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 11 팬들턴 기지서 은퇴 ‥ 한·미서 기념 사업 펼쳐
백학면, '호국영웅 정신계승 마을' 지정‥ 레클리스 협동조합 결성
미 해병 6.25 참전 용사 방한단 백학마을 방문
[아시아경제 라영철 기자] 우리 땅에는 역사가 있고, 계절과 지역마다 추억과 문화가 있다. 본지는 전국 곳곳의 잘 알려지지 않고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내고, 한반도의 아름다운 풍광과 작은 역사, 문화들을 소개하기 위해 '코리아루트'를 기획해 매 주말에 연재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올해 6.25 전쟁 71주년을 맞아 전쟁 영웅들의 뜻을 기리고 마을 문화사업으로 발전시키는 경기도 연천군 백학마을의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을 다룬다.
한반도가 간직한 연천의 역사에는 호국영웅 정신을 계승하는 마을이 있다. 그곳 연천군 백학마을은 6.25 전쟁 당시 맹활약했던 용감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지게 하나로 전장을 누빈 '보급 영웅' 일명 '지게 부대'와 특히 제주도에서 태어난 경주마(馬) '레클리스(Reckless)'는 미 해병대에 배속돼 한국전쟁 네바다 전초전투에 참전해 전투마(War Horse)로 빛나는 전공을 세운다.
미국 100대 영웅으로 선정된 '레클리스'의 영화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미국 100대 영웅에 선정된 한국의 말(馬)
② 타고난 군마(軍馬) '레클리스'
③ 전쟁 영웅 '레클리스' 영면‥그 후 50년
③ 전쟁 영웅 '레클리스' 영면‥ 그 후 50년
6. 25 전쟁 휴전 이후 우여곡절 끝에 미국 땅을 밟게 된 레클리스는 패더슨 중위 가족의 집에서 잠깐 동안 지낸 뒤, 미 해병대 1사단 5 연대의 팬들턴 기지에서 여생을 보내게 된다. 팬들턴 기지에서 레클리스는 최고 존엄으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1954년 4월 미 해병대 1 사단장 랜돌프 페이트(Randolph M. Pate) 장군은 레클리스를 상병(corporal)에서 병장(sergeant)으로 진급시켰다. 그리고 1959년 8월 31일 레클리스는 하사(staff sergeant)로 진급했다. 이날 캠프 펜틀턴(Pendleton)에서 랜돌프 사령관 주관으로 열린 레클리스 하사 진급 행사에는 1700여 명의 전우들이 참석했고, 19발의 예포가 울렸다.
1960년 11월 10일 레클리스는 팬들턴 기지에서 은퇴했다. 이후 레클리스는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피어리스', '돈틀리스', '체스티', 그리고 마지막 새끼는 태어난 지 한 달 후에 죽었다. '피어리스'와 '돈틀리스'의 이름은 '레클리스'처럼 '겁이 없다'는 의미로 지어졌다.
현역에서 물러나 퇴역한 레클리스는 나이가 들며 허리에 관절염이 생겼고 1968년 5월 13일 철조망 울타리에 빠지며 부상을 입었다. 노쇠한 레클리스는 상처를 치료하던 중 진정제를 맞고 눈을 감았다고 전해졌다. 미 해병대는 최고의 예우로 장례식을 치렀다.
■ 잊지 못할 군마(軍馬) '레클리스'
정식으로 군 장례식이 치러진 뒤 레클리스는 기지 내 묘지에 명예롭게 묻혔다. 그녀의 마구간 옆에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레글리스는 미국의 50~60년대 슈퍼스타로 당시엔 레클리스의 죽음이 주요 언론에 크게 보도되는 등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2013년 미국 버지니아주 해병대 박물관에서는 레클리스 기념관 헌정식을 열었다. 기념관에는 레클리스의 동상과 함께 각종 자료가 전시됐다. 2016년에는 레클리스가 살던 팬들턴 해병 기지에서, 2018년에는 켄터키 렉싱턴 호스파크에도 레클리스 동상이 세워졌다.
한국에서는 2016년 연천군 고랑포구 역사공원에 레클리스 동상이 세워졌고, 전임 김규선 연천군수가 미국을 방문해 가져온 실제 레클리스의 편자(발굽)와 총(꼬리털)이 전시됐다. 6.25 전쟁 당시 연천 전투와 레클리스 활약상을 소개하는 사진과 자료들,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레클리스 지키기' 게임장도 마련돼 있다.
애초 레클리스 동상을 연천군 백학마을에 세우려 했으나, 레클리스가 활약한 전쟁터와 가장 가까운 곳에 세우자는 의견이 모아져 고랑포구 역사공원에 세웠다고 한다. 백학마을로 향하는 371·372번 국도변에는 레클리스 머리 형상과 한반도 지도 모양을 매칭 한 전시물과 쉼터를 마련한 공원도 조성돼 있다. 매년 여는 기념행사는 지난해부터 코로나 19 확산으로 중단된 상태다.
레클리스 공원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는 레클리스의 원래 이름인 '아침해'를 붙인 '6.25 영웅 아침해 맞이길'이 조성돼 있다. 하천을 따라 폭 2.5m, 거리 300m가량의 산책로 바닥에는 군데군데 미군 병사와 레클리스 삽화가 그려져 있다. 백학마을에는 '용맹한 사람들의 후예'라는 단체가 조성한 백학 역사박물관도 있다. 지하에 꾸며진 박물관에는 레클리스 사진을 비롯해 참전 용사 사진과 유품, 철모, 총기류, 탄알, 포탄류 등이 전시돼 있다.
