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현진 기자] 영국에선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와 셰익스피어를, 미국에선 진주만 공습과 9·11 테러를, 독일에선 베를린 장벽을 언급했다. 4주째 러시아의 공습을 받아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최근 주요국 의회 연설에서 지원을 호소하는 방법으로 택한 것은 바로 역사였다.
17일(현지시간) 일간 가디언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의회 연설에서 각국의 역사에 초점을 맞춰 청중들에게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분석, 보도했다. 배우 출신인 그가 자신의 강점인 전달력과 호소력에 더해 내용 측면에선 상대국의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독일 하원의원들을 상대로 한 화상연설에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를 향해 1987년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분단된 베를린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말한 것처럼 "장벽을 허물어 달라"고 호소했다. 러시아가 중부 유럽에 자유와 속박 사이의 장벽을 치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원해 달라고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와 함께 우크라이나가 처한 현 상황이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와의 역사적 유사점이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역사적 책임이 무엇이냐"고 독일을 압박하기도 했다. 독일이 역사적 부채의식을 갖는 포인트를 짚어 이번 사태에서 중책을 맡아 줘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앞서 지난 8일 영국 의회에서 이뤄진 연설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 "우리는 해변에서 싸울 것"이라고 외쳐 영국의 항전 의지를 끌어올린 처칠의 연설을 빗대 우크라이나의 의지를 강조,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는 "나치가 당신의 나라를 빼앗으려 할 때 당신은 나라를 잃고 싶지 않았고 영국을 위해 싸워야겠다"면서 "우크라이나인들도 러시아군에 맞서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숲에서, 들판에서, 해변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싸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날 미국 의회에서는 1941년 일본의 공격을 받은 하와이의 진주만 공습, 2001년 9·11 테러를 기억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악마가 당신의 도시와 독립된 영토를 전쟁터로 만들고자 했던 끔찍한 날을 기억하라. 무고한 사람들이 공격을 당했다"면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당신도 막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는 매일 똑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외쳤다. 그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통역 없이 직접 영어로 "세계의 지도자가 돼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은 러시아의 공습 이후 더욱 주목받고 있다. 지난 1일 유럽연합(EU)에서 있었던 그의 화상 연설은 이에 감명을 받은 빅토르 셰브첸코 통역사의 눈물과 감정에 북받친 통역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가디언은 우크라이나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 작성자들은 그가 말을 시작하기 쉽게끔 초안을 작성해서 주고 있다"면서 "비행금지구역 설정과 같은 그의 호소가 결과로 이어지진 않지만 완전히 호응을 얻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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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젤렌스키 대통령은 오는 22일 이탈리아 의회에서도 연설을 할 예정이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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