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십자비 모금 세금고지서와 유사
시민들 "꼼수 모금 아니냐" 분통
靑 청원 "적십자 지로용지 없애달라"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 60대 김 모 씨는 대한적십자사가 발송한 통지서가 세금납부 등 공과금 고지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 씨는 "지로용지가 세금고지서와 같아 무조건 내야 하는지 알았다"면서 "최근에서야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불우이웃에 대한 모금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국민이 납부해야 될 고지서 형태로 모금을 하고 있다는 게 황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매년 12월이 되면 대한적십자사의 성금 모금 통지서를 둘러싼 크고 작은 시비가 일어난다. 적십자사는 12월부터 1월까지 두 달을 '집중 모금 기간'으로 정하고 세금고지서와 유사한 형태로 된 지로용지를 발송한다. 발송 대상은 소득에 상관없이 만 25세 이상 75세 미만 모든 가구주다.
이 기간에 적십자사는 개인 1만 원, 개인사업자 3만 원, 법인 5만 원으로 책정하고 각 가정과 기업에 통지서를 보낸다. 이 지로용지는 세금이나 공과금 납부서와 같은 형태일 뿐 아니라 납부하지 않으면 2월에 2차 통지서도 발송된다.
하지만 지로용지 발송 자체가 개인 동의 없이 이뤄지고 공과금 고지서와 형태가 비슷해 반드시 납부해야 하는 세금으로 오인할 수 있다는 점이 지속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일부에서는 불우이웃을 위해 성금을 내는 것이 아닌 세금을 납부한다는 생각으로 돈을 내는 경우도 있다. 성금을 내지만 본인은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기부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시민들은 이와 같은 적십자사의 모금 행태는 전면 개선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30대 직장인 이 모 씨는 "우리 같은 젊은 사람들이야 고지서를 통한 납부 자체를 잘 안 하고 스마트폰을 이용하지만, 부모님 세대들은 여전히 지로를 통해 납부를 하신다"면서 "적십자 모금 고지서가 세금고지서와 사실상 똑같아 꼭 내야 하는 세금으로 인식해 돈을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금을 요청하는 것이라면 세금이 아닌 성금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밝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50대 직장인 박 모 씨는 "세금고지서와 유사한 형태로 모금을 하는 것은 잘못됐다"면서 "빨리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세금으로 착각해 성금을 낸 사람들이 환급을 요청하면 돌려줘야 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시민들의 불만이 이어지면서 이 같은 모금 형식을 수정하거나 없애달라는 취지의 청와대 청원도 올라온 바 있다.
한 청원인은 "누가 봐도 공과금 고지서와 똑같이 생겨 세금처럼 의무적으로 납부해야만 하는 혼란을 줄 수 있게 발송되는 데 대한 적십자사 적십자회비 지로용지 발송을 반대합니다"라며 적십자사의 지로용지를 통한 모금을 반대했다.
지난해 12월18일에는 한 고등학생이 변호사를 통해 '적십자사 회비 지로통지서'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 올해 3월에도 같은 내용의 헌법소원이 재차 제기됐다.
그러나 시민들의 불편과 달리 적십자사는 지로 통지서를 더 많이 보내고 있다. 2014년 1,704만 건 가량이던 발송 건수는 2018년 2,070만 건을 넘었다. 통지서를 제작하고 발송하는 비용도 2014년 28억 5,400만 원에서 2018년 6월 기준 36억 3,700만 원으로 늘었다. 지로용지를 보내는 데만 184억 5,300만 원이 들었다.
이와 관련해 적십사자는 홈페이지를 통해 모금에 대해 지로용지를 이용하는 점, 공과금 납부 오인 등에 대해 설명했다.
적십자사는 "지로 상단에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국민성금' 문구를 명시하여 세금으로 오인되지 않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지로로 모금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지로는 모든 은행의 지점 및 ATM기기 등을 수납 창구로 활용할 수 있어 편리하며, 참여자가 누구인지 쉽게 확인 할 수 있는 지급 결제 수단으로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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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모금 방식을 통한 논란이 계속되자 적십자사는 2023년부터 이 같은 모금방식을 폐지하기로 했다. 지난 10월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경서 전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이와 관련해 내부에서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늦어도 3년 안에 없애기로 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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