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리히 연방공대 연구팀, '양자 중첩 상태' 실물 구현 성공
원자 10의17승 개수 사파이어 결정, 눈으로 확인 가능
사상 최대 크기의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등장했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 연구팀이 지난 21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Science)'에 게재한 양자 현상에 대한 논문을 두고 나오는 평가다. 연구팀은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상태와 동일한 양자 현상을 고체 상태에서 구현해 내는데 성공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양자 역학을 설명하는 사고(思考) 실험의 대명사다. 당초엔 1930년대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양자 중첩ㆍ확률 이론에 반박하기 위해 고안해 냈다. 상자 안에 고양이를 넣고 50%의 확률로 생사가 결정되는 환경을 조성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 고양이는 현재 살아 있는 것인가, 아니면 죽은 것인가? 상식적으로는 당연히 살아 있다지만, 양자역학적 해석은 "살아 있는 동시에 죽어 있다"이다. 즉 양자 입자의 상태는 결정돼 있지 않고 중첩(superposition)돼 있으며, 관측시 확률에 따라 상태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중첩 상태 등 양자 현상은 원자 단위에서나 일어날 뿐 고양이 같은 거시 단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이같은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 실험을 실제 현실에서 구현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양자컴퓨터의 핵심 소재로 사용될 수 있어 상용화를 앞당기는 등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이같은 시도가 있었지만 원자 단위의 아주 작은 규모였다. 그런데 연구팀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크기 수준의 고체 상태에서 이같은 중첩 상태의 양자 현상을 구현해 내는데 성공했다. 속눈썹 1개 무게의 절반 가량인 16마이크로그램의 사파이어 결정을 이용했다. 원자 10의17승개 가량으로 구성된 사파이어 결정에 진동을 줘 원자들이 동시에 두 방향으로 진동하도록 만드는데 성공했다. 원자는 어떤 조건에서도 절대 불변하는 일정한 진동수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진동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물질의 두 가지 상태가 중첩된 양자 현상을 실제로 구현해냈다는 의미다.
이번 연구 결과는 특히 분자 단위 이하에서 진행됐던 이전의 유사한 연구들에 비해 약 100조배 이상 큰 고체 물질에서 이를 성공시켰다는데 의의가 있다. 김철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박사는 "물질은 여러 상태가 있는데, 동일한 원자를 상대로 두 개의 다른 운동 상태가 중첩된 상태를 동시에 구현했다는 것"이라며 "(양자 역학의 핵심 이론인)중첩 상태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원천기술의 의미를 갖는다. (해당 연구팀이 염두에 두긴 했겠지만)양자컴퓨터의 소재 등으로 활용되려면 갈 길이 너무 멀다"고 설명했다.
한상욱 KIST 양자정보연구단장도 "일반적으로 양자 현상은 원자 1개 수준의 극미 세계에서 관측이 되는데 양자의 중요한 특성인 중첩 현상을 원자 갯수가 10의 17승 수준인 고체 시스템에서 보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라며 "이런 중첩 상태를 오래 유지하고 얽힘을 구현하는 등 추가 연구가 더 필요하겠지만 중요한 연구 성과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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