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여성 중식 셰프 신계숙 배화여대 교수
대학에서 중화요리 강의…배화여대 1호 창업 교수로 ‘계향각’ 운영
‘신계숙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로 전국의 자연과 맛 탐험
한국 첫 여성 중식 셰프이자 대학에서 중화요리를 가르치는 신계숙 교수.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사람과 자연과 맛을 탐험하는 '신계숙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는 시즌 3까지 제작된 EBS 인기 프로그램이다. 특유의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하며 유쾌하고 발랄한 생기를 뿜어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사랑을 받았다.
“제 지인이 ‘대체 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신계숙을 좋아할까’에 대해서 분석을 했는데요. 보통은 여자 방송인을 남편이 좋아하면 부인이 질투하고 경계하는데 ‘신계숙은 절대로 남편을 뺏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같이 좋아하는 거라나요. 이게 칭찬인가? 기분이 좋아야 되는 거에유, 나빠야 되는 거에유? 하하.”
방송 프로그램에서 특유의 친화력 십분 발휘
신계숙 열풍의 시작점은 EBS 장수 프로그램 '세계테마기행'이었다. 2020년 봄에 방영된 ‘꽃중년 길을 나서다-중국, 타이완’ 편에 출연한 신교수는 중국 남부에서 시작해 대만까지 이어지는 촬영 현장에서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했다. 만나는 현지인마다 언니, 동생, 오빠 삼았고 꾸밈없이 노래하고 춤추며 순간을 만끽하는 그의 에너지는 화면을 뚫고 나올 지경이었다. 덕분에 세계테마기행 해당 편은 그해 처음으로 EBS 전체 최고 시청률을 찍었다. 혹자는 신 교수를 일컬어 ‘세계테마기행이 낳은 최고의 스타’라고 하지만 실은 신 교수가 세계테마기행을 뜨게 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신교수는 요즘도 자신의 인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몸소 체험한다. 시장이든 동네 목욕탕이든 어디서든 사람들이 “팬이에요!” 하며 인사를 건네는 건 기본.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들은 길거리에서 손을 잡고 얼싸안는가 하면 갑자기 등짝을 치면서 “어쩜 그렇게 용감해?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어!”라며 격하게 반가워한다. 신 교수는 그럴 때마다 다른 편 등짝을 내밀며 “아이고 시원햐, 이쪽도 쳐 주셔유”라고 화답한다.
신 교수는 목소리 자체가 기운이 넘친다. 그야말로 활어처럼 펄떡인달까. 그는 평소 신조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엉덩이를 떼고 나가서 하는 것”이라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탈”이라고 또 호탕하게 웃는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엉덩이 떼고 나가야"
교수직에 방송일도 바쁜 데 그는 또 일을 벌였다. 재작년 12월에 오랫동안 준비해온 중식당을 론칭한 것. 그가 몸담은 대학에서는 그동안 교수의 겸직을 금지하고 있었는데, 신 교수의 제안으로 2021년부터 정책이 변경됐다. 그는 “지금은 학교가 학생들을 모집해야 하는 시대인데 외식 관련 전공자들에게 창업하라고 가르치려면 교수가 직접 해봐야 하는 게 아니냐”며 총장을 설득했다. 그렇게 학교에서 가까운 대학로에 ‘계향각’이라는 이름으로 중식당을 열고 배화여자대학교 1호 창업 교수가 됐다.
계향각에는 신 교수의 팬들이 많이 찾아온다. 보통 팔순, 구순을 넘긴 할머니들이 아들, 며느리에 손주들까지 대동하고 찾아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는 “어떤 분은 유방암 투병을 5년을 했는데 완치 판정을 받는 날, ‘내가 누구한테 가면 같이 진심으로 기뻐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게 신계숙인 것 같았다’며 혼자 찾아온 경우도 있었다”고 가슴 찡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신 교수는 식당을 열면서부터 하루에 출근을 세 번씩 한다. 날마다 새벽 4시쯤 일어나서 노량진 수산시장, 경동시장, 마장동, 황학동까지 두루 돌며 장을 봐 식당 냉장고에 넣어주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수산시장의 단골 가게 사장들은 신 교수를 보고 “횟집도 이렇게 장을 안 본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다. 점심 장사를 마치면 브레이크 타임에 학교로 출근해서 강의를 하고 다시 저녁 장사 전에 가게로 재출근. 퇴근하고 집에 가면 보통 밤 10시가 넘는다. 그는 “중간에 잠깐잠깐 쪽잠을 자면 다시 말짱해진다”며 “워낙에 좋은 체력을 물려받았다”고 말한다.
주방 옆 쪽방에서 5년여 사계절 청바지만 입고 버텨
신 교수는 단국대학교 중어중문학과 1학년 때부터 지도교수 추천으로 당시 유명 중식당이었던 ‘향원’에서 홀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다. 지도교수는 그에게 중국요리를 배워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고, 그렇게 졸업 후 8년간 ‘향원’ 주방에서 튀김 요리를 맡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중식당 주방은 남자들도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노동 강도가 높은 곳이다. 여자 요리사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가 무려 5년여를 주방 한편에 붙은 쪽방에서 지내며 사계절을 청바지만 입고 버틴 일화는 유명하다.
“중학교 2학년 올라가자마자 사나흘이나 지났을까. 점심시간에 친구들하고 막 도시락을 까먹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낯익은 아저씨가 불쑥 들어오더니 나한테 ‘가방 싸라’ 그러는 거에유. 아버지였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갑자기 보니까 아버지도 몰라보겠더라고요. 여튼 그렇게 가방 싸서 그길로 서울로 전학을 갔다니까유. 큰 오빠가 그때 철도 공무원으로 용산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혼자 모든 계획을 다 짜놔서 나는 하나도 몰랐어요.”
