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민 과학저술가
‘인류는 아직도 심해보다 달의 뒷면에 대해 아는 것이 더 많습니다.’
최근한 OTT(Over The Top) 서비스 1위를 차지한 드라마의 대사입니다. 드라마 주인공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로 법적 지식은 물론 해양 고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녔습니다. 드라마는 법률의 다툼과정에서 벌어지는 변호가 중심이지만, 그 맥락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로 드러내는 고래에 대한 이야기가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닙니다. 저는 위의 대사를 듣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는 늘 달의 앞면만 봅니다. 그 아름다운 달의 앞모습에 미학적 의미와 동화도 심어놨죠. 반면 달의 뒷면은 처참할 정도로 숱한 운석 충돌의 흔적이 있고 추한 모습을 일부러 감추기라도 한 듯 달은 늘 자신의 앞면을 지구로만 향합니다. 진실은 달의 자전과 공전 주기가 같기 때문이죠. 하지만 달은 공전과 자전 속도의 차이와 지구 자전축에 따라 진동하는 ‘칭동’ 현상으로 실제로는 면적의 약 59%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류는 나머지 41%가 궁금했나 봅니다. 최근 중국의 창어(嫦娥) 5호가 달의 뒷면인 ‘폭풍우의 바다’(Oceanus Procellarum)에 착륙해 토양과 암석 시료를 채취했습니다. 시료에서 산소와 수소가 결합한 수산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냈죠. 수산기는 연기가 불이 난 걸 알려주듯이 달에도 물이 있었다는 증거였습니다. 인류는 이를 계기로 태양계의 형성과 진화에 관한 이해를 넓혀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구 표면을 71%나 덮고 있는 바다도 물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죠.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고래의 종류와 모습 그리고 생리활동 등, 그동안 몰랐던 고래의 삶을 알려 주더군요. 가령 고래는 심해에서 먹이를 먹고 얕은 바다로 올라와 붉은 색의 배설물을 뿜어낸다는 겁니다. 색이 붉은 이유는 먹이인 크릴 때문입니다. 사실 고래는 심해의 유기물질들을 단세포 유기체와 식물이 먹을 영양소가 부족한 유광층, 그러니까 광합성이 가능한 표층수에 쏟아내는 ‘펌프’ 역할을하는 겁니다. 특히 식물성 플랑크톤의 번성에 도화선인 셈이죠. 하지만 이조차도 어쩌면 달의 앞면과 같은 것일 겁니다. 이미 바다를 사랑하는 과학자들 덕분에 해양 고래에 대해 미약하나마 그 삶을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직도 많은사람들은 여전히 달의 뒷면에 대한 지식이 더 많고, 몇 시간 가면 만날 수 있는 바다와 심해에 대해서 모르는 게 더 많습니다. 그중 심해와 표층은 물론 온 바다를 휘젓고 다니는 지구에서 가장 큰 동물인고래 조차도 일부분만 보고 있지요.
얼마 전 읽었던 책에서 고래 낙하(Whalefall)라는 용어를 접했습니다.고래는 이 시간에도 69만 마리가 죽음을 맞이하며 바닷속으로 낙하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겉보기에 죽음과 수장이라는 안타까운 일이 바다 생태계에꼭 필요한 현상이랍니다. 왜냐하면 고래의 죽음은 심해 생명체에게 또 다른 삶의 시작이었죠. 고래 낙하는 반드시 심해에서 일어나야 이를 식량으로 다른 생명체가 북적이고 바다 생태계가 유지되는 겁니다. 자연은 고래의 유전자에 심해에서 생을 마감하도록 코딩해 놓은 모양입니다. 그런데책은 심해가 아닌 해변으로 밀려온 고래로 시작합니다. 고래의 두꺼운 피부 아래에는 블러버(blubber)라 불리는 지방층이 온몸을 감싸고 있습니다. 포유류인 고래의 블러버는 바다에서 방수는 물론 체온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지만 지상에서 태양에 노출된 고래는 블러버 때문에 산채로 익고 맙니다. 고래가 심해까지 낙하하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이 중력입니다.
