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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군은 화려했던 비화가야였다!” 빼박 증거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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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읍 구진산성, 비화가야 최초의 산성으로 밝혀져

가야시대 토목 기술과 5세기 비화가야 토기편 출토

“창녕군은 화려했던 비화가야였다!” 빼박 증거 등장 경남 창녕군 남지읍 소재 구진산성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토기 파편들. [이미지출처=창녕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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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영남취재본부 김욱 기자] 경남 창녕군이 과거 신라의 한 지방이었는지, 독립국가였는지의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역사적 증거가 나왔다.


23일 창녕군은 그동안 조선 시대 축조된 산성으로 알려진 남지읍 고곡리에 위치한 구진산성을 발굴 조사한 결과, 비화가야 시대 최초의 산성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구진산성 발굴조사는 비화가야 역사문화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경상남도 비지정 가야유적 조사연구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구진산성은 낙동강 동안에 우뚝 솟아있는 구진산 해발 308m 정상부를 감싸는 태뫼식 산성이다.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성벽을 두른 이 산성의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9개의 진을 펼쳐 왜군을 물리쳤다고 해 붙여진 것으로, 조선 시대 산성으로 알려져 왔다.


군은 이번 발굴조사 결과 성벽 기저부에 석축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로 토제(土堤)를 활용한 가야 시대 토목 기술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성벽 내부에서 5세기대 비화가야의 토기편들이 출토돼 창녕 비화가야 세력에 의해 축조된 성벽인 것이 드러난 것이다.


군은 구진산성이 지리적으로 낙동강 동안에 있어 삼국시대 방어 거점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군 관계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추진 중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과 더불어 비화가야의 종합적인 복원을 위해 생산유적, 성곽 유적 등 여러 문화유산을 조사하고 있다”라며 “앞으로도 체계적으로 조사 및 연구를 진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앞서 군은 2009년 11월 12일 오후 2시, 군청 대회의실에서 ‘고대사 속의 창녕’이란 주제로 고대사 정립을 위한 제1회 학술회의를 열었다.



당시 회의에서 경북대학교 주보돈 교수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서에 창녕은 비화가야(불사국)으로 기록돼 있다”며 “신라에 복속된 4세기 말 이전 시기의 창녕지역은 비화가야라는 독립국가가 존재했었음을 증명해준다”라고 했다.




영남취재본부 김욱 기자 sharon7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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