나, 유죄 확정판결이 나지 않으면 검찰이 빼앗아 올 방법이 없다. 범죄수익은 범죄인이 가져서도 안 될 뿐만 아니라 범죄인의 상속자도 가져서는 안 되고 박탈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서는 독립몰수제를 기초로 하는 여러 범죄수익은닉규제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이들 개정안은 범죄인이 아닌 제3자가 범죄수익금을 취득한 경우, 범죄인이 사망한 경우, 몰수의 요건을 갖춘 상태에서는 공소제기를 하지 않거나 유죄 판결이 나오지 않더라도 몰수·추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미국과 독일, 호주 등에서는 이미 독립몰수제를 시행하고 있다. 독일은 형법에 '기소나 유죄판결이 없어도 몰수 요건을 갖추면 몰수가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고, 형사소송법에는 독립몰수에 대한 세부 절차도 마련돼 있다. 미국은 '민사몰수제'를 통해 피고인에 대한 형사처벌 등 여부와 관계없이 불법 또는 범죄와 개연성이 있는 재산을 몰수한다.

독립몰수제, 범죄 진압에 유용… 도입 조심스러운 법원
[추징 왜 어렵나]③기상천외한 '범죄수익금 은닉'… "예산·인력 늘리고 독립몰수제 도입해야" 서울 서초동 대법원.

2020년 논정법치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이었던 이완규 법제처장은 법원에 낸 '독립몰수·추징제도에 관한 연구' 용역보고서에서 독립몰수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논문에서 이 처장은 범죄자에게 유죄판결을 하지 못하는 경우 범죄수익 차단의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이와 같은 공백 해결을 위한 입법적 해결 방법으로 독립몰수제를 제안했다.


이 처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범죄의 이익 자체를 빼앗아야 범죄를 진압하는 데 유용하다"며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해서 범죄수익을 쓸 수 있게 만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도망을 가더라도 그 재산을 몰수·추징할 수 있게 만들어야 범죄 예방의 효과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는 독립몰수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몰수를 부가형으로 하고 있는 현행 법체계와의 정합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규정 마련 ▲독립몰수 사유의 명확화 ▲이를 재판으로 구현할 수 있는 충분한 형사소송법상 절차 규정 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는 형사처벌과 결합해야만 몰수·추징이 가능한 구조이고, 현행 형법상 몰수·추징은 부가형으로 돼 있어서 유죄가 확정돼야 몰수·추징을 집행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 처장은 "기존의 형법 이론에 매달리면 아무런 발전이 없다"며 "검찰에서 마음대로 몰수·추징을 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법원의 판단을 받아서 하자는 것인데 왜 우려를 하는지 모르겠다. 범죄인이 도망 다니고 있는 경우에는 방어권이 침해를 받게 된다고 우려할 수 있겠지만, 그 부분은 본안 소송에서 충분히 다툴 수 있다고 본다. 일단 범죄수익을 쓸 수 없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원석 검찰총장도 올해 4월 라자 쿠마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의장을 만난 자리에서 독립몰수제 의무화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FATF는 가입국에 독립몰수제 의무화를 규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권고사항 개정을 추진 중이다.


횡령 등 화이트칼라 범죄에서 범죄수익을 박탈하는 게 범죄 예방 측면에서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화이트칼라 범죄에서는 형량을 올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범죄수익을 발본색원해서 박탈하는 게 오히려 범죄 진압적 효과가 강하다고 본다"라며 "범죄인을 잡아서 10년을 살릴지 20년을 살릴지가 문제가 아니라, 경제범죄자들이 우리 집에 있는 밥숟가락 하나도 뺏긴다고 생각을 하게 되면 훨씬 더 범죄 억제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승 선임연구위원은 원활한 몰수·추징을 위해서는 인력과 예산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범죄가 초공간적 범죄가 돼버려서 국내에서만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재판을 하는 게 아니라 미국이나 에콰도르에서도 재판을 하려면 그 나라의 사법제도를 다 알아야 되지 않겠느냐"라며 "그러려면 지금 같은 검찰 조직으로는 한계가 있다. 미국 같은 경우 법무부 산하의 범죄수익환수부를 보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전문적으로 잘 만들어져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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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몰수 기금이나 범죄수익 환수를 하고 난 다음에 환수 기금도 만들어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가령 그 기금을 통해서 교육이나 역량 강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그런 부분에 대한 논의가 조금 더 활성화돼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인력과 예산이 반드시 증원돼야 한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다"라고 덧붙였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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