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주상돈 기자]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사실상의 '탄소세'를 도입, 이를 재원으로 '기후대응기금(가칭)'을 조성한다. 기금은 탄소중립 투자와 지출 뿐 아니라 공정전환 피해 산업 지역이나 노동자를 지원하는 데에 쓰일 예정이다. 탄소세의 세율이나 그 외 가격 수단인 부담금, 배출권거래제 등도 함께 검토하기 위해 정부는 내년 관련 연구용역에 착수할 방침이다.
7일 오전 정부는 서울정부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의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발표, 사실상의 탄소세 도입을 통해 탄소 가격부과 수단에 대한 가격체계 재구축 작업을 본격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는 이날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정책방향으로 ▲경제구조 저탄소화 ▲저탄소 산업생태계 조성 ▲탄소중립사회로의 공정전환과 함께 ▲탄소중립 제도기반 강화 등 '3+1 전략'을 공개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합동 브리핑에서 "탄소중립을 통한 지속가능경제로의 전환은 시대적·세계적 흐름"이라면서 "우리에게도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 과제로, 국익과 미래세대를 위해 상황적응보다 과감한 선제대응이 더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주요 선진국들이 기후변화에 따른 새로운 시장 선점을 위해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만큼 새로운 경제ㆍ사회 발전전략 수립을 통한 '능동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탄소중립에 속도를 내고 있는 미국과 유럽은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비중이 각각 3.7%, 5.0%에 그치지만 우리나라는 8.4%로 월등히 높다. 에너지원 구성 측면에서도 우리는 석탄발전 비중이 40.3%로 미국의 24%, 일본의 32%, 독일의 30% 등 주요국보다도 높다.
다만 정부는 우리나라가 온실가스 배출정점 이후 탄소중립에 소요되는 기간이 32년으로다른 국가들에 비해 촉박한 점, 제조업과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업종의 비중이 높은산업구조 등을 고려할 때 탄소중립 이행은 기업과 국민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우선 이를 위해 정부는 수입ㆍ지출 등 재정의 운영 과정에서 탄소배출을 억제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도록 탄소중립 친화적 재정 제도 개선에 나선다. 기후대응기금 조성이 골자인데, 관련 부처가 비슷한 성격의 기존 특별회계와 기금의 통폐합 협의를 우선 추진하고 기금의 안정적 수익원을 확보하며 운용 세부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연구 용역 등을 통해 탄소에 가격을 매길 수 있는 세제와 부담금, 배출권 거래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탄소 가격 체계도 재구축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정부 사업이 탄소 감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평가하고 그 결과를 예산서와 결산서에 담도록 하는 탄소인지예산제도 등 탄소의 환경적ㆍ경제적 가치를 고려한 재정 제도 도입도 추진한다.
추가 확보된 재원은 탄소중립에 투자하거나 탄소중립 전환 과정에서 피해를 본 산업과 지역, 노동자 지원 등에 지출하는 비중을 확대한다. 내년부터 탄소 중립 관련 예산과 세제 지원도 강화된다. 사실상 '탄소세'의 도입이 전망되는 대목이다. 앞서 내년 예산 국회 심의 과정에서 에너지 전환 지원, 탄소 저감기술 개발 등 관련 사업 예산은 3000억원 가량 증액된 바 있다. 이밖에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기업 활동에 세제 혜택을 줘 기업의 자발적인 탄소배출 감축 활동을 촉진할 방침이다.
정부는 녹색분야를 육성하기 위해 정책금융 지원도 늘린다. 정책금융기관의 녹색분야 자금지원 비중을 현재 6.5%에서 2030년 두 배인 약 13% 수준으로 확대하는 목표를 설정했다. 20조원 규모의 정책형 뉴딜펀드를 마중물로 핵심 기관들의 선도적 역할을 강화해 시중자금의 녹색투자 확대를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기업들의 저탄소 산업구조 전환을 뒷받침하기 위해 'RE100'(Renewable Energy 100ㆍ기업들이 필요한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이용하겠다는 글로벌 캠페인) 등 녹색분야 전환기업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을 지속해서 활용한다.
전환 과정에서 적응하지 못한 기업의 부실이 실물 경제로 전이되지 않도록 기업구조혁신펀드 확대를 통해 구조조정도 지원한다.
녹색금융의 판단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녹색 분류체계(taxonomy)를 마련하고, 기업의 환경 관련 정보가 폭넓게 공개되도록 공시의무를 단계적으로 강화한다.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 에너지효율 등 탄소중립을 위한 핵심기술 개발도 집중적으로 지원한다. CCUS 기술의 경우 2030년 산업계 적용 가능성을 기준으로 상용화 기술, 차세대 원천기술의 단계별 개발 로드맵을 수립한다. 핵심기술 분야 연구개발(R&D)의 방향성과 성과 등은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산하 '탄소중립 R&D 특위'를 통해 관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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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관련 정책과제들은 대통령 직속기구로 설치된 '2050 탄소중립위원회'에서 중점 논의해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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