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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때]이어령 강인숙 부부도 '전세 사기'에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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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숙 선생 자전적 에세이
단칸방 신혼생활부터
남편과 일군 '영인문학관'까지
여덟번의 거처 마련 과정 통해
시대의 지성과 함께 한 세월 그려

[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책의 저자 강인숙 선생은 문학평론가이자 국문학자다. 1933년 함경북도 갑산에서 태어나 이원군에서 살다가 1945년 11월에 월남했다. 이후 경기여자중·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숙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에서는 동기 동창인 남편 고(故) 이어령 박사를 만나 1958년 결혼했다. 건국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퇴임 후 영인문학관을 설립해 운영해 왔다.


저자는 살아온 세월을 정리하기 위한 자전적 에세이를 써야겠다는 생각에 펜을 들었다. 결혼 후의 이야기, 그러니까 이어령 선생과 집(부부의 집필실)을 늘려온 여정을 살뜰히 서술했다. 단칸방에서 시작한 신혼생활에서부터 세 아이의 방과 부부의 집필실을 갖춘 저택을 거쳐, 자녀들이 독립한 이후 집을 줄여 영인문학관을 건립한 과정을 얼개 삼아 틈바구니마다 당시의 추억을 채워 넣었다. 비록 남편은 떠났지만 그와 함께 일군 영인문학관을 "이어령 선생 한 사람이 ‘글로 지은 집’"이라며 "그의 원고지 매수의 가시적인 형상"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 어때]이어령 강인숙 부부도 '전세 사기'에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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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집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시작은 남편과 5년 연애 끝에 결혼하면서 마련한 작은 단칸방이었다. "오 년이나 사귀었으니 결혼할 것 아니면 이쯤에서 끝내는 게 좋겠다"는 어머니의 말에 서둘러 혼례를 올리면서 마련한 집이었다. 양가 집안 모두 결혼 자금을 대줄 형편이 아니었기에 주변의 축의금을 더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시대의 지성으로 추앙받는 이어령 선생도 냉혹한 사회 앞에서 고된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알고 보니 단칸방을 전세 낸 사람들이 집주인이 아니라, 집을 통째로 세 얻어 자신들에게 전세를 내주었던 것. ‘계획적인 사기‘였으나 딱히 대응할 방법이 없었고, 석 달의 승강이 끝에 가까스로 그곳을 벗어났다. 저자는 "그 집에서 우리는 인간에 대한 불신을 배웠다. 비싼 수업료를 냈다"고 토로했다.


두 번째 집은 방 두 개의 북향집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어항 물이 얼어버릴 만큼 냉골이었고 삶에도 여유가 틈입할 공간이 없었다. 생활비가 없어 콩나물국만으로 연명하던 차에 시댁 생활비까지 부담해야 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사회복지가 사실상 전무하던 시절 이른바 ‘가족복지’의 부담을 짊어지게 된 것인데 저자는 이런 대가족 제도를 나쁘게 보지 않는다. 형제들을 돌보는 대신 높은 상속 지분을 허락했던 상황을 두고서는 "나눠 가지면 모두 가난해지니 재력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고, 가족복지를 그에게 맡기는 것이라 합리적인 면도 있었다"고 말한다.


아울러 그런 상황을 국내에서 기부 문화가 발전하지 못한 원인으로 추정한다. 가족 부양의 과중한 올가미가 돌봄 방향을 문중 안으로 향하게 했다는 것인데, 이를 당시 가장들이 부패의 유혹에 쉽사리 넘어가는 이유로 지목하기도 했다. 그런 어려운 형편은 1966년 남편이 이화여대 교수가 되고, 조선일보 논설위원을 겸하면서 나아졌다. 저자는 "다행"이라며 "이조의 관리들처럼 가족을 돌보기 위해 부정을 저지르지 않아도 됐다"고 설명한다. 이즈음 이어령 선생은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르면서 점차 가난에서 멀어졌다.


청파동 1가를 거쳐 청파동 3가에 마련한 셋방에서는 이사 한 달 만에 4·19혁명과 맞닥뜨렸다. 그는 "내가 동참하고 싶었던 유일한 정치 운동이었다"며 "내가 본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항거였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에 관해서는 우호적인 태도를 내비친다. 저자는 측근이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상황을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사태를 파악한 (이승만) 대통령은 ‘누가 우리 학생들에게 총을 쏘느냐’고 화를 내며 발포 중지령을 내렸다"고 말한다. 이어 "그분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은 정권이 아니라 나라를 짊어지고 갈 젊은 학생들이었다"고 부연한다.


1961년 한강로2가에 처음으로 마련한 ‘내 집’에서는 5·16쿠데타를 경험했다. 저자는 4·19 때보다 더한 공포 분위기였다고 술회하는데, 그건 남편의 사정과도 맞닿아 있다. 당시 한국일보 논설위원이었던 남편은 계엄 상황에서 매일 ‘지평선’이란 칼럼을 게재했는데, 언론 검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 빈번하게 칼럼 일부가 삭제되던 차에 하루는 칼럼 자체가 통째로 빠지고 광고로 대체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남편에게 ‘혁명정부의 박 모라는 장군이 날마다 무장을 하고 사장실에 나타나서 필자를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는다면서 한동안 신문사에 나오지 말라’는 전갈이 전해졌다. 다행히 신문사가 필자 정보를 끝까지 함구하면서 무사히 넘어갔지만 저자는 당시의 아찔함을 여전히 기억한다.


여덟 번의 거처 마련 과정을 서술하면서 저자는 1974년 평창동 저택에서 남편에게 서재를 만들어준 기억을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꼽는다. 그는 "세상에 나서 내가 가장 기뻤던 때는 그에게 원하는 서재를 만들어주던 때였다. 이어령 씨는 내게 좋은 것을 다 주고 싶은 그런 남편이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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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지은 집 | 강인숙 지음 | 열림원 | 392쪽 | 1만9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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