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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악마를 만든 사회④]디지털 성범죄 특성 반영한 입법·일관된 법집행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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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유도수사·위장수사 허용 범위 확대해야”
“법제정보다 중요한 건 법집행”

[n번방, 악마를 만든 사회④]디지털 성범죄 특성 반영한 입법·일관된 법집행 필요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n번방 전원처벌 국회입법 촉구 민중당 국회 포위 정당연설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는 모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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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석진 기자] ‘n번방’, ‘박사방’ 등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을 이용한 성범죄의 실상이 드러나며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디지털 성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한 법률 제·개정 및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 현재 성범죄를 규제하고 있는 법률들은 강간, 강제추행 등 오프라인에서의 성범죄를 규율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들로, 온라인에서 자행되는 디지털 성범죄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전파 속도나 범위 등에서 훨씬 더 큰 위험성을 지닌 디지털 성범죄를 규제하는 법률을 신속히 재정비하고, 형량도 상대적으로 더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편 법의 제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엄격한 법의 집행이라는 점에서 현재 국내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위장수사 기법의 허용 범위를 확대해 검거율을 높이는 것이 범죄 예방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디지털 성범죄 특수성 반영하지 못 하고 있는 실정법 = 형법상 성범죄를 가중처벌하는 대표적인 특별법으로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 조항들이 기존 오프라인에서의 성범죄를 가중처벌하는 내용이며, 전화, 우편, 컴퓨터나 통신매체를 통해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영상 등을 전달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제13조(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나 카메라 등을 이용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하거나 촬영물을 유포시키는 행위를 처벌하는 제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정도가 그나마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이 있다.


또 최근 사람의 얼굴을 합성하는 '딥페이크(deepfake) 영상물'에 대한 처벌 조항이 신설돼 6월25일부터 시행되는 게 전부다.


그동안 불법촬영물을 판매하거나 유포시키는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만 존재했을 뿐, 이를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다운로드받은 사람을 처벌하는 규정은 없었는데 이번에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대표발의한 일명 ‘n번방 방지3법’ 중 하나인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에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됐다.


디지털과 관련된 대표적 법률인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역시 제70조에서 정보통신망을 통한 명예훼손을 가중처벌하고 있지만, 성범죄와 관련된 규정은 찾아볼 수 없다.


청소년 보호를 위해 청소년유해매체물 표시를 의무화하고(제42조), 청소년유해매체물의 광고를 금지하는 조항(제42조의2)이 있을 뿐이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역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오프라인에서의 성범죄를 가중처벌하고 있을 뿐,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 있는 조항은 아동·청소년을 이용한 음란물을 제작하거나 배포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제11조(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제작·배포 등) 정도다.


하지만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배포·제공하거나 공연히 전시 또는 상영한 자를 처벌하고 있을 뿐 범행 공간이 사이버 공간일 경우 가중처벌하고 있지는 않다.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는 성범죄 통제할 수 있는 입법 노력 필요 = 28일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현재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는 성범죄에 적용할 수 있는 법이 거의 없다”며 “사이버 공간을 통제할 수 있는 입법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n번방, 악마를 만든 사회④]디지털 성범죄 특성 반영한 입법·일관된 법집행 필요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

이 교수는 “지금 디지털 성범죄 같은 경우에도 형법에 적용되는 강간죄 수사하는 방식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며 “가령 의심만 든다고 개인정보를 확인할 수는 없는데 디지털이란 곳은 독특한 특성이 있지 않나. 굉장히 빨리 움직인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범죄처럼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가지고 충분한 요건 충족시켜 가지고 그러다 보면 전부 증발하고 없어지니까 뭔가 다른 디지털의 특이성에 맞춘 조항들이 필요한데 그걸 형법에다 집어넣겠느냐, 어디에다 집어넣겠느냐”며 “그래서 외국에서도 디지털과 관련된 특히 온라인 성범죄에 관해서는 따로 특별법으로 입법하려는 노력들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수사와 처벌을 위한 법률 제정뿐만 아니라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하는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 지원을 위한 법률 내지 제도 마련도 수반돼야 한다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이 교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이) 2차적인 재산상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불법 영상물의 삭제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는 방안이나 신상이 노출된 피해자들이 새로운 삶을 살며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서라도 새로운 주민번호를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외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성범죄 형량 현실화해야 = 백성문 법무법인 아리율 대표변호사는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 법체계 자체가 음란물의 유포나 판매에 대해 처벌이 가벼운 편”이라며 “가령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제작은 법정형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사형을 제외하면 살인죄와 마찬가지로 무겁게 처벌하면서도,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판매나 배포 행위는 법정형이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사기죄와 같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n번방, 악마를 만든 사회④]디지털 성범죄 특성 반영한 입법·일관된 법집행 필요 백성문 변호사

지난해 아동음란물 다크웹 사이트를 운영하다 적발된 손모씨가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2심에서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는데 그친 것 역시 이처럼 법정형 자체가 낮기 때문이라는 것.


