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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다이어리]"브런치 먹었는데 30% 더 내라고?" 팁플레이션에 지쳤다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4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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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미국 일상 속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여기 한 장의 안내문이 있다. "매장에 방문해주셔서 감사해요. 20%의 서비스 차지가 당신의 계산서에 적용될 예정입니다. 추가 팁으로 2%, 3%, 5%를 제안합니다." 이 안내문의 제목은 ‘팁플레이션(팁+인플레이션)은 멈추지 않는다’다.


또 다른 만평이 있다. 카페에서 음료를 시킨 한 남자가 계산대 앞에 서서 종업원이 내민 키오스크 화면을 바라보며 머뭇대고 있는 장면이다. 테이크아웃 커피 한잔을 구매했을 뿐인데 팁을 줘야 할까? 화면에는 ‘20%’, ‘25%’라는 팁 숫자 버튼이 크게 떠 있고, 그 아래에는 작은 ‘노팁(no tip)’ 버튼도 있다. 하지만 노팁 버튼 밑에는 ‘나를 비판하고 내가 주문한 음료에 침을 뱉을 수 있음’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이는 모두 미국에서 고물가 시대에 덩달아 뛰어오른 팁 문화를 비꼬는, 일종의 밈(Meme)이다. 자국의 팁 문화를 "터무니없다"고 주장해온 루이지애나주 출신 30대 직장인 에밀리씨는 "무언가를 구입했을 때 팁을 요구받지 않은 게 언제가 마지막이냐"는 질문에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개인적으로도 동일한 질문에 멈칫했다. 반대로 노골적으로 팁을 요구받은 게 언제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변은 둘 다 명확했다. 바로 10분 전.


몇 년 전만 해도 팁은 식당, 미용실 등에서 만족할만한 서비스를 받았을 경우 통상 15%선을 지불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 테이크아웃 커피부터 무인 키오스크까지 팁을 요구하지 않는 서비스 업종을 찾기가 더 어렵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키오스크, 태블릿 결제 시스템이 확산하면서 이제 마지막 결제 단계에서 팁을 요구하는 화면이 뜨는 것이 익숙한 풍경이 됐다. 미 결제시스템업체인 스퀘어는 팬데믹 이전인 2020년2월 원격거래에서 팁을 준 비율이 43.4%였던 반면, 3년 뒤인 올해 2월에는 74.5%까지 치솟았다고 밝혔다.


특히 몇십년만에 인플레이션이 나타난 지난해부터는 팁 금액조차 훌쩍 뛰어 한층 부담이다. 한 브런치 집에서 식사한 후 25%, 30%의 숫자가 뜨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은 기억이 있다.


통상 이 숫자는 해당 매장에서 설정할 수 있게 돼 있다. 내가 원하는 비율, 금액만 지불할 수도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바로 코앞에 종업원을 세워둔 채 여러 단계의 버튼을 눌러야만 한다. 결국 괜한 죄책감과 쫓기는 마음에 가장 앞에 있는 숫자를 눌렀던 경험이 한 두번이 아니다. 이런 상황을 미국에서는 ‘길트 티핑(guilt tipping, 죄책감으로 주는 팁)’이라고 한다. 뉴욕으로 해외 취업한 30대 직장인 김은별씨는 "팁 문화란 받은 서비스에 대해 주는 것인데, 커피를 건네주는 것만으로 최소 18%를 요구하는 것은 황당하다"고 토로했다.


[뉴욕다이어리]"브런치 먹었는데 30% 더 내라고?" 팁플레이션에 지쳤다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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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행동을 연구하는 마이클 린 코넬대 교수는 "연구 결과, 더 많은 팁을 요구할수록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며 "18%에서 시작하는 팁 옵션은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한다"고 분석했다. 구스타프슨 경영대학원의 시몬 펙 부교수는 "인력난에 처한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추가 가치를 제공할 방법을 찾고 있었고, 팁은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직원들에게 보상할 수 있는 비교적 매력적인 방법이었다"고 전했다. 팁 문화가 생기게 된 미국의 차별적 임금구조 자체도 문제지만, 결국 고용주들의 부담을 고객이 떠안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최근 들어 곳곳에서는 팁에 대한 피로감과 거부감이 높아지는 현상도 확인된다. 에밀리 씨는 "식당에 가서 식사하기보다는, 포장 형태로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며 "팁을 줘야 하는 상황 자체를 줄이게 된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에도 이러한 '팁 피로감(Tipping fatigue)'을 토로하는 영상, 글들이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고객들의 이러한 거부감을 인식한 듯, 계산서에는 팁을 빙자한 또 다른 표현들도 등장하고 있다. ‘서비스 요금(service charges)’, ‘감사(gratitude)’, ‘건강 수수료(wellness fee)’ 등이 대표적이다.



얼마 전 브루클린의 한 식당에서 서비스 요금이 반영된 계산서를 받았다. 직원에게 서비스 요금이 팁을 의미하느냐고 묻자, 그는 "아니다. 수고한 주방 직원들과 홀 직원들을 위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게 바로 팁이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대로 계산서를 보지 않았다면 이미 서비스 요금이 포함된 금액에 또 높은 팁을 더해 줬을 터다. 워싱턴DC 법무부는 최근 이처럼 정체 모를 수수료들을 ‘기만적 요금’이라고 경고하는 서한을 지역 소상공인들에게 발송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역풍이 불가피한 법이다. 다시는 그 식당에 가지 않고 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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