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험지' 골라 출마하는 정치인들
진보-보수 당적 가리지 않고 부산·경남·전남 등 출마
낙선도 명분만 충분하면 소중한 정치적 자산
당선 위해 정치 공학적으로 출마하면 오히려 독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21대 총선에서 민심이 여당에 압도적 승리를 몰아주며 국회 전체의석(300석)의 5분의 3에 해당하는 180석의 '공룡 여당'이 탄생하게 됐다. 당선인들은 각종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들에게 당선 소감을 밝히는 등 본격적인 의정 활동 채비에 나섰다.
반면 낙선인들은 개인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통해 낙선 인사를 올렸다. 이들은 이제 보궐선거 등이 아니면 공식적인 정계 진출이 당분간 어렵다. 그러나 정계 일각에서는 낙선도 명분만 충분하면 소중한 정치적 자산이라는 평가가 있다.
비록 낙선이지만, 당선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낙선 이후 보여지는 정치적 행보라는 분석이다. 자신이 내걸었던 공약, 내가 출마했던 지역구를 위해 어떤 공을 들이느냐 국민은 모두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 "한국 정치 밭을 더 깊이 갈겠다." 보수의 심장 '대구'로 향한 정치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이 지역에 처음 출마한 것은 지난 2012년 19대 총선이다.
그는 16대 총선부터 경기도 군포에서 내리 3선을 한 중진이었지만 한국 정치에서 지역주의를 없애겠다며 민주당 불모지인 대구에 출마했다.
당시 정계 관측대로 김 후보는 경북고 선배인 새누리당(미래통합당 전신) 이한구 후보와의 경쟁에서 패했다. 이한구 후보와 표차는 1만4천여표였다.
이후 2014년 6월4일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박정희 컨벤션센터 건립' 등 지역 맞춤형 공약 등을 준비하고 대구시장에 도전했지만, 보수 텃밭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새누리당 권영진 후보에게 패했다. 시장 선거 때 득표율은 40.3%를 기록했다.
두 번의 선거에 연거푸 진 뒤에도 김 후보는 지역을 떠나지 않고 주민들을 만나 대구 출마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했다.
이어 2016년 20대 총선에 다시 도전해 결국 그는 당선됐다. 대구에서 세 번째 도전 끝에 이룬 성과였다. 김 후보가 당선되면서 민주당과 그 전신이었던 정당은 31년 만에 대구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민심은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김 후보는 지난 16일 낙선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지역주의 극복과 통합의 정치를 향한 제 발걸음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다시 대구에 출마할 의사를 밝혔다. 이어 "다시 일어서겠다. 오늘은 비록 실패한 농부이지만, 한국 정치의 밭을 더 깊이 갈겠다. 영남이 문전옥답이 되도록 더 많은 땀을 쏟겠다"고 말했다.
◆ 김부겸·김경수·이정현 등 '험지' 출마…'낙선의 고배' 끝 당선
굳이 험지를 택해 낙선의 고배를 마시는 정치인은 김 후보가 처음은 아니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지난 2012년 19대 총선과 2014년 경남지사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한 끝에 2018년 지방선거를 통해 사상 첫 민주당 소속 경남지사에 당선됐다.
2012년 낙선 당시 그는 "짧은 선거운동 기간에 과분한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신 김해시민들에게 감사를 드린다"면서 "앞으로 김해시민들과 함께 부족했던 부분들을 채워나가겠다"며 다시 정치를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나타냈다.
특히 그는 "선거 기간중 자신은 승패에 관련없이 봉하마을을 지켜야 하는 운명"이라고 밝혀, 자신이 왜 경남에 도전해야 하는지 분명히 했다.
이번 총선에서 서울 영등포을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박근혜 전 정권 실세 이정현 후보는 2014년 7월30일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보수당 불모지인 전남 순천·곡성에서 당선돼 정치적 입지를 다지고 후에 당 대표에 올랐다.
