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조달계약 백신유통 도매업체, 일부 실온 노출 적발
500만도즈 가운데 일부 품질문제 가능성…2주간 검사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 올해 인플루엔자(독감) 국가예방접종사업이 22일 중단됐다. 앞서 지난 8일부터 2주가량 12세 이하 어린이를 대상으로 먼저 시작했던 상황이었고, 이날부터 13~18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접종을 할 예정이었다.
국가 예방접종사업은 면역력이 낮은 어린이나 노인을 대상으로 무료로 진행하는 것으로, 정부가 그 해 유행시기에 맞춰 필요물량을 추산한 뒤 업체와 계약을 통해 확보한 백신으로 한다. 이 업체가 백신을 전국 각지로 운송하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백신을 규정대로 보관하지 않은 사실이 당국에 신고됐다. 전일 오후 신고를 접한 질병관리청은 몇 시간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전체 독감예방접종을 중단했다. 궁금한 부분을 문답형식으로 풀어봤다.
문제가 된 백신은 어느 정도인가
500만도즈(1도즈는 1회 접종량) 가운데 일부다. 올해 국내에 공급되는 모든 독감백신은 우리 국민의 57% 정도에 해당하는 2964만도즈인데, 이 가운데 1844만도즈가 공공사용 물량이다. 공공사용은 국가예방접종에 따라 대상이 된 6개월 이상~18세 미만 어린이, 만62세 이상 노인이 맞을 물량과 임신부ㆍ지자체 구매분, 국방부 사용분 등이다. 공공사용 물량 가운데 총약계약으로 1259만도즈를 의약품유통업체 신성약품과 계약해 공급받기로 했다.
이날부터 진행하는 13~18세 어린이의 경우 총약계약에 따라 공급된 1259만도즈 가운데 일부가 접종될 예정이었다. 접종시기에 맞춰 일선 지역ㆍ의료기관에 공급된 물량이 500만도즈이고 이 가운데 일부가 상온에 노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냉동상태로 보관해 운송해야 하는 걸 차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실온에 두거나 기준 온도를 지키지 않은 일이 있었고 이러한 현장이 촬영돼 신고접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실온에 노출된 게 왜 문제인가
백신 같은 바이오의약품은 품질관리가 중요하다. 도매업체가 배송할 때 지켜야하는 냉장온도 기준(2~8℃)이 따로 있다. 차량에 부착된 온도계를 통해 온도변화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는 것도 철저히 관리하기 위해서다. 상온에 노출될 경우 품질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 백신의 효능을 보이는 제품 내 단백질 함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긴데, 이 경우 백신효과에도 영향을 끼친다. 다른 부작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질병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전문가와 함께 살펴보기로 했다.
일부만 문제인데 왜 전체 접종을 중단하나
국민이나 일선 의료기관의 혼선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미 공급된 500만도즈 외 700여만도즈는 곧바로 공급은 가능한데, 현장에서 혼용해 쓸 가능성을 원천 배제하기 위한 선제적으로 과감한 조치를 취한 셈이다. 정부는 앞으로 2주가량 먼저 공급된 500만도즈에 대해 품질검사를 진행한 후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 그대로 쓸지, 폐기처분할지를 결정키로 했다. 12세 이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백신의 경우 이달 초 공급돼 있는 터라 당장 접종할 수는 있지만 안전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이번에 같이 중단했다.
며칠 전 접종한 아기는 문제 없나
기존에 공급된 백신은 이번에 문제가 된 백신과는 유통경로나 운송업체가 다르다. 지난 8일부터 시작한 6개월 이상 영유아나 12세 이하 어린이의 경우, 총약계약에 따른 물량이 아니라 기존에 각 의료기관에 공급돼 있는 백신을 접종한 후 해당 의료기관이 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이다. 2주가량 11만8000여명이 접종했는데 현재까지 이상사례가 보고된 적은 없다. 이번에 문제가 된 백신 500만도즈 역시 이제 막 공급되고 있었고 실제 접종이 이뤄지진 않았다. 당국은 생산과정에서 불거진 품질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예방접종 일정이 늦어지면 독감유행을 막지 못하는 건 아닌가
올해는 독감과 증상이 비슷한 코로나19에도 대비하는 차원에서 국가예방접종 대상을 넓히는 한편 평소보다 한달가량 빨리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10월 중순부터 시작했었다. 품질검사에 2주가량 걸리긴 하나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게 확인될 경우 곧바로 예방접종을 재개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보건당국은 전했다. 코로나19로 독감유행이 예년보다 덜 할 것이란 전망은 그나마 긍정적이다. 서로 거리를 두고 개인위생수칙 등을 잘 지켜 감염병 유행을 억제하는 데 좋은 환경이라는 얘기다. 남반구에선 우리에겐 여름인 6월부터 시작해 7~8월께 독감이 유행하는데, 올해는 독감유행이 과거보다 덜했다.
조사결과 품질문제가 있다고 결론이 나면 국내에 백신이 부족한 건 아닌가
가능성이 없는 얘기는 아니다. 최악의 경우 500만도즈 전량이 폐기처분된다면 이는 우리 전체 국민 가운데 10%에 해당하는 양이다. 독감 백신의 경우 매년 초부터 준비해 가을에 공급하는 등 필요하다고 당장 수급이 가능한 의약품이 아니다. 국내에서 생산해 해외로 공급하는 게 340만도즈(4가백신 기준) 정도인데, 이 역시 유니세프 등 국제기구나 개발도상국에 공급하기로 계약이 돼 있는 상태다.
다만 유료 접종대상인 성인의 경우 실제 접종률이 해마다 30~40%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국내에 백신이 부족해서 대란이 일어나거나 해외에서 비싼 값에 사들여올 일이 생길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유료접종분으로 있는 물량을 새로 사들여 어린이나 노인에게 접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경우 업체의 과실여부나 그에 따른 손실금 징구, 예산확보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정부는 "(해당 백신의) 폐기여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문제가 있는지를 품질검사 결과에 따라 확인하고 조치방안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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