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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설마, 빈손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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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대통령 3·1절 기념사
일본 신뢰를 위한 배수진
한일정상회담 빈손은 안된다

[시시비비]설마, 빈손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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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왜 3·1절 기념사였을까. "일본은 협력 파트너"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처음 접한 뒤 떠오른 생각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선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된 3·1운동을 기념하는 날 윤 대통령은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아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로 변했다"고 했다. 야권에선 "3·1절 망언"이라며 십자포화가 쏟아졌다.


야당의 공세가 예견된 윤 대통령의 3·1절 발언은 최근 사석에서 여권 고위 관계자를 만나면서 의문이 풀렸다. 이 관계자는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을 확인한 2018년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인해 "당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거짓말쟁이가 됐다"고 했다. 국내에서 진행된 일본 강제동원 피해자 4명이 가해자인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1,2심 모두 패소했지만,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히면서 한국이 국제 사회의 신뢰를 잃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 현재 일본 총리는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일본 외무상을 지내며 한일 위안부 협상을 주도했다. 당시 위안부 협상은 양국간 합의에 성공했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이 배상을 거부하는 등 한국의 반발 여론에 막혀 유야무야됐다. 윤 대통령은 한일관계의 민감한 고리인 3·1절을 활용해 관계 개선의 진정성을 보여주며 불신을 해소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실제 정부는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직후 일본 강제징용 배상 해법을 발표하면서 한일관계 개선에 속도를 냈다. 한일 기업의 자발적인 기부를 통해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배상하는 이른바 '제3자 배상안'이다. 일본과 미국이 즉각 환영의 입장을 밝힌데 이어 이달 16일 한일 정상회담과 다음달 26일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 등 일정도 속전속결로 합의됐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3·1절 발언의 배경으로 보이는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은 이미 이명박 정부였던 2012년 대법원이 파기환송한 사건이다. 박근혜 정부에선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과 사법거래를 통해 강제징용 재판을 미루는 방식으로 문제를 회피했다. 한일 양국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해석을 놓고 입장차를 보이면서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25년간 끌어왔다.


윤 대통령이 "미래를 위한 결단"이라면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나선 것은 늦었지만 용감한 결정이다. 하지만 독립운동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을 기리는 자리에서 그 물꼬를 텄어야 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한일 정상회담 후폭풍이다. 이미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94)가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그 돈을 받을수 었다"며 정부의 '제3자 배상안'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했다. 국민 여론도 부정적이다.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일제 강제배상 해법이 발표된 이후 하락세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달초 일본 강제징용 해법을 발표한 자리에서 "물컵에 비유하면 물컵에 물이 절반 이상은 찼다"면서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서 그 물컵은 더 채워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안이 사실상 '반쪽짜리'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일본 정부의 전향적 입장 전환을 위해 3·1절 기념사를 통해 정치적 배수진을 쳤는데, 한일 정상회담에서 성과가 없을 경우 '빈손 외교'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오는 16일 예정된 한일정상회담은 반대 여론을 잠재울 만한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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