고래의 육중한 뼈대는 중력의 도움으로 심해까지 내려갈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바다 밖에서는 이것이 자신을 해치는 무기가 됩니다. 지상에서 고래의 척추와 갈비뼈는 고래의 내장과 살을 누르고 짓이겨놓습니다. 저는 거대한 고래를 바다에서 본 적이 없지만, 실제로 본다면 인류의 생명과학적 지식과 힘을 넘어선 자연의 통제된 힘으로 지배돼야 한다고 생각될 겁니다. 그런데 심해가 아닌 엉뚱한 장소에서 이런 영험한 존재의 죽음을 가져온 이유는 특별한 게 아니었습니다. 다름아닌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 때문이었죠. 우리가 일상에 편의로 사용했던 평범한 물건들과 정크메일처럼 외면한 것들이 고래의 배를 채운 겁니다. 해변에 떠밀려온 어느 향고래의 배에는 비닐하우스 한 채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힘없이 해변에 떠밀려 온 고래 대부분은 다시 바다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포유류에게 인류가 할 수 있는 자비가 안락사이지만, 치명적독극물이 오랫동안 남아 야생의 시체처리반인 자연 생명체들에게는 악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사실 고래에게 재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고래에게 19세기는 지옥이었습니다. 향고래는 거대하고 뭉툭한 머릿속에 경랍 기관이 있고 거기엔 향고래가 소리를 내는 밀랍같은 액체가 있는데 이 기름이 당시 귀족들의 밤을 밝혀준 것이죠. 사실 최초의 플라스틱이라고 알려진 폴리염화 바이페닐(일명 PCB)과 유사한 인공화합물의 최초 생산은 석탄이 아닌 고래의 블러버였습니다. 이를 정제해 산업혁명의 윤활유로 사용한 거죠. 미국 소설가 허먼 멜빌이 쓴 <백경>은 당시 향고래의 남획을 다루며 등장한 소설입니다. 그 다음 시기는 고래에게 더욱 잔인했습니다. 20세기 초 세계 전쟁의 이면에는 독가스를 사용한 전투라는 이유로 '화학자들의 전쟁'으로도 알려져 있죠. 전쟁 덕에 과학계에서 화학이 두드러지게 중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화학의 운명에 한해서는 그리 나쁜 일은 아니었습니다.
전쟁의 여파에도 거대한 화학 기업들은 운영을 멈추거나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거대하고 강력한 기업을 형성했죠. 이 시기에 고분자 분야라는 힘찬 출발을 후대 인류에게 선물했습니다. 이후 냉전시대를 거치고 신자유주의가 휩쓸며 산업의 발달과 함께 플라스틱 물질과 중금속, 살충제가 바다를 채웁니다. 백 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죠. 고래는 거대한 폐로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보통 한 시간 정도 바닷 속에서 생활합니다. 물의 압력이 높아지면 산소가 허파 밖으로 밀려 나와 전신에 퍼집니다. 이때 흡입한 중금속과 독성 오염 물질들이 온몸의 지방층에 쌓입니다. 고래 자체가 환경 오염물질이 돼 버리는 겁니다.
고래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새끼를 사랑스럽게 돌보는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고래는 추상적 사고가 가능하고 선천적으로 시간과 자아를 의식할 정도로 복잡한 뇌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19세기 포경선은 새끼 고래에게 먼저 작살을 던졌다고 합니다. 미끼로 이용한거죠. 이후 고통스러워 하는 자식의 주변을 맴돌던 어미에게수많은 작살이 날아갑니다.
그렇다면 죽음은 물론 고통 또한 인식하고 있지 않을까요. 호모사피엔스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종에 대해 이런 학대가 용인될 수 있는 것일까요. 동물을 이렇게 하대해도 된다는 인간의 권리는 누가 만든 것일까요. 이미 바다의 화학적 구성이 변했습니다. 열대 바다 산호의 소멸이 그 증거죠. 지구온난화로 인해 상승하는 바다의 온도와 산소 손실, 그리고 이산화탄소의 흡수로 인한 산성화의 압력은 약 2억 5천만 년 전 페름기 말기에 일어난 대멸종을 연상시킬 정도라고 합니다.
인류가 윤리로 포장된 영장 동물, 최종포식자라는 지위를 자부하고 있지만, 이것은일종의 우주적 윤리로부터 변호하려고 스스로 만든 권위일 겁니다. 이 지위가 진실이라면 우주적 질서에서 진정한 긴장감을 느껴야 하는 지점이 아닐까요. 광활한 우주에서태양계조차 넘어 보지 못한 생명체가 먼지 만한 행성에서 유리 천장을 뚫는 욕망으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군림하며 마치 우주적 질서를 정한 신처럼 굴지만, 결국 이 질서에는 인간도 복종해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등장한 해 여름인 7월, 인도네시아 발리에 갔을 때 일이 떠올랐습니다. 소위 서핑의 천국이라고불리는 명소지요. 하지만 당시 제 눈 앞에 펼쳐진 해변은 지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해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엄청난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지요. 당시 사진을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비행기만큼 큰 대왕고래가 새끼를 낳는 장면을 본 사람이 지금까지 아무도없다고 합니다. 바다가 고래의 비밀을 지켜주는 걸까요? 아니면우리는 그저 쓰레기통이 된 바다를 더 이상 뒤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드라마의 변호사를 통해인식이 바뀌고 환경적 의제 해결에 영향력을 줄까요? 드라마와 현실이 분리된 지금 고래 신드롬이 드라마를 뚫고 나와 담론화 되길 바라는 건 무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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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 한림대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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