그는 49.43%를 득표해 40.32% 득표에 그친 서갑원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후보를 예상을 뒤엎고 크게 이겼다. 1988년(13대 국회) 이후 광주·전남에서 보수 후보가 당선된 것은 처음으로, 호남 전체로는 1992년 양창식 전 의원(전북 남원), 1996년 강현욱 전 의원(전북 군산)에 이어 세번째로 18년 만이었다.
13대 국회의원 부산 동구 선거합동연설회를 마친 당시 노무현 통일민주당 후보가 자동차에 올라 지역구를 돌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당시 노 후보는 허삼수 민주정의당 후보와의 대결에서 승리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정치 1번지' 종로 버리고 부산으로 '바보 노무현'의 등장
낙선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진 뒤 대선 후보로 발돋움, 결국 대통령에 당선된 사례도 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존칭생략)은 1988년 13대 총선에서 부산 동구에 출마해 신군부 출신 허삼수를 누르고 당선됐지만, 1992년 부산 동구에 다시 출마했다가 민주정의당에서 민주자유당으로 당적을 바꾸고 나타난 허삼수 후보에게 패배했다.
그의 낙선 이유에 대해 일부에서는 1990년 1월22일 출범한 이른바 '3당 합당'에 반대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당시 노무현은 당 잔류를 선언하며, 민자당에 합류하지 않았다.
3당 합당은 당시 집권 여당 민주정의당과 제2야당 통일민주당, 제3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하고 민주자유당을 출범시킨 것을 말한다. 개헌저지선을 훌쩍 넘는 '공룡 여당'을 탄생시킨 이 통합을 비판하는 견해에서는 '3당 야합'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노무현은 "1990년 3당 합당 때 여당에 따라갔다면 국회의원이야 세 번, 네 번 하고 장관도 일찍 하고 도지사, 시장도 한번 지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떳떳하지 못할 것입니다. 적어도 잘못된 정치 풍토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것이 저의 큰 자부심이고 행복입니다."라고 말했다.
이후 1998년 '정치 1번지'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 당선됐지만 2000년 제16대 총선에 종로구 공천을 마다하고 부산 강서에 새천년민주당(더불어민주당 전신)후보로 출마했다.
노 후보는 '지역주의 타파'를 소리 높여 외치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상대 후보는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허태열 당시 한나라당(미래통합당 전신) 후보는 "살림살이가 전보다 좋아졌다고 생각하시는 분 계시다면 손 한번 들어봐달라"고 한 뒤, 누군가 손을 들자 "혹시 전라도에서 온 거 아니냐"고 말했다. 선거 초반 앞서가던 노 후보는 17.5%포인트 차로 크게 졌다. 부산에서만 세번째 낙선이었다.
낙선 후 그는 "부산사람들을 욕하지 말라. 지역주의는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그런 행보를 보고 사람들은 '바보 노무현'이라고 불렀다. 그를 대선 후보로 올리고 또 대통령으로 만드는 막강한 지지기반의 탄생이었다.
노무현의 지지자들 역시 서울, 부산, 경남, 전주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제16대 총선에서 그야말로 최고 스타는 낙선자 노무현이었다.
대통령 퇴임 후 그는 회고록을 통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지역주의와의 싸움과 기회주의와의 싸움, 이것이 정치하는 동안 제게 주어진 두 개의 큰 싸움입니다. 그래서 저는 '원칙과 통합'이라는 말을 계속하면서 대통령선거를 치른 것입니다. 저는 원칙에는 매우 까다롭게 매달리지만, 통합을 위해서라면 어떤 다른 가치도 희생할 수 있는 정치를 해왔습니다."
전문가는 험지 출마 등 정치인들이 자신의 소신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 정치적 계산에 따른 행보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 뜨는 뉴스
한 정치평론가는 "지역주의 타파 등 결과적으로 한국 정치는 물론 국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큰 뜻을 갖고 스스로 험지에 뛰어드는 건 좋다"면서도 "지역 유권자들과 민심을 거스르고 당리당략에 의해 오로지 정치공학적으로 험지에 뛰어들었다가 낙선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