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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K-우먼]“일흔이 넘어도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는 게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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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세에 시니어 모델로 데뷔한 윤영주
결혼으로 제적…50세 넘어 졸업하고 박사 논문까지
에세이 ‘칠십에 걷기 시작했습니다’도 펴내

칠십 삼세의 시니어 모델이자 시니어 스타일의 아이콘 윤영주. 그는 2년 전 MBN 시니어 모델 오디션 프로그램 ‘오래살고볼일-어쩌다 모델’에 최연장자로 출연해 최종 우승을 거머쥐면서 화제를 모았다. 칠십대 노년의 여성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당당하고 우아한 자태로 시청자와 심사위원 모두를 놀라게 했다.


모델 윤영주는 세상이라는 런웨이 한가운데 서서 중장년 여성들에게 몸으로 말해주었다. “나이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건강만 하시라. 도전의식만 있다면 누구든, 나이가 몇 살이든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라고.


"나이가 몇 살이든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

그는 최근에 또 새로운 일을 해냈다. 자신의 인생과 사유를 담은 에세이 ‘칠십에 걷기 시작했습니다’를 펴낸 것. 부제는 ‘저지르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못할 게 없는 너에게’.

“출판사에서 중장년층 여성들 특히 나이 듦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자고 제안을 했죠. 웃기는 소리 말아, 나 칠십에 시작했어! 이 얘기를 해달라고요. 사실 저도 마흔 중반부터 쉰살 육십살 고개 넘어갈 때는 늙어가는 게 두렵기도 하고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육십 중반쯤 되니까 나이 먹어가는 게 감각이 없어지면서 어느 순간 두려움도 사라지더라고요.”



[파워K-우먼]“일흔이 넘어도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는 게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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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예측불허다. 파격적인 도전을 거듭하는 모델 윤영주도 칠십 넘어 자신이 지금처럼 모델로 활동하게 될 것이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대학교 3학년 때 가부장적인 집안 분위기가 숨막혀 도피성으로 결혼을 선택했을 때도 종갓집 며느리라는 더 큰 속박의 굴레를 뒤집어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결혼으로 이대 제적…종손 며느리의 고달픈 삶

1970년대 당시 이화여대의 교칙상 결혼을 하면 제적 대상이었다. 그는 결혼을 숨긴 채 학교를 계속 다니며 졸업할 계획이었지만 임신을 하면서 결국 들통이 나 버렸다. 그렇게 34대 종손 며느리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고 1년에 열세 번의 제사를 지내며 살았다. 그 사이 미술관 큐레이터, 방송국 리포터, 칼럼니스트 등 외부 활동을 하고 싶어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번번이 남편의 반대에 부딪혀 중도 포기해야 했다.


2003년이 되어서야 이화여대의 제적이 풀렸다. 그는 이미 오십이 넘은 나이였지만 그래도 마무리하지 못한 학업을 마치고 싶었다. 그렇게 30년 넘게 묵은 빗장이 풀리자 그의 공부에 대한 열정은 말 그대로 폭발했다. 학사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에 도전했다.

“공부가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어요. 내가 그 나이에 뭐 어디 가서 취직하려고 했겠어요? 그냥 순수하게 알고 싶고 배우고 싶어서 공부했어요. 쉰여섯에 석사 마쳤는데 제 열정이 가여웠는지 박사 과정도 붙여주더라고요. 신나서 들어갔는데 곧바로 후회했죠. 정말 힘들더라고요(웃음).”


그의 박사 논문 주제는 ‘메를로 퐁티의 상호주체성으로 본 백남준의 미디어아트’. 다소 생소한 이름의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몸 철학의 선두주자로 기존의 관념 중심이 아닌 감각을 중시했고 “예술 작품을 보듯이 철학도 그렇게 느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로 그 부분이 윤 모델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당시에 육십 넘은 내가 박사 논문을 썼다니 그냥 대충대충 했겠거니 하는데 미학과 철학은 학문 중에서도 쉽지 않은 분야에요. 특히 철학은 용어 자체가 벽이었어요. 번역서와 원서를 다 탐독해가면서 정말 더할 수 없을 만큼 노력했어요. 그래도 오래 살아서 경험이 많다 보니 이해가 점점 되더라고요.”



[파워K-우먼]“일흔이 넘어도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는 게 인생” 시니어 모델 윤영주.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도 읽고 또 읽다가 보면 어느 순간 이해가 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는 지금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꼽으라면 “박사 논문 쓸 때”라며 “도저히 모르겠는 것을 깨우쳤을 때의 그 희열은 절대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주변에서는 “나이 먹고 왜 공부를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의아해했지만 그는 그저 “나라는 존재를 알아가는 과정이 늦게 시작됐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윤 모델은 “철학 하는 사람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게 본질”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그는 철학 공부를 통해 자신의 본질적 속성을 찾았을까?

“나는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철학과 미학과 예술. 너무 깊은 학문이라 어차피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발을 들여놓고 찾아가는 과정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스스로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을 공부해보고 싶어요.”


