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순택 사진전 ‘검은 깃털’
연작 19점, 역광으로 찍은 흑백 작품
검은 피사체 통해 모순적 본성 표현
내달 17일까지 삼청동 학고재 갤러리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내 몸에 난 털이 깃털이라면 나는 더 가벼워질까? 깃털이라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슬퍼 말라 스스로를 타이른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끝내 가벼워진 채로 흩어지고 말 테니까.”
한국 사회의 이념 대립과 정치적 주제를 렌즈에 담아온 다큐멘터리 사진가 노순택 작가의 개인전 ‘검은 깃털 Shades of Furs’이 7월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학고재에서 개최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작업한 ‘검은 깃털’ 연작 19점을 선보인다. 모두 역광사진으로 구성된 작품들은 검은 윤곽 안에 세부가 갇히고, 극단적 농담(濃淡) 대비가 두드러져 관객에게 회화적 충격을 선사한다.
통상 역광은 사진촬영에서 가급적 피하는 조건으로 여겨진다. 화면 속 피사체의 세부가 어둠에 쉽게 묻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극단주의자의 뻔한 화법인 역광을 전면 수용하는 동시에 현 시대의 사회상을 그 속에 투영한다.
윤곽에 갇힌 세부의 무게를 가늠해 보자는 작가의 제안은 관객에게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온다. 그는 작가노트를 통해 “깃털(세부)이 윤곽에 갇혔다 해서, 무게가 달라졌는가. 무엇으로 무게를 가늠하는가” 라고 되묻는다.
노순택은 역광사진으로 뻔한 스타일이 된 ‘실루엣’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차용했다. 18세기 프랑스 재정 장관 ‘에띠앙 실루엣’의 이름에서 따온 실루엣은 전쟁으로 궁핍해진 나라 곳간을 채우기 위해 강력한 긴축과 증세 정책을 폈던 그의 궤변에서 파생된 단어다. 그림의 재료는 검은 물감이면 모자람이 없고, 형상 또한 윤곽이면 충분하다는 실루엣 장관의 일장연설 덕에 그 이름은 ‘안 좋은 것의 모든 것, 싸구려 비지떡’의 대명사로 통용되는 수모를 겪었다.
실루엣은 사진에선 역광사진을 지칭한다. 역광사진에서 무언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가릴 수밖에 없는 사진의 모순적 본성을 발견한 작가는 이를 ‘극단주의자의 화법’이라 명명한 뒤 이를 통해 한국 사회의 극단주의 화법을 그 속에 흘려보낸다.
선과 악 사이의 모호함, 흑과 백 사이의 회색을 허용하지 않는 극단주의 화법이 환영받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은 농담(濃淡)이 거의 없는 작가의 극단적 역광 풍경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오직 흑과 백만이 관객을 맞는다. 피사체는 윤곽으로만 묘사됐다. 하지만 다가가면 검다 희다 말하기 어려운 모호한 회색도 보인다. 또렷한 삶조차도 다가서면 애매하고 모호하듯 명백해 보이는 갈등과 폭력의 세부에도 아찔한 회색이 있음을 작가는 실루엣을 통해 강조한다. 윤곽에 갇혔다 해서, 어둠에 묻혔다 해서, 있던 것이 없던 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외침이다.
작가는 “작품 설치를 마치고 찬찬히 둘러보니 윤곽과 세부의 관계, 흑과 백 사이 낀 회색에 관한 작업인줄 알았는데 오히려 ‘부서짐’의 장면들을 모아뒀구나 싶었다”며 “덜 보여주면서 더 자세히 보여줄 수 없을까를 고민해왔는데 관객들이 많은 말을 나눌 수 있는 전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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