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치료제 개발기업 '로완'
치매 예방 프로그램 '슈퍼브레인'으로 유명세
"디지털 치료제 개념 아직 생소…우리 사회에 스며들 것"
[아시아경제 허미담 기자] 치매는 노년을 앞둔 이들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치매를 앓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과 주변인 모두 말 못 할 고통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증상은 기억력 감소인데, 심할 경우 방금 일어났던 일도 잊어버린다. 갑자기 화내거나 욕설하는 등 공격성을 드러내는 일도 잦다. 그러나 치매가 무서운 진짜 이유는 치료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치매는 완치가 어려워 조기에 발견해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초기 증상을 놓치지 않고 치료를 빨리 시작하면 병의 진행 속도를 어느 정도 늦출 수 있기 때문에 결국 예방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디지털 치료제 개발기업 로완(ROWAN) 역시 치매 '치료'가 아닌 '예방'을 지향한다. 한승현 대표가 2015년 설립한 로완은 치매 예방 프로그램인 '슈퍼브레인'을 개발해 유명세를 얻었다. 슈퍼브레인은 치매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인지 훈련을 비롯한 식단·운동 등 생활 습관 개선을 통해 치매 예방을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한 대표는 "IT기술을 활용해 치매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했다"며 "현재 슈퍼브레인은 대학병원 등 여러 곳에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슈퍼브레인은 60세 이상 152명을 대상으로 약 3년간 진행된 임상시험을 통해 효능을 입증한 바 있다.
슈퍼브레인과 같은 디지털 치료제(DTx)는 3세대 치료제로 분류된다. 1세대(알약·캡슐), 2세대(항체·단백질·세포) 치료제와 달리 디지털 치료제는 '머리로 먹는 약'으로 통한다. 약을 먹거나 주사하지 않고 게임, 애플리케이션, 가상현실(VR) 등 소프트웨어 기술을 활용해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또 디지털 치료제는 건강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디지털 헬스케어와는 차이가 있는데, 우선 치료제이기 때문에 질병을 예방·치료하려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또 치료 효과를 실제로 입증해야 하기에 디지털 헬스케어보다 전문적이면서 의학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한 대표는 "디지털 치료제라는 용어가 최근 몇 년 사이 본격적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아직 낯선 것이 사실"이라며 "환자가 디지털 치료제를 처음 처방받고 어떻게 복용해야 하는지를 낯설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치료제'라는 단어가 이미 우리 사회에 익숙하게 스며든 것처럼 디지털 치료제 또한 익숙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디지털 치료제를 비롯한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를 빠르게 발전시킬 수 있는 나라로 우리나라를 꼽았다. 그는 "우리나라는 IT 강국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둘 다 잘 개발하면서 인프라까지 잘 갖춰져 있는 나라는 별로 없고, 의료 접근성도 굉장히 좋다"며 "또 의사의 권고에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따르는 문화가 잘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건강에 예민한 소비자들은 저마다의 기준을 갖고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것"이라며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니즈를 충족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이에 발맞춘 좋은 의료 서비스를 개발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로완의 전망은 밝을 것으로 예상된다. 로완은 올 초 약 60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 유치에 성공했으며, 지난 6월에는 서울투자청이 주관하는 해외 투자유치 유망 기업 '코어(CORE) 100' 대상자로 선정됐다. 한 대표는 "저희와 함께 하는 의료진이 많아 다양한 의료진의 집단지성을 로완에 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야만 우리가 만드는 서비스가 한국을 대표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치매라는 질병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 치매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친척분들이 여럿 계셨다. 직접적인 보호자는 아니었지만, 치매 환자의 보호자가 경제적 피해나 정신적 고통을 겪는 모습을 많이 봤다. 또 치매로 고통받다가 생을 마감하면 남아 있는 가족들 역시 치매 발병에 대한 불안감을 가진다. 그러나 현재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대안이 별로 없고, 치매 관련 약을 처방받더라도 그 약을 기억하지 못해 복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에 치매 환자를 꾸준히 모니터링 할 수 있고, 부작용도 없는 대안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슈퍼브레인이 치매 '치료'가 아닌 치매 '예방'에 주안점을 둔 이유는 무엇인가.
▲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은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인지 수준이 떨어진다. 이를 과거 수준으로 돌리기는 사실 어렵다. 그러다 보니 치매는 예방과 조기 개입이 중요하다. 조기 개입하면 인지 수준이 떨어지는 속도를 줄일 수 있고,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도록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치료제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저희가 임상할 때, 슈퍼브레인을 6개월간 참여했던 분들을 대상으로 전후를 검사해봤다. 실제로 인지 개선 효과가 있었고, 바이오마커(생체표지자)에서도 결과의 차이가 있었다.
- 슈퍼브레인의 진행 과정은 어떻게 되는가. 또 환자의 자발적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다.
▲ 슈퍼브레인 프로그램은 인지-혈관-운동-영양-동기 5단계로 구성돼있고, 이 과정을 반복하는 거다. 한마디로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켜주는 것이다. 생활 습관을 바꾼다는 게 쉽지 않다. 그러나 건강의 적신호를 의료진을 통해 들었을 때 생활 습관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커진다. 또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질환일수록 두려움이 더 크지 않나.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치매가 가장 두려운 질환으로 꼽힌 지 오래다. 결국 의사를 통해 현재 내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수동적이었던 환자들도 능동적인 환자로 바뀔 수 있다.
- 디지털 치료제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의료진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인가.
▲ 적절한 시점에 의료진이 개입해줘야 더욱 완성도 있는 치료가 된다.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누군가의 모니터링이 있는 것과 오롯이 혼자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다. 특히 어르신들은 평생에 걸쳐 만들어진 생활 습관을 고치는 것이기 때문에 의료진의 개입이 필요하다.
- 어르신들이 슈퍼브레인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가.
▲ 물론 처음에는 가이드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어르신을 비롯한 우리나라 국민은 디지털 수용성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그들의 흥미를 끌게 만들면 큰 어려움은 없는 편이다.
- 치매 이외의 다른 질병에 대해서도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 중인가.
▲ 이명·우울증 등 다양한 영역의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이명은 인지행동치료(CBT)를 활용한 앱을 만들어 임상 현장에서 테스트 중이다. 우울증의 경우, 행동 활성화 치료 기법을 활용한 디지털 치료제를 기획해 만들고 있다. 임상 현장에서 정식적인 디지털 치료제로 쓰이려면 식약처 등에서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일단 배를 띄운 거다. 특히 이명 디지털 치료제는 이미 만들었다는 점에서 뿌듯하다. 디지털 치료제가 실제 현장에 쓰이기 위해선 의사의 시간과 병원의 공간 등을 효율화시켜줘야 한다. 이 같은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디지털 치료제라도 활용되지 않을 거다. 저희 또한 이러한 것들을 고려해 만들고 있다.
-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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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에 가지 않아도 나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의료서비스가 되길 희망한다. 지금까지 의료서비스의 공백이 여러 부분 있었다. 병원에 가서도 의사가 환자를 모두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치매의 경우, 환자들의 일상을 속속 알기가 어렵다. 이렇다 보니 '내 손 안의 주치의'가 미래에는 나올 거라고 본다. 또 우리나라는 2025년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초고령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결국 치매라는 숙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선진국 인류가 맞이하게 될 경제적·정신적 피해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우리 서비스가 이를 막는 데 일조했으면 좋겠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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