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일 작가 인터뷰
'해적: 도깨비 깃발'·'지금 우리 학교는' 집필
영화·드라마·OTT 시장 변화 체감
자본 좇는 분위기 씁쓸
K콘텐츠 질적 향상은 숙제
[아시아경제 이이슬 기자] "시장 변화가 빠르게 이뤄지며 K-콘텐츠가 세계로 나아가고 있는데, 작품이 많이 제작되는 만큼 질적 향상도 이뤄지는 걸까요? 르네상스 같은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천성일 작가는 10일 진행된 아시아경제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오징어게임'을 통해 한국 콘텐츠에 대한 해외 시장의 장벽이 허물어졌다"며 이같이 말했다.
천 작가는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2008)·'7급 공무원'(2009)·'아빠가 여자를 좋아해'(2010)·'소수의견'(2014)과 드라마 '추노'(2010)·'도망자 플랜B'·'친애하는 판사님께'(2018) 등을 집필했다. 2015년에는 영화 '서부전선' 연출을 맡는 등 제작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2007년 제작사를 차린 천성일 작가는 회사 자본이 바닥나자 직접 완성한 시나리오를 들고 충무로를 누볐다. 당시를 떠올리며 그는 "작가와 계약할 돈이 없어서 직접 시나리오를 쓰게 되면서 시작하게 됐다. 그래서 혹자는 내게 정통성 없는 길바닥 작가라고 한다"며 호쾌하게 웃었다.
천 작가는 지난 달 말 공개된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감독 김정훈)과 넷플릭스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연출 이재규) 각본을 집필했다. 창작자로서 극장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나란히 작품을 선보인 감회는 남다르다.
그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3시간짜리 영화, 6부작 드라마로 할 수 있는 포맷이 만들어지고, K-콘텐츠가 전 세계 1위에 오르는 꿈도 못 꾸던 일이 벌어졌다"며 시장 변화를 실감한다고 했다.
이어 "OTT 플랫폼도 많아졌다. 모두 가입하면 가계 경제가 휘청할 정도고, 작품편수도 늘었다. K콘텐츠가 양적 팽창만큼 질적 향상이 이뤄졌는지, 이러한 변화가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마치 르네상스 같다"고 말했다.
천 작가는 또 "드라마는 기본 포맷이 정해져 있고 수위도 있어서 글 쓸 때 힘들었다"며 "영화는 그 제한이 없다. 그에 따른 등급을 받으면 된다. OTT 작업은 드라마보다 영화에 가까웠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었다"고 했다.
팬데믹 이후 콘텐츠 시장은 빠르게 변화했고, 그만큼 경쟁도 치열해졌다. 체감하는 변화와 기대, 우려에 대해 물으니 "어려운 질문"이라면서도 "아쉽게도 돈"이라고 답했다.
"시장이 커지면서 움직이는 자본도 커졌다. 예전에는 '누가 어떤 이야기를 만든다더라', '누구와 작업한다더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요즘에는 '누가 얼마 받았더라'는 이야기가 먼저 들린다. 사실 안타깝다. 나도 어느 파도에 휩쓸려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천 작가는 달라진 K-콘텐츠의 위상에 덕도 보고 있다며 '오징어게임' 황동혁 감독을 향한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해외에서 한국 콘텐츠를 대하는 장벽이 허물어진 거 같다. 이재규 감독과 '오징어게임' 덕을 많이 볼 거라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문을 열어준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작가로서 딱 하나 고수하는 게 있다고 했다. 그는 "천박한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작품은 재밌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어떤 외피를 쓰든 재미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 여전히 대중문화예술은 상당한 파급력을 지닌다. 적어도 세상에 악한 영향력을 끼치진 말자고 다짐한다. 좋은 영향까지는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은 부분은 경계하려 한다."
천성일 작가는 극장과 안방에서 자취를 감춘 코미디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그는 "왜 인지 모르겠으나, 최근 코미디가 사라졌다. 웃음을 용서하지 못하는 시대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 TV에서 코미디 프로가 사라진 것과 비슷한 맥락 아닌가. 예전에 코미디를 보는 사람과 지금 보는 사람들이 달라졌는데 영화·방송가에서는 예전에 만들던 사람들이 여전히 만들고 있다. 그 접점이 맞지 않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천 작가는 코미디를 즐기기 용이한 플랫폼도 변화한다고 보냐고 묻자 어렵게 입을 뗐다.
"코미디, 공포가 만들기 가장 어려운 장르 같다. 두 시간 동안 관객을 무섭게 하거나 웃게 만드는 게 힘들다. 코미디 작품을 쓰는 게 제일 힘들고 하고 싶지 않은 장르 중 하나다. 최근에 숏폼 코미디 콘텐츠가 많이 나오는데 '좋좋소'를 재미있게 봤다. 현실적인 블랙코미디인데, 보면서 예전 직장 생활도 떠올랐다. 제작진이 유튜브 콘텐츠도 계속 만드는 거 같은데, 그쪽에서 코미디가 활발하게 빛나지 않을까 싶다. 기존 인력도 그 시장에 유입되지 않을까. 기획부터 제작까지 기존 시스템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더 신선하고 기발한 웃음이 나오더라."
최근 선보인 '해적: 도깨비 깃발'과 '지금 우리 학교는'을 관통하는 주제는 희망이다. 천성일 작가는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는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결국 큰 희망은 가장 큰 절망에서 나오지 않나. 누군가는 간절하게 바라는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해적'은 욕망과 안주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욕망을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들과 편하게 우리끼리 살자는 무리들. 희망을 가지고 움직이는 역적과 의적, 해적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 이후 8년 만에 후속편을 선보이는 것에 관해서는 "그 좋은 시기 다 놔두고 코로나 시기에 태어난 '해적'에게 미안하다"며 "정말 좋은 작품은 10년 후에 나와도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러면서 "설 연휴 선보여 흥행 1위를 달성했지만 관객수는 아쉽다. 어머니가 혼자 보러 극장에 가셨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 평"이라고 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 시즌2 제작 여부에 관해 묻자 천 작가는 "최대한 못 들은 척하고 있다"며 웃었다. 이어 "'한다 못한다' '그때는 된다 안 된다'는 이야기가 사실상 오가는 거 같은 데, 결정되면 이야기해달라고 말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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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일 작가는 "조선시대 부둣가에서 일하는 하역 노동자가 전국구 조직폭력배가 되는 이야기를 다루는 사극 한 편과 재미있는 코믹물을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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