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作은 미술계 관행·현대미술 추세?”…1·2심 판단 극명하게 갈려 미술계 관심
가수 조영남.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최석진 기자] 1억5000만원 상당의 대작(代作) 그림을 판매해 ‘사기’ 혐의로 기소된 조영남(75)씨에 대한 대법원 최종 판결 선고를 앞두고 28일 대법원에서 미술계 원로들이 참여하는 공개변론이 열린다.
조씨가 다른 사람을 시켜 그린 그림을 마치 자신이 전부 그린 것처럼 속여 판매했기 때문에 사기라고 결론 내리고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1심과, 단지 기술 보조자들을 이용한 정상적인 작품활동이라고 판단한 2심은 모든 면에서 완전히 상반된 결론을 내렸다.
때문에 대범원에서 무죄를 선고한 2심의 결론이 그대로 유지될지, 아니면 다시 결론이 뒤바뀔지 미술계와 법조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사기 혐의로 기소된 조씨 등의 상고심 공개변론을 진행한다.
오늘 공개변론에는 검찰 측 참고인으로 중견 화가인 신제남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이사장이, 조씨 측 참고인으로 표미선 전 한국화랑협회 회장이 참석해 각각 양측에 유리한 의견을 진술할 예정이다.
조씨는 2009년부터 평소 알고 지내던 화가 송모씨에게 1점당 10만원씩 돈을 주고 자신의 기존 콜라주 작품을 회화로 그려오게 하거나, 기존 자신의 그림을 그대로 그려오게 하거나, 자신이 얘기하는 아이디어를 듣고 그림을 그려오게 한 뒤 이 중 21점의 그림을 총 17명의 피해자에게 팔아 1억5355만원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조씨는 송씨와 다퉈 작품을 부탁하기 어려웠던 시기에는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석사 과정에 있는 A씨에게 같은 작업을 시키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기죄’ 유죄 인정, 징역형의 집행유예 선고한 1심=먼저 조씨에게 사기죄 유죄를 인정한 1심은 그림을 대신 그려준 송씨나 A씨를 단순히 기술 보조 역할을 맡은 ‘조수’로 볼 수 없고, 독립적인 ‘작가’라고 판단했다.
특히 송씨의 경우 미국 뉴욕 등지에서 20여년간 작품활동을 하면서 미술대전에서 수상한 경력도 있고, 100여차례 이상 전시회를 가졌던 직업화가인 만큼 작업의 숙련도나 예술적 수준면에서 오히려 조씨보다 월등히 뛰어난 수준으로 평가된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다.
때문에 조씨와의 관계를 노무 제공에 대한 보수를 지급하는 고용이 아닌 어떤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그 결과에 대해 보수를 지급하는 도급 관계로 파악해야 된다고 봤다.
또 조씨가 판매한 작품들이 제작되는 전 과정에 조씨가 참여한 친작(親作)인지 여부는 조씨의 그림을 구매하는 구매자들이 구매 여부나 가격을 결정하는데 있어 본질적 요소이기 때문에, 조씨 입장에서는 해당 작품이 전적으로 본인이 그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리 알려줄 의무가 있다고 봤다.
결국 그 같은 고지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 형법상 사기죄 성립에 필요한 부작위(무언가 해야 될 것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에 의한 기망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조씨는 재판에서 화투를 소재로 한 자신의 작품 활동은 전통적 의미에서의 ‘회화’와는 구별되는 현대미술의 한 장르인 ‘팝아트’ 내지 ‘개념미술’의 성격이 강하다고 주장했다.
작가가 주된 아이디어나 콘셉트만을 제공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표현작업은 고용된 여러명의 조수들이 맡아하는 제작방식이 현대미술의 주류적 흐름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조씨가 주장한 ‘팝아트’나 ‘개념미술’과 회화가 서로 양립 불가능한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달리 취급할 것도 아니라며 이 같은 주장을 배척했다.
조씨의 그림을 비싼 가격에 구매한 피해자들의 진술도 유죄 인정의 중요한 근거가 됐다. 실제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 대부분은 조씨가 그린 그림이 아니었다면 그림을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모든 면에서 완전히 다른 판단으로 ‘무죄’ 선고한 2심=위와 같은 1심 재판부의 판단은 2심에 이르러 거의 모든 면에서 뒤집혔다.
우선 2심 재판부는 화투를 소재로 한 그림의 아이디어는 조씨의 고유한 창작물이며 송씨는 단지 이를 작품으로 구현하기 위한 기술 보조, 즉 ‘조수’라고 판단했다.
실제 많지는 않았지만 조씨의 지시에 따라 송씨가 그림을 수정하기도 했다는 점도 근거가 됐다.
때문에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조씨의 지시에 따라 송씨가 노무를 제공하고 일정한 보수를 지급받는 고용관계로 봤다.
사기죄 성립을 위한 필수적 구성요건인 기망행위의 존재와 관련해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조씨가 구매자들에게 작품을 자신이 전부 직접 그린 것이 아니라고 고지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자연히 묵시적으로 속인 것으로도 볼 수 없다고 봤다.
이 같은 판단의 배경에는 작품이 조씨의 친작(親作) 여부가 그림을 구매할 때 구매자들이 고려한 여러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라는 시각이 있었다.
또 대다수 피해자들이 친작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조씨의 작품을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지만, 이들 구매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이 작품이 조영남의 작품인가’ 혹은 ‘이 작품이 조영남의 작품으로 시중에 유통되는 것인가’하는 사실, 즉 위작인지 진품인지였지 친작인지가 아닐 수 있다는 판단이다.
나아가 2심 재판부는 조씨가 주장한 대로 작품 제작에 조수를 고용하는 것이 현대미술의 현상 중 하나라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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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공개변론은 대법원 홈페이지, 네이버TV, 페이스북 라이브, 유튜브 등을 통해 실시간 중계될 예정이다.
최석진 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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