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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구경을 원하는 자…구경을 거부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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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던 필 감독의 영화 '놉(Nope)'
누군가 쳐다보면 빨아들이는 정체불명 비행물체 '진 재킷'
알고도 '쇼' 강행한 과거 난동 피해자와 포착 나선 흑인 남매
억압받은 흑인들의 저항 담아내…영화 역사까지 재수립해

[이종길의 영화읽기]구경을 원하는 자…구경을 거부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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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영화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조던 필 감독의 신작 ‘놉(Nope)’에는 정체불명의 비행물체가 등장한다. 흡사 하늘을 떠다니는 진공청소기 같다. 강한 회오리를 일으켜 지상의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말 농장을 운영하는 OJ(다니엘 칼류야)와 여동생 에메랄드(케케 파머)는 UFO라고 생각한다. 진 재킷이라 명명하고 카메라에 담으려 고군분투한다.


공포와 호기심이 교차하는 이야기는 론 언더우드 감독의 ‘불가사리(1990)’와 닮았다. 황량한 대지, 몇 안 되는 주민들, 닥치는 대로 빨아들이는 괴물까지. 두려움을 자아내는 정체는 돌연변이 뱀이다. 땅속에서 진동을 감지하면 끌어당겨 삼켜버린다. 진 재킷의 공격 성향은 다르다. 누군가가 쳐다보면 빨아들인다. 구경거리가 되길 한사코 거부한다.


주제 의식과 맞닿은 대목이다. 필 감독은 구약성경 나훔 3장 6절로 영화의 문을 연다.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를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니.’ 대상은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많은 죄를 범하는데 회개해서 심판을 피한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부정·부패에 물들어 멸망하고 만다. ‘놉’에서는 인근 테마파크 주인 주프 박(스티븐 연)이 전철을 밟는다. 참혹한 사건을 경험하고도 ‘안돼(Nope)’라는 말을 무시한다.


[이종길의 영화읽기]구경을 원하는 자…구경을 거부하는 자


침팬지 고디=진 재킷

주프는 과거 아역이었다. TV 시트콤에서 단란한 백인 가정의 입양아를 연기했다. 집안에는 고디라는 순치된 침팬지도 있었다. 고된 촬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풍선 터지는 소리를 듣고는 난폭하게 변한다. 부모 역의 배우들을 죽이는 등 난동을 일으켜 사살된다. 주프는 고디에게 발각되고도 무사하다. 고디가 동질감을 느껴온 듯하다. 교감하려고 천천히 주먹을 내민다. 애절한 움직임은 백인 우월주의로 가득한 스튜디오에서 핍박받아온 흑인을 가리킨다. 구경거리에서 해방되고자 한다.


비슷한 처지였던 주프는 정반대 행보를 보인다. 과거 자기가 연기한 꼬마 보안관을 콘셉트로 테마파크를 차린다. 대중의 관심을 그리워하며 구경거리를 자처한다. 그는 일찍이 진 재킷의 정체를 알아채고 ‘스타 래소 익스피어리언스’ 쇼를 진행한다. ‘래소(lasso)’는 말이나 소를 잡으려고 한쪽 끝을 올가미로 만든 15~30m의 밧줄. 진 재킷을 길들이겠다는 야심을 뜻한다. 고디의 난동으로 트라우마를 겪으면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스타가 되려고 한다. 주프는 진 재킷을 ‘시청자(viewer)’라고 소개하기도 한다. 맞은 편에 있는 자신이 주인공임을 분명히 한다.


[이종길의 영화읽기]구경을 원하는 자…구경을 거부하는 자


에메랄드도 주프 못잖게 스타를 꿈꾼다. 틈만 나면 할리우드 관계자 앞에서 다재다능함을 어필한다. 하지만 진 재킷의 위험을 인지한 뒤 카메라 뒤로 물러서고 급기야 촬영자로 고정된다. 진 재킷을 피사체로 설정하고 어떻게든 포착하려 안간힘을 쓴다.


일련의 과정은 오랜 시간 감시당한 흑인들의 저항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1991년 고속도로에서 과속했다는 이유로 백인 경찰들에게 구타당한 로드니 킹은 피해 상황이 카메라에 녹화돼 과잉 폭력을 입증할 수 있었다. 이듬해 경찰들에게 무죄 평결이 내려지자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폭동이 일어났다. 비슷한 사건은 2020년 5월에도 있었다. 위조지폐 혐의의 조지 플로이드가 체포 과정에서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을 8분 이상 짓눌려 사망했다. 당시 상황이 찍힌 영상이 공개되자 미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종길의 영화읽기]구경을 원하는 자…구경을 거부하는 자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영화 역사의 재수립

필 감독은 도입부에 진 재킷의 시선으로 ‘움직이는 말’을 배치했다. 1878년 6월 영국 사진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가 제작한 활동사진이다. 사진기를 여러 대 설치하고 말이 달리는 동작을 연속 촬영했다. 네 발이 지면에서 완전히 떨어지는 순간을 관측하기 위해 시도한 실험으로, 오늘날 영화로 불리는 활동사진의 기원으로 통한다. OJ와 에메랄드는 할리우드 스튜디오에 말을 임대하며 사진 속 흑인 기수가 고조부라고 주장한다.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시큰둥한 반응이다. 영화 역사상 최초의 배우이자 스턴트맨이 흑인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종길의 영화읽기]구경을 원하는 자…구경을 거부하는 자


남매가 진 재킷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영화 역사의 재수립처럼 묘사된다. OJ와 에메랄드는 진 재킷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폐쇄회로TV(CCTV), 필름 카메라 등을 동원한다. 정작 성공을 가져다주는 건 활동사진과 비슷한 원리로 설계된 우물 사진기다. 에메랄드는 마이브리지가 연속 촬영으로 네 발이 완전히 떠 있는 순간을 포착한 것처럼 진 재킷의 형체를 담아낸다. 이는 도입부의 ‘움직이는 말’과 진 재킷의 위치가 바뀌었다는 점에서 역전으로 읽힌다. 무소불위한 권력자라도 관심을 얻지 못하고 감시당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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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진 재킷은 에메랄드가 길들이려 했던 말의 이름이다. 아버지는 양해도 없이 할리우드 스튜디오에 팔아버리고, 오빠에게만 훈련 기회를 제공했다. OJ는 동생이 느낀 상실감을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에메랄드가 위험에 빠진 순간 애마인 럭키를 타고 진 재킷의 피사체를 자처하며 관계 재정립에 나선다. 눈빛을 주고받으며 수평적 연대로 공생 공락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젖힌다. 수직적 위계에 가려졌던 고조부의 존재까지 각인시키며….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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