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배달대행지사 쟁탈전…플랫폼 '출혈경쟁' 심각
플랫폼 바꾸자 수천만원 위약금…무자격 업체 난립
주문처리 건수 많은 지사에 '대여금' 웃돈으로 유인
[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국내 배달시장 몸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배달대행 업계는 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온라인 거래가 늘어나면서 수혜를 본 업종이다. 배달통을 매달고 종횡무진 도로를 누비는 오토바이 숫자만 봐도 체감할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1분기 인터넷·모바일과 같은 온라인으로 배달 음식 등을 주문하는 음식서비스 거래액은 5조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1.9% 폭증했다.
배달업 진출을 위한 기업들의 합종연횡도 활발해지고 있다. 배달대행 업체 ‘바로고’는 최근 11번가, CJ그룹 등으로부터 8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신한은행은 배달대행 서비스 ‘생각대로’를 운영하는 로지올의 모회사 인성데이타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음식주문 배달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140억원을 투자한다. 카카오모빌리티도 최근 퀵 기사를 직접 모집하며 음식배달 서비스까지 사업을 확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는 ‘단건배달’ 경쟁이 붙으며 귀한 몸이 된 배달기사(라이더) 모시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빠른 배송·배달 유행을 타고 음식뿐 아니라 생활용품 등 비음식군까지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경쟁이 뜨겁다. 경쟁이 과열되면 시장은 혼탁해지기 마련이다. 소비자들이 안전하고 편안한 식사를 위해 음식 주문을 하고 있는 동안 기업들은 배달시장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양보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1> 수천만원 위약금에 소송 난무하는 배달업계
"어제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기도 합니다. 이 바닥 원래 그래요."
치킨집을 운영하다 3년 전 배달대행 업계에 발을 디딘 박남규(가명)씨는 요새 근심이 가득하다. 배달대행 플랫폼 M사가 그에게 1억원에 가까운 위약금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경기도에서 M사 프로그램을 활용해 지역 배달대행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계약을 해지하고 M사에서 다른 회사로 교체했다는 이유로 거액의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처지가 됐다. M사는 최근 박씨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타사로 이탈한다는 정보를 전달받았다"며 "위약금을 상환하지 않을 경우 민사소송 등 법적절차를 진행하게 된다"고 보내왔다.
배달대행 플랫폼이란 음식 픽업과 배달업무를 배정해주는 중개 프로그램을 제작·운영하는 업체를 말한다. 소비자가 배달의민족, 쿠팡이츠와 같은 애플리케이션에서 주문을 하면 음식점주는 이 프로그램을 활용해 배달기사를 확보하고 음식을 전달한다. 배달대행을 전문으로 하는 빅3는 ‘생각대로’, ‘바로고’, ‘부릉’이다.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배달대행 플랫폼은 40여개로 추정된다. 플랫폼사가 계약을 맺는 지역 배달대행 업체는 2000곳이 넘는다. 동네마다 사무실을 차리고 배달기사를 관리하며 이륜차 리스비용 등을 지원한다.
박씨는 지역 식당을 일일이 돌며 "우리 프로그램을 써달라"고 영업을 하고, 배달기사들이 거부하는 주문까지 직접 수행해왔다. 그러나 플랫폼 이용 계약기간 3년을 지키지 않고 1년여만에 타사로 이탈했다는 이유로 위약금을 물게 됐다. 박씨는 "계약을 위반한 건 잘못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위약금 액수는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플랫폼을 타사로 옮긴 원인도 M사에게 있다고 했다. 그는 "점심시간 같은 피크타임에 서버가 다운되는 사태가 수 차례 벌어졌지만, 본사는 피해 보상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프로그램 오류로 인해 음식값을 물어주는가 하면 임시방편으로 카카오톡 메신저를 이용해 배달할 때도 있었다고 했다.
<2> 뺏고 뺏기는 대리점 쟁탈전, 수 억원 대여금·뒷돈 오가
플랫폼사에게 지역 배달대행 업체는 안정적인 수입원이다. 하루에 주문 1000건을 수행하는 지사에 건당 수수료 50원을 매긴다고 가정하면 하루 5만원, 한달이면 150만원, 1년에 1800만원의 수익을 가져다준다. 이 때문에 플랫폼사들은 지사 하나를 두고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을 벌일 수밖에 없다. 경쟁 업체에 대한 흑색선전, 비방, 음해성 정보 유포까지 각종 수단이 동원된다.
경쟁이 심화되면서 배달대행 업계에는 대여금 제도가 생겼다. 지사 대표에게 목돈을 빌려주고 해당 플랫폼을 쓰도록 유인한다. 일일 주문 처리 건수와 보유 배달기사가 많은 지사일수록 몸값이 높아지면서 대여금 규모도 커진다. 주문 건수가 많은 서울 도심 지사 하나를 두고 서로 웃돈을 주겠다며 ‘출혈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 등 대기업과 유통업체들이 배달대행 업체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높게 잡고 대대적인 투자를 벌이면서 시장은 더욱 과열됐다"고 했다.
대여금이 정상적인 회계절차를 거쳤을 지도 미지수고, 대여에 따른 이자를 제대로 받아 회계처리를 하는지도 불분명하다. 본지가 입수한 한 배달대행 플랫폼의 회계자료에는 대여금으로 유추할 만한 항목이 없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자금으로 대여금을 주고, 수수료 금액을 높이는 방식으로 이자를 회수하는 방식을 쓰기도 한다"고 폭로했다.
<3> 배달 플랫폼 옮겨가며 뒷돈 챙기는 대리점주들
수억원에 달하는 대여금은 어디에 쓰일까. 한 지역 배달대행 업체 대표는 "오토바이 리스비와 가맹점 프로모션 비용 등으로 활용한다"고 말했다. 배달대행이 필요한 음식점 영업·관리, 배달기사 영입에 쓴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여금을 갚지 않고 타 플랫폼으로 갈아타고 또 다시 대여금을 받는 등 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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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사처럼 건당 수수료로 수익을 얻는 지사들의 배달비 담합으로 자영업자(음식점주)들이 피해를 보기도 한다. 배달대행 업체 대표 김영익(가명)씨는 "서로 다른 플랫폼을 쓰는 같은 동네 지사끼리 배달비를 동시에 3200원에서 3800원으로 올리기로 약속을 하고 수수료 이득을 취했다"고 했다. 그는 "음식점주들 사이에선 ‘배달비가 왜 갑자기 오르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지만 지사장들이 ‘배달기사 모집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하면 더 이상 따질 수 없다"고 말했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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