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DSR규제에 '풍선효과' 현금서비스 증가…경기 침체 이어지며 리볼빙도 쑥
[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부애리 기자] 신용카드로 주로 생활하는 직장인 김혜리(32·여) 씨는 카드사의 리볼빙 광고에 혹해 이용하다가 낭패를 본 경험이 있다. 처음엔 별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자율이 10%를 넘었지만, 월별로 따져보면 10만원이 채 되지 않는 비용만 내면 부담스러운 카드 대금을 미룰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결제 대금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자 소비에 망설임이 없어졌다. 처음엔 결제해야 할 잔액 대비 최소 결제 비율을 50%로 설정했지만, 이 비율이 줄면서 1년이 지나고 나니 카드빚만 770만원이 쌓여있었다.
카드사들이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일부결제금액이월약정(리볼빙 서비스), 단기카드대출(현금서비스) 등 고금리 상품 운용을 확대하고 있는 원인으론 수익성 악화가 꼽힌다. 장기카드대출(카드론)이 가계부채 억제를 위한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대상에 포함되고 대출 경쟁이 격화되며 새로운 수익원 찾기에 나선 것이다.
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감독 당국의 규제 예고에도 카드사의 리볼빙 서비스 잔액은 증가일로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국내 7개 전업카드사(신한·KB국민·삼성·현대·롯데·우리·하나)의 결제성 리볼빙 이월 잔액은 전월 대비 2.2%(1449억원) 늘어난 6조81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리볼빙이란 신용카드 대금 중 일부는 먼저 납부하고 나머지 금액은 다음 달로 넘겨 내도록 하는 금융서비스다. 7개 전업카드사의 지난 7월 기준 평균 현금서비스 금리는 약 17.55%로 같은 기간 장기카드대출(카드론) 평균 금리(12.87%)에 비해 약 4.68%포인트(p) 높다. 특히 신용점수가 낮은 취약 차주들이 법정 최고금리(2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대표적인 고금리의 덫으로 불린다.
서민의 급전 창구로 활용되는 현금서비스 이용액 또한 상반기 기준 1조원가량 증가했다. 현금서비스는 카드사가 개인의 신용카드 한도 내에서 현금을 빌려주는 서비스다. 장기카드대출(카드론)과 달리 도래하는 카드 대금 결제일에 대출금액을 갚아야 하는 만큼 상환기간은 1개월가량이다. 현금서비스 역시 평균 금리 수준이 14.22~18.35%에 달해 카드론을 뛰어넘는다.
카드론이 차주별 DSR 규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카드사들이 수익성 만회를 위해 현금서비스·리볼빙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주된 요인으로 지목된다. 당국은 올해 1월부터 총대출액이 2억원을 넘는 차주의 경우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연 소득의 40%(제2금융권은 50%)를 넘을 수 없도록 했고, 지난 7월부턴 적용 대상이 총대출액 1억원 이상으로 확대됐다. 실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상반기 카드론 이용금액은 전년 대비 10.7%(3조7000억원) 줄어든 25조8000억원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현금서비스나 리볼빙의 경우 이런 대출 규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카드사들도 관련 마케팅을 강화해 왔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7개 전업카드사는 지난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리볼빙 서비스 홍보·판촉에 119억700만원을 지출했다. 연도별로 보면 ▲2019년 22억4800만원 ▲2020년 30억4100만원 ▲2021년 39억3200만원으로 증가세를 보였고 올해는 1~8월 누적으로만 26억86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들어선 당국의 경고로 관련 마케팅이 줄고 있으나, 강화된 규제 및 악화한 경기의 영향으로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단 평가다. 카드 업계 관계자는 "감독 당국이 리볼빙 서비스에 경고음을 내면서 마케팅은 줄었지만, 오히려 이용액이 늘고 있는 상황"이라며 "결국 결제 능력에 한계를 느끼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감독 당국도 오는 11월부터 리볼빙과 관련해 강화된 규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구체적으론 ▲리볼빙 설명서 신설 ▲채널(대면·텔레마케팅)별 맞춤형 설명 절차 도입 ▲고령자 등의 텔레마케팅을 통한 리볼빙 계약 시 해피콜 신설 ▲대출성 상품금리와 리볼빙 수수료율 비교 안내 공시 ▲최소결제 비율 차등화 등이 대표적이다.
김들의 금융 정의연대 대표는 "현금서비스는 DSR 규제에 막힌 차주들로, 리볼빙은 상환능력이 떨어진 차주들이 집중적으로 이용하면서 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 자체를 누르면 한계 차주들이 위기 상황에 놓일 수 있는 만큼 금리 수준을 하향 조정하는 등의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부애리 기자 aeri34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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