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러시아군이 개전 53일 만에 우크라이나 남부 거점 항구도시인 마리우폴까지 장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흑해 연안은 오데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러시아의 수중에 떨어졌다. 2014년 먼저 점령한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연결하는 돈바스 지역까지 완전히 장악되면 러시아는 흑해 전체의 통제권을 쥐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전 초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비롯해 곳곳에 흩어졌던 러시아군 병력도 흑해 연안과 돈바스 지역에 집중됐다. 이 지역에서 방어진지를 늘려가고 괴뢰정부 구성을 준비하며 실효 지배력 강화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처음부터 러시아의 개전 목표가 흑해 연안의 부동항 점령에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흑해 연안 도시들을 손쉽게 장악하기 위해 키이우와 북부 일대를 공격해 우크라이나군의 관심을 분산시켰다는 것이다.
이러한 추정은 러시아가 지난 300년 이상 추진해왔던 남진정책의 주요 목표가 흑해의 부동항 장악에 있었다는 역사로부터 비롯된다. 18세기 이후 러시아제국은 광대한 영토와 자원은 보유했음에도 제대로 된 항구가 없어 서유럽에 비해 경제발전이 느렸고, 근대화도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1년에 3개월 이상 사용 가능한 항구가 없었기 때문에 러시아는 다른 국가들과 손쉽게 무역로를 만들 수가 없었고, 외국자본이나 기술도 유치하기 매우 까다로웠다.
러시아가 영국과 19세기 세계 패권을 놓고 다투던 일명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도 모두 부동항을 얻기 위한 러시아의 남진정책에서 비롯됐다. 1853년 크림전쟁부터 1904년 러일전쟁까지 러시아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 부동항으로 향하는 길을 뚫기 위해 전쟁을 이어갔고, 영국은 늘 러시아의 진격을 가로막았다.
2014년 크림반도 침공 당시에도 러시아가 내세운 주요 명분은 우크라이나가 세바스토폴 군항을 빌려쓰고 있던 러시아 흑해함대의 철군을 요구하면서 자국 해군의 활동이 제약돼 안보가 위험해졌다는 점이었다. 크림반도를 제외하고 러시아가 쓸 수 있는 부동항은 폴란드 북부에 위치한 영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뿐이지만, 이곳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들로 둘러싸여 쉽사리 군사행동을 취할 수 없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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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군이 이번 전쟁에서 가장 먼저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도 크림반도에 전기와 식수를 공급하는 도시다. 러시아군은 이번 전쟁으로 돈바스와 크림반도가 모두 러시아 영토로 귀속되면, 흑해함대의 안보가 확보될 것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러시아의 남진정책은 결코 수백 년 전의 역사가 아닌, 아직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책인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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