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 중학생에 '조건만남' 요구하고 집단폭행
"촉법소년이 현 시대 맞는 제도인가" 불만 커져
최근 10년간 소년범 강력범죄 비중 28.9% ? 33.6%
전문가 "형사 미성년자 기준, 수십년 전 만들어져"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조정 고려 가능"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집단 폭행 등 일부 청소년들의 잔혹 범죄가 끊이지 않으면서 소년법·촉법소년 제도 등에 대한 폐지·개정 논란이 커지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을 교정하기 위해 제정된 소년법이 오히려 소년범의 방패가 되어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10대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처벌보다 교정·계도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반박도 있다. 전문가는 현재의 소년법이 소년범을 적절히 계도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일부 개정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조건만남' 거부하자 또래 집단 폭행한 중학생들
경북 포항북부경찰서는 여중생에게 '조건만남'을 강요하고 집단 폭행을 한 10~20대 가해자 8명 가운데 촉법소년 1명을 제외한 7명을 모두 구속했다고 지난 20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A(20) 씨로부터 시작됐다. A 씨는 평소 자신이 알고 지내던 여중생들에게 조건만남을 할 여학생을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지시를 받은 여중생 3명은 또래 여중생 B 양에게 조건만남을 강요했으나, B 양은 거부의사를 밝히고 이같은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조사가 시작되자 여중생들은 친구들을 불러 지난 7일부터 8일 오전까지 B 양을 집단폭행했다. A 씨 또한 폭행에 가담했고, 이로 인해 B 양은 심하게 다쳐 인근 중환자실로 이송돼 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B 양의 가족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B 양이 당한 폭행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면서 가해자들의 엄중한 처벌을 촉구했다.
자신을 B 양의 가족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촉법소년, 미성년자 가해자들의 성매매 강요와 집단 폭행으로 15세 여동생의 앞날이 무너졌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에서 "건물 옥상에서 동생을 세워놓고 집단폭행이 시작됐다"며 "그 장면은 영상통화와 동영상으로 생중계하듯 또래 친구들에게 실시간으로 유포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절한 동생 위에 올라타 성폭행을 일삼고 침 뱉기, 담배로 지지기 등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온갖 만행들을 일삼았다"라며 "말로만 듣던 이 촉법소년과 미성년자들의 처벌 수위가 현 사회, 현시대를 지켜줄 수 있는 제대로 된 제도가 맞느냐"고 공분을 터뜨렸다.
◆끊이지 않는 10대 강력범죄…10년 새 증가
10대 청소년들이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월에는 경기도 의정부 한 지하철 객실에서 중학생들이 노인의 목을 조르는 등 폭행하고 심한 욕설을 퍼붓는 일이 벌어지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해 7월에는 인천에서 한 초등학생이 다른 초·중학생 등 5명으로부터 약 2시간30분 동안 폭행을 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분을 사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촉법소년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현행법상 만 10~14세 미만인 형사미성년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촉법소년으로 분류되는데, 이들은 형사처분 대신 감호위탁·사회봉사·소년원 송치 등 보호처분을 받는다. 전과기록은 남지 않는다.
만 14세 이상부터 19세까지는 범죄소년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죄질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거나, 소년부에 송치돼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가운데 10대 청소년 범죄는 최근 10년간 점차 잔혹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14일 공개된 대검찰청 범죄분석통계에 따르면, 소년범죄 중 강력범죄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09년 28.9%에서 2019년 33.6%로 상승했다. 특히 미성년자가 저지른 성폭력 범죄의 경우 2009년 1574건에서 2019년 3180건으로 두배 이상 증가했다.
◆"촉법소년 제도는 1950년대 만들어져…절대적 기준 아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년법을 폐지하거나, 혹은 촉법소년 연령을 현재보다 더 낮추는 방식으로 개정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사원 최모(34) 씨는 "요즘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집단 폭행 사건이 벌어졌다는 뉴스가 나오다 보니 나중에 우리 아이도 그런 피해를 입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라며 "소년법이나 촉법소년 제도가 오히려 청소년들을 더 폭력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잘못을 한 아이들은 무조건 용서하는 게 아니라 엄하게 벌해야 교정도 할 수 있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대학생 이모(26) 씨는 "강한 형벌이 무조건 범죄율을 낮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요즘 소년 범죄는 정도가 심하다고 본다"며 "나이에 상관없이 죄를 저지르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는 게 공정한 사회"라고 강조했다.
반면 엄벌만이 능사인 것은 아니라는 반박도 있다. 20대 직장인 박모 씨는 "소년범에게 실제로 형사 처벌을 하더라도 나이를 고려하면 결국 다시 풀려나서 사회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며 "그때 제대로 교정되지 않은 상태라면 더욱 심각한 사회적 위협이 될 수 있지 않겠나. 결국 적극적인 계도와 교정이 중요하지, 단순 처벌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는 과거와는 변화한 국내 사회 환경을 고려하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소년법 개정을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촉법소년인 형사 미성년자 기준은 지난 1950년대에 제정된 것"이라며 "수십년 전 만들어진 기준인 만큼 반드시 현재의 사회적 상황과 부합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의 형사 미성년자 기준은 만 10~14세 미만으로 규정돼 있지만, 지금의 소년범을 적절히 처벌·계도할 수 없는 기준이라고 판단되면 1년 정도 더 낮추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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