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느·템즈강보다 크고 넓지만, '춘하추동 같은 모습' 한강
개발·자동차에 밀려 접근 힘들어…역사·스토리 사라져
서울시, 보행교·서울링 건설로 관광객 불러들인다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널 때는 무서웠다." 영국인 리처드 어빈(Richard Irvine·33)에게 한강 다리를 걸어서 건너본 느낌에 대해 물었더니 내뱉은 첫 마디다. "차들이 쌩쌩 다녀서 어서 빨리 건너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고도 했다.
런던의 IT업계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리처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완전 재택근무 체제가 되자 현재는 런던을 떠나 부모님이 살고 있는 콘월로 이주해 살고 있다. 런던에서는 매일 타워브릿지를 걸어서 건너며 출퇴근했다. 한국과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은 청년으로 한국 여성과 결혼해 서울 약수동에서 1년 정도 살았다. 2년에 한 번은 한국을 찾아 처가인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한 달 정도 한국을 탐방하고 콘월로 돌아가곤 한다.
산책을 좋아하는 리처드는 동호대교와 양화대교, 잠수교(반포대교)를 걸어서 건너봤다고 했다. 잠수교는 둔치의 공원으로 빠져나갈 수도 있어서 몇번이나 걸어서 건너봤지만, 동호대교는 한 번 건넌 뒤 다시 걸어서 건너지 않았다. 양화대교는 선유도로 가기 위해 가끔 찾는데 걸어서 건너지 않고 버스를 타고 중간에 내려서 간다.
◇"선유도 좋아하고, 잠수교서 본 사람들 활기"= 런던 템즈강의 다리와 서울 한강의 다리가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리처드에게 물었더니 "한강이 템즈강보다 훨씬 크고 넓어서 그런지 다리도 높고 길다"면서 "런던에서는 다리 위로 걸어 다니는 것이 당연했는데, 서울의 한강 다리는 걸어서 다니는 다리가 아닌 그냥 찻길에 작은 통행로가 붙어 있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한강 풍경에 대해 물었더니 "선유도가 아주 좋았다"고 했다. "강 한가운데 조그마한 섬에 식물도 많고 조경이 잘된 예쁜 공원이 있더라"면서 "공원 안에서 각종 문화행사를 하는 것도 너무 좋았다"는 것이 리처드의 평가다. 그러면서 사람들도 친절하고, 활기차서 인상 깊었다며 말을 돌렸다. "잠수교를 건널 때 강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소풍 나와서 음식도 시키더라. 다양한 활동을 하는 모습이 매우 활기차 보였다"고 덧붙였다.
서울의 관문이자 얼굴인 한강에 대한 외국인의 평가는 박하다. 넓은 강폭과 높은 다리들이 촘촘히 놓인 큰 강의 모습에 처음에는 압도되지만,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고 즐기기는 더 어려운 한강에 대해 실망하는 관광객이 많아서다.
한강에는 준공 예정인 고덕대교(가칭)를 포함해 모두 34개의 교량이 설치돼 있다. 도로교랑 26개, 도로·철도병용 교량 4개, 철도교량 4개로 보행자 전용교량은 단 한 곳도 없다. 한강에 최초로 놓은 다리는 1900년 준공한 한강철교다. 당시 경성역과 노량진을 철도로 연결한 것이다. 교통수단의 이동을 위해 한강에는 서른 개가 넘는 다리가 건설됐지만, 서울의 역사와 문화는 사라지고, 교통수단의 이동을 위한 '콘크리트·철제 구조물'로만 존재하고 있다.
◇센강·템즈강, 세계적 명물 다리와 건축물 즐비= 파리의 센강에는 퐁네프, 퐁디에나, 퐁데쟁발리드, 퐁마리 등 30여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로 유명한 퐁네프는 1604년 완공한 419년 된 다리로 파리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반드시 찾는 명소 중 하나다. 주목할 만한 것은 센강의 좌우에 늘어선 유명 건축물들이다. 노트르담 대성당과 생트샤펠 성당을 비롯해 루브르박물관, 오르세미술관, 에펠탑 등이 센강변을 따라 줄지어 등장한다.
