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시장 선택 받았던 인터넷…블록체인은?
블록체인의 가치보다는 가상화폐 시세에 더 큰 관심 보여
블록체인이 어떤 사회적 문제 해결할 지 고민해야
가상화폐가 전 세계를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이른바 ‘광풍’으로까지 비견됩니다. 하지만 광풍이 불수록 잠시 멈춰 서서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로 지적해야 할 부분까지 함께 휩쓸려가면 언젠가 더 큰 문제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차분히 가상화폐 시장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 ‘비트코인 비틀기’입니다.
[아시아경제 공병선 기자] 최근 비트코인은 계속 답보 상태다. 하루에만 1000만원에 가까운 등락폭을 나타내던 4~5월과 달리 이달엔 3600만~4100만원대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횡보 끝에 결국 폭락할 수도 있다며 불안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이 발전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면 가상화폐 역시 장기적으로 투자 가치가 있다. 가상화폐를 장기 투자 대상으로 보는 사람들은 블록체인을 인터넷의 발전에 비유한다. 당시 인터넷은 혁신으로 불렸으며 금융시장에서 닷컴버블을 일으켰는데 블록체인 역시 이와 흐름이 유사하다는 의미다. 한 가상화폐 전문가는 인터뷰에서 “미래엔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를 기반으로 한 제2의 인터넷이 올 것”이라고 관측했다.
정부도 블록체인 산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 5월2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는 한국인터넷진흥원과 함께 2021년도 블록체인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투표시스템, 기부금 관리 시스템 등 총 15개 과제를 선정했으며 실생활에서의 블록체인 활용가능성을 살피는 것이 주 목적이다. 과기부의 블록체인 관련 예산은 지난해 343억원에서 올해 531억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의문점이 생긴다. 블록체인을 인터넷에 비유해도 되는지 말이다. 전문가들은 애초에 인터넷과 블록체인은 시작점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비유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인터넷에서 블록체인의 성공 가능성을 유추해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인터넷은 어떻게 우리 실생활에 자리 잡았고 블록체인과 어떤 점이 다를까.
군사용 네트워크에서 시작한 인터넷…이미 시장이 받아들였다
인터넷은 1960년말 미국의 학자들이 컴퓨터 네트워크를 연구하다가 개발됐다. 당시 미국 국방성의 고등연구계획국(ARPA)에서 적의 공격에 중앙컴퓨터가 파괴돼도 다른 경로로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인터넷의 원형인 ‘아르파넷’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아르파넷이 기존에 사용하던 근거리통신망(NCP) 프로토콜은 다른 통신망과 연결하기에 불편했다. 이에 컴퓨터 간 언어를 통일하는 변환통제(TCP/IP) 프로토콜을 새롭게 개발했다. 이 때를 기점으로 인터넷 사용자 수가 폭증하기 시작했고 아르파넷은 미 국방성과 민간인이 사용할 수 있는 영역으로 나뉜다.
1983년 아르파넷의 이름은 인터넷으로 바뀌고 1989년 월드와이드웹(WWW)이 탄생하면서 사용량은 더욱 늘어난다. 1985년 접속 서버는 100개에 불과했지만 1987년 200여개, 1990년 2218개로 폭증한다. 1995년엔 전 세계 인터넷 정식 가입자 수가 4000만명을 넘어섰다. 국내에서도 인터넷 열풍이 불었다. 1995년 12만명이던 국내 인터넷 가입자 수는 1996년 35만2297명으로 늘어난다. 당시 청와대도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할 정도였다.
거스를 수 없는 컴퓨터 간 네트워크 산업…시작되는 정부 지원
이에 국내서도 인터넷 산업을 지원하기 시작한다. 1994년 정보통신부가 출범했으며 예산을 아끼지 않고 투자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정보통신 분야 중소기업에 체신금융자금 3000억원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또한 고학력자를 채용할 수 있게 공공근로사업자금 1350억원을 추가경정예산으로 배정했다. 인터넷 관련 벤처기업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인천, 대구, 안산 등 지역에 테크노단지를 건설하기 위한 법인을 설립했다. 이러한 투자들은 이후 한국이 IT강국에 올라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의 인터넷 지원 자체에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지원대상은 인터넷이 아니라 ‘네트워크’라는 가치라는 것이다. 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지원한 것은 컴퓨터 간 데이터 소통을 원활하게 만드는 기술”이라며 “정부가 지원을 결정하기 이전에 인터넷은 이미 시장에서 효용성을 증명하고 살아남았다”고 설명했다.
블록체인은 시장에서 살아남았는가
블록체인도 인터넷처럼 오래 전에 개발됐다. 1975년 IBM은 미국국립표준기술국(NIST)의 요청을 받아 민간을 위한 고급 암호화 기술 DES(Data Encryption Standard)를 개발했다. 1985년엔 데이비드 차움 박사는 모든 거래 내용을 암호화하는 시스템 ‘e-캐시’를 구상했다. 차움 박사는 지금도 가상화폐의 아버지로 일컬어진다. 1991년 스튜어트 하버, 스캇 스토네타 등 과학자들은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 블록체인이란 기술을 사용했다. 비트코인은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에 의해 개발됐지만 블록체인 기술은 이전부터 시장에서 평가를 받아온 셈이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은 40년이 넘게 시장에서 사실상 채택 받지 못하고 있다. 이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이 계속 자리 잡지 못하는 이유는 효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며 “만약 블록체인이 훌륭하고 시장이 원하는 기술이었다면 인터넷처럼 정부가 활용가능성을 살피기 전에 먼저 시장에서 자리 잡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려던 사례가 있다. 2017년 호주 주식거래소(ASX)는 주식 체결시스템 체스(CHESS)를 대체하기 위해 블록체인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ASX는 지불, 과세 등 백오피스 업무에서 발생하는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ASX는 블록체인을 도입하면서 “기록 관리를 개선하고 거래 이후 서비스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ASX의 블록체인 도입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의 보안이 우수하다고 평가 받는 이유는 최대한 많은 주체가 최대한 많이 반복해서 검증하기 때문”이라며 “데이터 처리가 빠르게 이뤄져야 할 증권거래소엔 매우 비효율적인 기술”이라고 말했다. 현재 ASX는 블록체인 시스템 출시를 오는 2023년까지 연기한 상태다.
시장 채택도 없이 정부 지원을 받아…블록체인은 무엇을 해결할 것인가
인터넷과 달리 블록체인은 스스로 효용성을 증명하지 못한 만큼 지금부터라도 가치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실생활에 적용하기 어렵고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정부의 지원은 세금 낭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열풍이 불었지만 사회는 블록체인의 활용방안보다는 가상화폐의 시세와 벼락부자에 더 관심을 뒀다.
이 교수는 “기술은 사회에 존재하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지향점을 둬야 한다”며 “블록체인은 이 사회의 어떤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 역시 “블록체인 기술이 대대적으로 적용된 사례는 ASX밖에 없다”며 “가상화폐 시세 혹은 이를 다루는 거래소보다는 블록체인 기술 자체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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