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各自圖生). ‘각자가 스스로 제 살 길을 꾀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 사자성어의 유래는 불분명하다. 대개 중국이나 한국의 고사를 바탕으로 사자성어가 만들어진 것과 다르다. 중국 사료에서는 이와 관련된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조선시대 들어 조선왕조실록 등 공식 사료에 간혹 사용된 기록이 남았다.
선조 27년(1594년) 선조실록에 처음 이 사자성어가 등장한다. 비변사(備邊司)의 왜적에 대한 보고 문서를 보면 ‘장차 살육의 재앙에 걸릴 것이니 미리 알려줘 각자 자기 살기를 도모할 것’이라는 문구에 사용됐다. 당시는 일본군이 부산포에 상륙해 임진왜란을 일으킨지 2년 5개월째 되던 시기였다. 인조 5년(1627년) 정묘호란이 터졌을 때 임금을 버린 종친의 죄를 면제하는 글에서는 ‘난리가 나자 임금을 버리고 각자 자기 살기를 도모한 것은 실로 작은 죄가 아니다’는 문구에 쓰였다. 가장 힘들었던 왜란과 호란을 겪으며 만들어진 신조어가 실록에 기록되지 않았을까 추정해볼 수 있다. 이후에도 순조 때 흉년기 백성들의 처참한 삶을 묘사하면서, 고종 때 조창(漕倉) 운반선의 침몰사고와 관련해서도 인용됐다.
요즘 들어 부쩍 이 말이 자주 들린다. 정부가 지난 3일 코로나19 방역체계를 오미크론 ‘대응’ 단계로 상향해 재택치료 중심으로 전격 전환하면서다. 무증상 또는 경증 확진자는 집에서 격리한 채 비대면 진료를 받고 필요에 따라 투약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재택치료를 받는 확진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비대면 진료를 받거나 보건소에 문의를 하기 위해 전화를 하면 몇 시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혼자 사는 확진자는 약을 구하기도 힘들고,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경우에는 공간을 분리하기 쉽지 않아 곤란을 겪는다. 이들은 스스로 ‘재택방치’됐다고 하고, ‘각자도생’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연구결과로는 오미크론 변이가 기존 델타 변이에 비해 전염력은 훨씬 강하지만 독성은 오히려 절반에도 미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전염력은 체감하고 있다. 이미 국내에서 하루 17만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독성이 젊은층에는 약하다고 하지만 고령층에게는 치명적이다. 80대 확진자의 오미크론 중증화율은 7.77%, 치명률은 4.9%에 이른다. 앞으로 확진자가 20만~30만명으로 늘어나고 1~2주 후에 위중증 환자가 쏟아지면 엄청난 수의 사망자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자칫 의료체계가 마비되면 제대로 치료를 받지도 못한 채 숨을 거두는 안타까운 일까지 벌어질 수 있다. 미국에선 오미크론 사망자가 델타 사망자의 1.17배 수준이다. 만만하게 볼 오미크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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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할 일은 오미크론 확산을 의료체계가 감당할 수준으로 조절하는 것이다. ‘죽을 사람은 죽고 살 사람은 살자’는 태도라면 국가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국무총리, 방역책임자, 정치인 등의 메시지가 너무 앞서 간다는 지적이 많다. 이들의 설화(舌禍)를 우리는 많이 봐 왔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분명 환란이다. 하지만 각자도생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조영주 바이오헬스부 부장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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