런던의 템즈강에는 모두 75개의 다리가 건설돼 있다. 단연 최고의 다리는 1894년 완공된 타워브릿지다. 고딕양식으로 설계된 도개교인 타워브릿지는 자동차도 지나다니지만, 큰 배가 오고 갈 때 가끔 다리를 들어 올려 관광객들은 이를 구경하면서 사진을 찍는다. 국회의사당, 빅벤과 함께 런던의 랜드마크이자 유럽의 명소로 손꼽힌다. 테이트모던과 세인트폴 대성당을 연결하는 보행교인 밀레니엄브릿지는 2000년에 완공됐지만, 관광객이 몰려드는 성지가 된 지 오래다.
역사와 관광 전문가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 한강과 한강의 다리에 대한 스토리텔링의 실패다. 양희경·심승희·이현군·한지은이 쓴 '서울 스토리'에 따르면 한양 도성은 한강 이북에 위치해 남부지방과 연결되려면 한강을 건너야 했다.
한강에 근대식 교량이 생기기 전에는 나루터가 강의 남북을 연결했다. 인천·강화로 연결되는 양화나루, 영등포를 지나 인천으로 가는 서강나루, 마포나루에서 노량진으로 건너면 시흥, 동작진을 건너면 과천에 이르렀다. 서빙고진과 한강진, 삼전도, 광진 등이 주요 교통지였다. 배가 아닌 철도를 통해 한강 남쪽과 북쪽이 연결된 것은 1900년 한강철교가 준공되면서부터였고, 철도가 아니라 걸어서 한강을 건널 수 있게 된 것은 1917년 한강인도교가 준공되면서부터다. 이 다리가 현재의 한강대교다.
◇스토리텔링이 사라진 한강과 한강 다리= 근대식 교량 이전에 일시적으로 있었던 다리는 배다리, 즉 주교(舟橋)였다. 한강대교 남쪽 상도터널 인근의 용양봉저정은 노량진의 행궁이었다. 국왕의 안전을 위해 한강에 배다리를 설치하고 건넌 후 용양봉저정에 잠시 쉬었다. 궁궐에서 남대문을 지나 이곳을 거쳐 동작, 남태령, 과천, 인덕원, 수원 화성을 가는 경로에 있던 다리였다. 예부터 노량진 일대는 교통의 중심지였고, 그래서 이곳에 한강인도교가 들어섰다. 한국 전쟁 당시 이 다리를 폭파해 북한군의 남진을 막았고, 1954년에 완전히 복구됐다. 이런 스토리들이 지금의 한강과 한강 다리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강은 파리의 센강이나 런던의 템즈강,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네바강 등에 비해 강폭이 훨씬 넓지만, 수량이 적다. 이 때문에 강 상류에 보를 만들어 인위적으로 강의 수량을 조절한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이 때문에 한강에 백사장이 있던 과거의 모습은 기대할 수 없고, 춘하추동 똑같은 한강의 모습만 볼 수밖에 없다"면서 "결국 과도한 개발과 사람이 빠진 자동차만을 위한 도로와 교량의 설계가 한강의 넘쳐나는 스토리텔링을 막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안타까워했다.
특히 강변 양쪽의 도로와 즐비한 아파트들이 문제다.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는 사람의 접근을 막고, 아파트들은 한강의 조망권을 가린다"면서 "아파트 주민에게만 조망권을 주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고, 자동차를 위해 디자인된 다리는 사람이 다닐 수 없는 비인간적인 공간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 황 소장의 진단이다. 그는 "과도한 개발과 자동차 중심의 다리와 한강을 사람 중심으로 되돌려야 한다"면서 "한강 다리 위 도로의 3분 1은 인도교로 확보해야 하고, 안전장치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성호 서울시 관광정책과장은 "한강을 제대로 즐기고자 하는 관광 수요도 꾸준한 만큼 한강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 "잠수교를 보행교로 전환하거나, 인천에서 서울까지 물길로 들어올 수 있게 하기 위해 서울항을 조성하는 등 관광객들이 한강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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