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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라이트]자발적으로 바뀌는 모반…차주영이 그린 '굴욕'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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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슬퍼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 영향으로 자신도 슬퍼지진 않는다.

성인이 돼서도 가해자들과 교류하는 최혜정은 언제부턴가 굴욕을 즐겼을 수 있다.

이 같은 부류는 치밀하게 상대방이 나를 모욕하도록 조장하거나 유도함으로써 자신이 당했다고 생각하는 굴욕을 복수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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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주영 '더 글로리'서 박연진 돕는 최혜정役
동등한 위치 오르길 내심 희망…노골적 표현도
맹수들 틈에서 살아남으려는 발악으로 연기
두려움과 허영의 혼재, 뒤틀린 욕망으로 표현
타인 감정 인지에 익숙한 최혜정의 두 얼굴

괴롭힘은 여러 사람이 관여하는 집단적 작용이다. 넷플릭스 '더 글로리'에서 최혜정(차주영)은 주모자인 박연진(임지연)의 협력자다. 학교 폭력에 직간접적으로 가담한다. 박연진과 동등한 위치는 아니다. 오히려 약자의 얼굴을 보일 때가 더 많다.


[라임라이트]자발적으로 바뀌는 모반…차주영이 그린 '굴욕'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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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진은 이른바 '방어적 자기중심 성향'이 높다. 자존감은 높지만 대수롭지 않은 위협에도 화를 낸다. 최혜정은 상대적으로 자존감이 낮아 보인다. 언제든 피해자로 전락할 수 있다고 생각해 눈치를 보기 바쁘다. 그는 성형수술, 명품 소비 등으로 결핍을 채운다. 박연진과 동등한 위치에 서길 내심 희망한다.


욕망은 이따금 주모자 앞에서도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박연진의 치부인 윤소희(이소이) 이야기가 나오자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리는 신이 대표적인 예다. "아, 나 대답할 뻔. 연진이가 시켜서 갔었다고."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혜정아? 난 재준이랑 같이 있었어, 그날. 우리 그때 다 억울하게 조사받았던 거, 여기 모르는 사람 없잖아?" "(코웃음 치며)이럴 때만 우리지?"


차주영은 동등한 위치에서 부리는 객기로 그리지 않았다. 맹수들 틈에서 살아남으려는 발악으로 연기했다. "최혜정은 늘 가해자들 속에서 눈치를 본다고 생각했어요. 같은 위치에 설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너 그때 문동은 아니었으면 너였어. 네가 지져졌다고'라는 이사라(김히어라)의 대사도 있잖아요. 그걸 들키고 싶지 않아 과민반응을 일으킨다고 해석했어요. 드러나면 금방이라도 무시당할 테니까요. 일종의 열등감인 셈이죠. 그렇다고 매번 민감하게 반응하진 않아요. 나름 큰마음 먹고 저지르는 거예요."


두려움과 허영의 혼재는 뒤틀린 욕망으로 발전한다. 이 가운데 하나가 명품 소비다. 충족으로 자부심, 승리감, 우월감을 느낀다. 고유한 권력 체계를 구축하는 동시에 자기 영역도 확장한다. 상하이의 한 호텔에서 후배 스튜어디스를 나무라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너 혹시 살 빠졌니?" "네, 쪼금." "내가 나랑 몸무게 맞추라고 했지? 핏이 달라지잖아. 너 이러면 고과 없어." "죄송합니다."


[라임라이트]자발적으로 바뀌는 모반…차주영이 그린 '굴욕'의 힘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 최혜정의 얼굴은 노여움과 분노, 내적 불안감으로 가득하다. 스스로 강박성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중독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오히려 상처받은 내면의 공허감을 파고들고, 이를 메꾸려고 구축한 거짓 자기를 부추긴다.


거짓 자기는 내면의 깊은 공허감을 일시적인 자기애적인 만족과 우월감으로 채우며 생명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최혜정의 경우는 비자발적에서 자발적으로 바뀌는 모반으로 발현된다. 각종 분탕질로 가해자 집단의 분열을 조장한다. 차주영은 "자발과 비자발을 반반씩 연기했다"고 말했다. "시청자에게 눈치 보는 얼굴이 얼마나 각인됐을지 모르겠지만 자발적으로 나서는 과정에서 분명 억누른 감정의 폭발을 느끼셨으리라 생각해요. 사실상 자의 반 타의 반의 복수를 행하는 셈이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동력은 욕망이고요."