연천군은 6.25 전쟁 당시 레클리스 군마가 활약했던 네바다 전초전투가 있었던 백학면 두일리 일원을 호국영웅 정신계승 마을로 지정해 '연천 레클리스 문화마을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8년 지역 주민들이 조성한 백학 역사박물관을 거점으로 DMZ 문화마을로서 지역만의 스토리텔링 개발과 특성을 부각하는 마을 브랜드 가치를 살려 관광자원화를 지원하고 있다.
이밖에 한국마사회에서도 2015년부터 말과 함께하는 뮤지컬 공연 '레클리스 1953'을 선보이고 있다.
■ 맥을 잇는 사람들
조그마한 시골 백학마을에는 마을 주민 몇몇이 모여 협동조합을 만들어 다문화 가족과 함께 마을 기업으로 운영하는 레클리스 카페가 있다. 작은 공간에 인테리어가 세련되진 않았지만, 호국영웅 정신과 영웅마(馬) 레클리스의 가치와 중요성만은 절대 잊을 수 없다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레클리스 사진을 비롯해 방한했던 미국 참전 용사들의 자필 서명과 사진들, 그리고 연천군 출신 참전 용사들의 애국정신을 기리는 여러 기념물들이 대신해서 카페 내부를 장식했다.
레클리스 조합 이상경 이사는 "레클리스는 많이 알려졌지만 정작 레클리스 도움으로 되찾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 마을은 전혀 알지 못했다"며 "우리의 영웅마를 알리기 위해 2014년부터 '아침해 기념사업회'를 결성, 매년 200여 명의 주민과 레클리스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고 밝혔다.
조합은 해마다 레클리스 공원에서 참전 군인들과 지게 부대원들을 초청해 그림 그리기 대회 등 레클리스 알리기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백학면 적십자와 지역 군부대, 주민들의 도움으로 레클리스 일대기를 20여 개의 그림으로 바닥에 표현한 '아침해 맞이길'도 만들었다. 2018년에는 작은 마을 역사박물관을 만들고 마을해설사들을 양성해 지금까지 역사관 운영과 마을의 자부심을 키워 나가고 있다.
특히 앞서 2016년 3월에는 '레클리스를 기리는 한국인들을 만나보고 싶다'며 미국에서 6.25 참전 미군 용사들과 레클리스를 돌봤던 일행이 백학마을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들은 백학면에 조성된 레클리스 공원과 카페를 찾았고, 6.25 전쟁 때 함께한 한국인 노무자 부대원 금동훈(2019년 작고) 씨와 기념 촬영도 했다.
이상경 이사는 "6.25 전쟁에 참전하셨던 지금은 90세가 넘은 노병들이 많이 오시기로 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몇 분밖에는 못 오셨다"며 "전쟁 당시 레클리스에 대한 여러 기억과 사연을 들려줬다"고 말했다.
이어 "두 분의 작가가 함께 오셨는데 그중 한 분은 레클리스 일대기를 쓰신 작가이고, 한 분은 레클리스 동상을 만드신 분이셨다"면서 "우리(백학) 마을에도 미국과 같은 동상을 세우고 싶다는 소원을 말했다"고 전했다. 1년 후 고랑포구 역사공원에 레클리스 동상이 세워졌다.
레클리스 협동조합에는 6.25 전쟁 당시 지게 하나로 전장을 누빈 '보급 영웅' 지게 부대 요원으로 활약한 참전 용사 후손도 있다.
'지게 부대'는 전쟁터에서 험준한 산세를 이겨내고 최전방까지 탄약과 식량을 나른 한국 노무단 소속 전장의 숨은 영웅이다. 약 30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지게 부대. 7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극소수의 부대원만 생존해 있다.
금가현 협동조합 총무의 부친은 지게 부대 요원이었다. 86세 일기로 작고한 故 금동훈 씨는 KSC(Korea Service Corps) 노무자 부대 하사관으로 17세에 참전했다.
금 총무에 따르면, 고인은 파평산 인근 훈련소에서 교육받고 1사단 103 연대에서 노무자 부대원 인솔 하사관으로 근무하며 대덕산 전투, 연천 백학·장남, 파주 일원 임진강 지역에서 군수품(탄약·지뢰·철조망·식량·주먹밥·피복) 운반과 부상병, 전사자 후송 업무를 맡았다.
지게와 칡 덩굴로 역은 탄약통들을 메고 국군 등과 함께 고지 7부 능선을 오르내리면서 여러 고지전과 휴전을 앞두고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KSC대원들은 극소수였다고 한다.
금가현 총무는 "저희 아버님은 군번이 두 개인데.. 정부에서 참전 사실을 몰라서 아버님이 20세가 되시던 해에 입영 영장(징집 통보서)이 나와 논산훈련소에 입소해 훈련 중에 훈련소장 면담을 통해 6.25 전쟁 참전 사실이 확인돼 전역하셨다"고 부친의 사연을 밝혔다.
6.25 전쟁 당시 기게 부대원으로 참전했지만, 입증할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참전자 또는 전사자 인정을 받지 못한 지게 부대원도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 뜨는 뉴스
총 든 군인처럼 지게 메고 전쟁터에서 활약한 지게 부대의 존재와 그들의 희생을 잊지 않고 제대로 평가해야 할 과제도 남아있다.
라영철 기자 ktvko258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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