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아교세포가 불필요한 시냅스 제거
성인 뇌가 기억력을 유지하는 이유
뇌 질환 치료 등에 활용 가능
[아시아경제 황준호 기자] 우리나라 연구진이 성인의 뇌가 기억력을 유지하는 원리를 밝혀냈다. 뇌 속 세포들이 작용하는 원리를 통해 기억력 유지의 원리를 밝힌 것으로, 향후 조현병·치매 등 뇌 질환 치료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과학기술원은 생명과학과 정원석 교수와 이준혁 박사과정 연구팀이 한국뇌연구원의 박형주 박사와 김지영 연구원 연구팀과 연구를 통해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뇌 항상성 유지 기전을 처음으로 밝혀,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공개했다고 5일 밝혔다.
우리 뇌에서 학습, 기억, 인식 등을 담당하는 해마에서 학습이나 기억을 형성하면 뉴런(신경세포) 간 또는 뉴런과 다른 세포 간 접합부위인 시냅스가 사라지고 새로운 스냅스가 생기는 '스냅스 재구성'이 일어난다. 다만 어떻게 스냅스가 사라지고 이런 스냅스 제거가 학습과 기억 과정 중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연구팀은 중추 신경계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신경교세포 중 가장 숫자가 많은 '별아교세포'가 뇌 발달 시기에 시냅스를 먹어서 없앤다는 정원석 교수의 선행 연구 결과(네이처, 2013년)에 착안해 연구를 진행했다. 이 결과, 성체 뇌에서도 별아교세포가 불필요한 시냅스를 끊임없이 제거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또 이 현상이 학습과 기억에 중요한 해마 내 흥분성 시냅스의 회로 유지를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연구팀은 시냅스에 산성화 감지가 가능한 현광단백질 조합(mCherry 물질과 eGFP 물질)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기반 시냅스 포식 리포터'를 개발해 이 같은 기억의 비밀에 한 발 더 접근했다. 개발한 형광단백질들은 중성(pH)인 환경에서 원래의 형광 강도를 유지한다. 하지만 세포 속 소화기관 같은 산성 환경에서 eGFP 물질은 빠르게 사라지는 반면, mCherry 물질은 천천히 분해돼 신호가 유지된다. 연구팀은 이를 흥분성 혹은 억제성 시냅스에 발현시켰고 이후 mCherry-eGFP로 표시된 시냅스들과는 달리 신경교세포에 의해 먹힌 시냅스는 mCherry 물질만의 단독 신호로 관찰됨을 확인했다. 특히 연구팀은 별아교세포가 성인 해마에서 시냅스를 지속적으로 제거하며 특히 흥분성 시냅스를 더 많이 제거하고 있는 것을 관찰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뇌의 면역세포라 불리는 미세아교세포보다 별아교세포가 주도적으로 정상 해마의 흥분성 시냅스를 제거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는 미세아교세포가 시냅스를 제거하는 주된 세포일 것이라는 기존 학설을 뒤집는 것이다.
이어 유전자 변형을 통해 별아교세포의 시냅스 제거 작용을 억제한 생쥐에서 해마 내 시냅스 연결 가소성과 기억 형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도 파악했다. 이는 불필요한 시냅스들을 별아교세포가 제거하지 않는다면 뇌의 정상적인 학습과 기억 능력이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성과를 통해 별아교세포에 의한 성인 뇌의 흥분성 시냅스 재구성이 정상적 신경 회로망 유지 및 기억 형성에 필수적인 기전이라고 제시했다. 연구팀 측은 "비정상적인 수준의 시냅스 수 변화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조현병, 치매 및 여러 형태의 발작과 같은 다양한 신경질환의 유병률과 연관성이 높다"며 "시냅스 수를 다시 정상으로 회복하기 위해 별아교세포가 시냅스를 먹는 현상을 조절하는 것이 이들 뇌 질환을 치료하는 새로운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준호 기자 reph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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