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삼일절'을 앞두고 안중근 의사가 감옥에서 쓴 '한국인 안응칠 소회'를 소개한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하고 현장에서 체포된 뒤 곧바로 일본제국 치하에 있던 뤼순감옥으로 이감됐다. 검찰관의 첫 심문이 있기 전인 11월6일 본인의 답변을 연필로 적어 일본인 감옥소장에게 제출했는데, 이 글에는 국권을 빼앗긴 조국에 대한 안타까움과 전쟁으로 황폐화된 아시아 국가들의 참담한 현실, 식민지 국가에 만행을 일삼았던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다. 안 의사는 이듬해 2월14일 사형 선고를 받고 3월26일 순국했다. 안응칠은 안 의사의 아명이며, 아래 글은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번역했다. 글자수 642자.
하늘이 사람을 내어 세상이 모두 형제가 되었다. 각각 자유를 지켜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누구나 가진 떳떳한 정이라.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의례히 문명한 시대라 일컫지마는 나는 홀로 그렇지 않는 것을 탄식한다. 무릇 문명이란 것은 동서양, 잘난이 못난이, 남녀노소를 물을 것 없이 각각 천부의 성품을 지키고 도덕을 숭상하여 서로 다투는 마음이 없이 제 땅에서 편안히 생업을 즐기면서 같이 태평을 누리는 그것이라. 그런데 오늘의 시대는 그렇지 못하여 이른바 상등사회의 고등인물들은 의논한다는 것이 경쟁하는 것이요, 연구한다는 것이 사람 죽이는 기계라. 그래서 동서양 육대주에 대포 연기와 탄환 빗발이 끊일 날이 없으니 어찌 개탄할 일이 아닐 것이냐. 이제 동양대세를 말하면 비참한 현상이 더욱 심하여 참으로 기록하기 어렵다. 이른바 이토 히로부미는 천하대세를 깊이 헤아려 알지 못하고 함부로 잔혹한 정책을 써서 동양 전체가 장차 멸망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슬프다. 천하대세를 멀리 걱정하는 청년들이 어찌 팔장만 끼고 아무런 방책도 없이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 옳을가 보냐. 그러므로 나는 생각다 못하여 하얼빈에서 총 한 방으로 만인이 보는 눈 앞에서 늙은 도적 이토의 죄악을 성토하여 뜻있는 동양 청년들의 정신을 일깨운 것이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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