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핵심인 책임준공 약정 제공하지 않기로
울산 주상복합 사업주가 빌린 브리지론 부도 처리
사업 진행하면 더 큰 손해 우려…대출에서 손절매
“부동산 시행 사업 상황 불안하다는 방증”
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대우건설은 최근 백정완 대표이사 직인이 찍힌 ‘울산 동구 일산동 주상복합 신축사업’ 관련 공문을 여러 금융회사로 구성된 대주단에 보냈다. 이 공문에는 "PF대출 관련 업무는 공사도급 계약서상 ‘협조’ 사항으로 돼 있기 때문에 대우건설의 책임준공 의무 이행은 법적 강제 사항이 아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브리지론을 본 PF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시공사가 관행적으로 제공해왔던 책임준공 약정을 제공하거나 이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우건설은 시공사로 참여하면서 연대보증을 섰던 후순위 브리지론 440억원을 자체 자금으로 상환했다. 사업장은 공매로 넘길 계획이다. 보증을 제공한 대출에서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도급 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기존 공사비 등의 조건으로 사업을 계속 진행해 손실을 키우느니 기존 대출에서 손실을 보더라도 일찌감치 손을 떼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적자가 예상되는 시공 사업을 본 PF로 넘어가기 전에 미리 손절매한 셈이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사업장을 정리하면서 발생한 손실은 지난해 4분기 실적으로 선(先)반영했다"면서 "올해 이 거래로 인한 추가적인 손실은 없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 관계자들은 대형 건설사가 도급 계약을 맺은 후에 책임준공을 하지 않는 것은 업계 관행상 상당히 희귀한 사례라고 말했다. IB업계 관계자는 "대우건설이 해당 사업장의 브리지론 대출에 고의 부도를 내면서 사업을 더 진행할 수 없게 됐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공사비는 계속 오르고 부동산 경기 악화로 분양가 하락 압력이 커진 상태"라며 "대우건설이 해당 사업장의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해 책임준공에 법적 강제성이 없다는 구실로 사업에서 발을 뺀 것"이라고 전했다.
대우건설의 책임준공을 믿고 선순위 브리지론에 참여했던 금융회사들은 갑작스러운 디폴트에 당황한 모습이다. 기존 대출에는 유안타증권(200억원), 우리금융캐피탈(100억원), 아이파트너스자산운용(80억원) 등이 대주단으로 참여했다. 대우건설이 보증을 선 후순위 대출 440억원과 에쿼티(지분) 100억원을 합치면 토지 확보를 위해 빌린 브리지론의 총 규모는 1000억원이다.
본 PF를 추진하던 증권사와 대주단도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우건설 책임준공 약정을 기반으로 1500억~2000억원 규모의 본 PF에 투자자들을 모두 모아 놓았고 상당수의 금융회사가 내부 승인까지 마친 상태였다"면서 "대우건설이 갑자기 책임준공을 회피하면서 본 PF는 도루묵이 되고 기존 대출은 모두 부실자산이 됐다"고 전했다.
IB업계 관계자는 "국내 10위권 내에 있는 최상위 건설사가 보증까지 제공했던 도급 사업을 자체적으로 중단해 일부러 부도를 낸 사례를 본 적이 없다"면서 "그만큼 부동산 시행 사업의 상황이 불안하다는 방증"이라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말 전국 미분양이 6만8000세대에 달한다"면서 "대형 건설사와 도급 계약을 맺은 사업장까지 부실이 발생하면서 같은 사례가 확산할까 금융회사들이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편 이 사업장은 울산광역시 동구 일산동에 총 644세대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건설하는 사업장이다. 대우건설이 도급 계약을 하면서 대우 아파트 브랜드인 ‘푸르지오’를 달고 본 PF와 분양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브리지론이란?
브리지론은 시행 사업자가 아파트 등의 건설 사업 인허가를 받기 전에 사업 부지(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빌린 자금이다. 지방자치단체 등 정부로부터 사업을 승인받아 사업 추진이 확실시되면 본 PF와 분양 등 본격적인 사업을 진행한다. 사업의 다리를 놓아주는 대출이어서 브리지론이라고 한다. 지난해 말 현재 금융회사들이 브리지론 상태로 만기를 연장하고 있거나, 본 PF로의 전환을 기다리는 대출이 수십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금융당국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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