신교수가 나고 자란 곳은 충청남도 당진. 2남 3녀 중 막내였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 손에 이끌려 그렇게 낯선 유학길에 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한 마디 예고도 없이 전학을 시킬 수가 있을까 의아해 묻자 그는 “충청도 사람들은 원래 이러고저러고 얘기 안 해유. 행동으로 보이지”라며 웃는다.
“아버지가 여자는 더 많이 배워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시긴 했죠. 저는 서울이라는 곳이 있는지도 모르고 시골에서 그냥 친구들하고 즐겁게 살다가 어느 날 그렇게 갑자기 외로운 처지에 놓이니까 참 많이 힘들었어요. 더욱이 내가 원해서 온 게 아니었으니 청소년기를 암울하게 보냈지요. 그때 ‘인생은 참 외롭고 고달픈 것이구나’ 하고 깨달은 것 같아유.”
일찍이 인생의 쓴맛을 본 까닭에 하고 싶은 것은 무조건 도전하는 용기를 얻은 것일까. 올해 환갑을 맞이한 신 교수는 원동기면허를 불과 3년 전쯤에 땄다. 그가 타고 다니는 모델은 할리 48. 날렵하게 나온 경주용이라 당시 스쿠터 경력 1년차였던 그가 도전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는 오토바이 선택의 관건은 다리가 땅에 닿느냐 안 닿느냐인데 본인은 다리가 짧아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노라고 농담 섞인 고백을 건넨다.
“방송 촬영은 오토바이 타고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는 거라 오히려 힐링이 돼요. 그런데 식당은 손님은 손님대로 직원은 직원대로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니 스트레스가 심하죠. 즐겁게 하려고 시작했는데 점점 부처가 돼가는 느낌이 들어유. 수많은 걱정 속에 몸이 점점 번뇌의 바닷속에 가라앉고 있달까요. 계향각은 청나라 때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데 귀족들이 먹던 요리라 워낙에 손이 많이 가요. 어떤 요리는 꼬박 2박 3일이 걸리는 것도 있어요.”
식당을 연 이후로 신 교수는 과부하가 걸린 상태다. 원래대로 라면 지난해 가을에 '신계숙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 시즌 4' 촬영을 시작했어야 했으나 엄두도 못 내고 중단한 상태다. EBS에서는 빨리 시작하자고 성화지만 그는 계속 미루는 중이다. 아직도 식당에 신 교수의 팬들이 찾아오고 있어 자리를 비울 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번 여름 방학에 중국에 가서 오토바이를 타고 촬영할 계획은 있지만 그것도 미지수다.
"인생은 즐겁지 않아…즐겁게 살려고 노력"
“사람들이 나보고 ‘너는 인생이 왜 그렇게 즐겁냐’ 그러는데 사실 나도 인생이 즐겁지만은 않아요. 인생 자체가 고해인데 어떻게 즐겁기만 하겠어요. 즐겁게 살려고 노력을 하는 거지. 나는 친구가 밥숟가락 뜨면서 ‘아, 오늘 밥맛이 없어’ 그러면 ‘야, 누구는 밥맛 있어서 먹니. 쌀알들도 친구를 좋아해서 한가득 떠서 같이 입에 넣어야 좋아하는 법이야’라고 말해줘요.”
신 교수는 수업 때 학생들이 “교수님, 이거 이렇게 하면 안돼요?”라고 물을 때마다 “그렇게 묻지 말고 ‘저는 이렇게 하고 싶어요, 제가 이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게 좋아”라고 가르친다. 그는 “화법을 긍정적으로 하는 것이 마법을 일으키는 것”임을 늘 강조한다.
“맛터사이클 방송 찍으면서 전국 각지를 돌아다녀 보니까 사람들이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너무나도 열심히 살고 있더라구요. 나는 그동안 나만 열심히 사는 줄 알았거든요(웃음). 그래서 ‘열심히’에 긍정적인 마음을 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노래를 좋아하는 신 교수는 촬영 중에도 상황에 따라 떠오르는 노래를 곧잘 부른다. 오죽하면 ‘인간 주크박스’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애창곡을 묻자 주저 없이 '저 꽃 속에 찬란한 빛이'의 한 소절을 뽑는다. 그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가사 때문이다.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거리~ 꽃피는 마음이 열리는 꿈길~
사랑의 기쁨이 샘솟는 곳에~ 행복의 날개여 활짝 펴라~'
신계숙 교수는
1963년생. 단국대 중어중문학과 졸업 후 지도교수의 추천으로 유명 중국 음식점 ‘향원’에서 8년간 조리사로 일했다. 삼성생활문화센터의 요리 수업 인기 강사로 출강하다가 강의가 적성에 맞음을 발견, 이화여대 대학원에 입학해 식품학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1998년부터 배화여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통조리학과에서 중국 음식을 담당하고 있다. 2020년 EBS 프로그램 '세계테마기행 : 꽃중년, 길을 나서다-중국, 타이완' 편에 출연 후 독특한 개성으로 화제를 낳았고 이후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누비는 음식기행프로그램 '신계숙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EBS)'를 진행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2021년 12월부턴 청나라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중국 음식점 ‘계향각’을 오픈해 운영 중이다.
추명희 작가 jedd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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