전 세계 셀럽들이 열광하는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베라왕은 74세의 나이에도 젊은 모델들보다 더 멋진 육체와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CNBC와의 인터뷰에서 공개한 그녀의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은 “두뇌(Brain)와 영혼(Spirit)”이었다. 윤영주 모델의 비결 역시 마찬가지인 듯하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자아를 탐구하는 자세 말이다.


그는 논문을 마치고 쉴 법도 한데 또 다른 도전을 했다. 이번엔 몸을 쓰고 싶어 모델 아카데미에 찾아갔다. 그때 나이가 칠십. 그가 돈 주고 배우겠다는데도 아카데미 대표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걸을 수 있겠어요? 어려울 텐데’라고 말했다.


[파워K-우먼]“일흔이 넘어도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는 게 인생” 2022년 8월 디자이너 최병두 브랜드 A. Bell 쇼에 선 모습. 사진제공=윤영주


지난해 그는 패션 인플루언서 자격으로, 90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디자이너 진태옥 선생을 인터뷰할 기회를 잡았다. 패션계의 대모인 진 선생을 만나는 자리인지라 무척이나 떨리고 긴장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지면서 진 선생은 그에게 “윤영주 씨, 당신이 젊은 모델보다 더 아름다운 모델이라는 거 아세요?”라고 말했다. 그저 나이든 시니어 모델을 북돋아 주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 때 그는 ‘이 말을 잊지 말자, 자존심을 가지고 살자’고 다짐했다.

“나이 들어서 좋은 것은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하나씩 알아간다는 것이에요. 오랜 세월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던 갈등, 욕망이 점점 희미해지고 누구하고도 대화할 수 있고 누구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긴다는 것도요.”


그는 10여 년 전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다. 그토록 치열하게 싸웠던, 한때는 정말 미웠던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의 상실감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지난 50년간의 일상이 남편과 함께 한꺼번에 사라져버렸을 때 비로소 남편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였음을 깨달았다. 제사도 그렇다. 젊은 날엔 그를 그토록 괴롭게 하는 의식이었으나, 52년간 함께 하며 어느덧 아름다운 세리모니가 됐다. 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을 차리는 과정이 비단 조상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정서적 에너지를 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들 내외와 의견이 달라 이제 그 의식도 떠나보냈다. 후련할 줄 알았는데 남편을 떠나보냈을 때만큼이나 커다란 상실감이 밀려들었다.


윤 모델은 “젊음이 아무리 좋아도 다시 2~30대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안 가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곱고 화려한 외모만 보고 자산이 많은 종갓집에서 정신적인 고달픔만 겪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17년 동안 스포츠용품숍도 운영하고 괴팍한 성격의 홀시아버지를 20년 넘게 모시기도 했다. 한때는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억울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시대와 상황은 달라도 지금 젊은 친구들이 느끼는 분노와 좌절을 이해해요. 저는 힘들 때마다 음악으로 위로를 받으며 돌파구를 찾았어요. 말로, 쇼스타코비치를 들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정화를 했죠.”


현재의 분노와 불안 예술로 위로 받길

그는 젊은 세대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 현재에 대한 분노를 예술을 통해 위로 받으라고 충고 한다. 어차피 외부의 상황은 어찌할 수 없으니 내면을 다스려야 하는데, 그럴 때 예술만 한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예술을 통해 내면적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고 무엇보다 예술은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


그가 낸 에세이의 제목 ‘칠십에 걷기 시작했습니다’는 겉으로는 런웨이에 선 것을 표방하지만 거기엔 여러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다. 칠십에 새로운 길을 가기 시작했다는 것, 아직도 두려움과 떨림과 희망 속에 있다는 것, 그리고 나에게는 여전히 나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 등등이다.


누군가 그랬다. 100세 인생을 하루로 놓고 보면 오십세는 이제 정오일 뿐이라고. 그 공식대로라면 칠십삼세는 이제 막 저녁 6시 즈음이다. 특히나 윤 모델처럼 열정적인 사람의 경우엔 한여름 날의 석양이 절정에 달하는 가장 우아한 시간대에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때이지만, 어떤 이들에겐 아직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충분한 그런 시간이다. 그는 옷을 차려입고 파티에 참석하러 이제 막 집을 나서는 중이다. 오늘은 어떤 새로운 일이 벌어질지, 기대와 설렘을 가득 안고 말이다.


*윤영주 시니어 모델은


1949년생. MBN 시니어 모델 오디션 프로그램 ‘오래살고볼일-어쩌다 모델’에 최연장자로 출연해 우승을 거머쥐면서 화제를 모았다.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재학 중 결혼해 50여 년 넘게 종갓집 며느리로 살며 칠백여 차례의 제사를 지냈다. 육십세 넘어 홍익대학교 미학과 박사학위 논문을 썼고 칠십세에 런웨이 워킹을 시작했다. 현재는 시니어모델, 광고모델, 인플루언서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최근에 에세이 ‘칠십에 걷기 시작했습니다’를 펴냈다.




추명희 기자 stell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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