박연진과 이사라 앞에서 얄밉게 빈정거리며 섣부른 행동을 유도하는 모습은 문동은이 언급하는 망나니 칼춤을 방불케 한다. 결과적으로 조력자인 주여정(이도현) 못지않게 문동은을 돕는다. 최혜정이 가해자 집단에서 협력자인 동시에 강화자라서 가능한 일이다. 강화자는 폭력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진 않지만 비웃거나 괴롭힘을 부추기는 등 소극적으로 동조하는 사람이다. 공감 능력에서 주모자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라임라이트]자발적으로 바뀌는 모반…차주영이 그린 '굴욕'의 힘

공감 능력은 크게 감정적 공감 능력과 인지적 공감 능력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타인의 감정을 공유하거나 그에 따라 영향을 받는 것을 말한다. 다른 사람이 슬퍼지면 자신도 슬퍼지거나 최소한 그 사람이 애처롭게 느껴진다. 후자는 반드시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감정 상태를 이해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슬퍼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 영향으로 자신도 슬퍼지진 않는다.


박연진은 두 능력이 모두 낮다. 반면 최혜정은 인지적 공감 능력이 높다. 박연진의 남편인 하도영(정성일)과 대화에서 명확히 나타난다. "고등학교 때 연진이가 동은이를 괴롭혔어요." "학교 폭력 같은, 그런 거 말입니까?" "학교 폭력 같은 게 아니라 딱 그거죠." "어떻게요?" "심하게?" (…) "문동은 씨가 처음도 아니란 얘깁니까?" "부부끼리 대화가 없으시구나. 오늘 한번 해보세요."


최혜정이 가해자 집단의 감정적 혼란 속에서 약삭빠르게 행동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다른 가해자들은 눈에 보이는 줄다리기에만 매달린다. 서로 싸우는 원인조차 살피지 않고 갈등의 골을 키운다. 박연진과 이사라, 전재준(박성훈)이 제각각 문동은을 만나고 할 말만 늘어놓는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 "너네 혹시 우리 고등학교 때 기억나? 자세히." "예솔이는 잘 있냐? 너 여기 있으면 누구랑 있냐?" "내가 문동은한테 어떻게 했지? 심했나?" "진짜 너희들한테 가방 안 던졌어? 어디서 본 건 있어서. 달러로 채우래." "아, 예솔이 초등학교 갔겠네. 어디 세명초등학교?"


[라임라이트]자발적으로 바뀌는 모반…차주영이 그린 '굴욕'의 힘

최혜정은 이들과 달리 타인의 감정을 인지하는 데 익숙하다. 자기에게 다가올 피해를 감지하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시작한다. 차주영은 이때 촉매제를 오랫동안 느껴온 '굴욕'으로 봤다. 심리학자 에블린 린드너는 굴욕을 "감정의 핵폭탄"이라고 정의했다. "굴욕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자아, 즉 자신을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는 의식에 실존적인 위협을 가한다. 한 개인이나 집단을 강제로 깎아내리고 그들의 자부심과 명예, 존엄을 해치거나 훼손하는 복속의 과정이다."


성인이 돼서도 가해자들과 교류하는 최혜정은 언제부턴가 굴욕을 즐겼을 수 있다. 이 같은 부류는 치밀하게 상대방이 나를 모욕하도록 조장하거나 유도함으로써 자신이 당했다고 생각하는 굴욕을 복수하려고 한다. 린드너는 전쟁이나 집단학살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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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굴욕을 느끼는 과정에는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 그것을 재빨리 파악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의 관점에 맞춰 넣는 사고가 선행된다. 낮은 처지에 빠진다는 생각은 이미 자신을 높이 여기고 있었음을 뜻한다. 최혜정은 시청자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자존감이 높았을 것이다. 여차하면 분탕질할 각오가 돼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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