백 변호사는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이라는 걸 알면서 소지한 경우 법정형이 고작 1년 이하의 징역”이라며 “미국 같은 경우 아동음란물을 소지했다가 15년의 징역형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사이버 공간에서 유포하거나 판매했다고 가중처벌하는 규정이 없다”며 “전체적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관해서는 법이 현실을 못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수정 교수 역시 현행법상 아동음란물에 대한 처벌 형량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외국의 경우 일반 성범죄(sex offence)와 아동 성착취(child exploitation)는 용어도 다르고 완전히 다른 범죄로 취급된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양자를 똑같이 취급하면서 음란물이라고 하니까 많은 음란물을 소비하고자 하는 n번방 가입자들은 자신들이 음란물을 봤는데 왜 이렇게 신상을 공개당해야 하느냐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우리 형법이 경합범(둘 이상의 범죄를 저지른 경우)을 처벌할 때 가장 중한 형의 2분의 1을 가중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더욱이 법정형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국의 경우 아동음란물에 대해서는 정말 무겁게 처벌을 하고 있다”며 “외국은 피해자가 10명이면 형량도 곱하기 10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가산이 안 되고 가장 중한 형의 2분의 1을 가중한 형량으로 처벌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형량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관된 법집행 중요·위장수사 허용도 검토돼야 = 법무법인 린의 구태언 변호사는 “아쉬운 건 지속적이고 일관된 법집행”이라며 “아동 성착취물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20년 전에도 아동포르노를 공유하는 로리타 카페가 있었다”고 말헸다.

[n번방, 악마를 만든 사회④]디지털 성범죄 특성 반영한 입법·일관된 법집행 필요 구태언 변호사

그는 “이번에 이렇게 일이 크게 터지고 주범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100만명을 돌파하면서 온 나라가 관심을 갖게 됐지만, 이럴 때만 관심을 갖지 말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엄정한 법집행을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어떻게 보면 형사사법 기관이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동안, 국가가 지속적이고 일관된 법집행을 하지 않고 방치함으로써 26만명이라는 (n번방) 입장자를 양산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고 꼬집었다.


구 변호사는 디지털 성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 중 하나로 비밀수사 내지 위장수사(undercover investigation)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범죄예방 효과를 위해 법제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법집행”이라며 “법정형을 강화해봤자 범인을 잡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비밀수사를 합법화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말했다. 범인을 더 잘 잡을 수 있게 해줘야 범죄를 방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


구 변호사는 “마약, 아동포르노 제작, 성매매 등은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수사기관의) 접근도 은밀해야 한다”며 “가령 경찰이 마약조직원으로 위장해 들어가는 경우 같은 언더커버(비밀리에 하는 첩보 활동을 의미)를 통해 합법적으로 상대방의 범죄 의사를 확인해서 검거 가능하게 법제도화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미국의 경우 수사관이 여고생을 가장해서 채팅방에 들어가 미성년자의 성을 매수하려는 남성들이 접근하도록 유인해 체포하거나, 경찰이 일부러 자동차 사고를 낸 것처럼 차를 파손한 뒤 공업사에 수리를 맡기고 견적서를 확인해 보험사기로 적발하는 식의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게 구 변호사의 설명이다.


이수정 교수 역시 디지털 성범죄에 한해서는 온라인 함정수사를 허용하자는 의견을 냈다.


그는 “수사 절차 면에서도 지침 같은 것들을 온라인에 적합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며 “외국의 경우 이미 온라인 함정수사 같은 수사기법이 널리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의 유도수사 방법은 범의(犯意) 유발이 아니게 해야 된다는 건데, 범의를 유발하지 않고 유도수사를 하려면 액티비티(activity. 움직임)가 있는 것을 알고 끼어들가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의 범인을 잡기 위한 유도수사 중 범죄를 저지를 의사가 없는 상태의 상대방이 새로운 범죄의사를 갖도록 만드는 형태의 함정수사를 위법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가령 마약을 사겠다고 속이거나 성매수자로 가장해 접근, 마약을 팔게 하거나 성매매를 하도록 유도하는 방식 등이다.


이 교수는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 함정수사는 어떻게 되느냐. 액티비티가 있는 여자 아이를 한 명 잡고, 그 여자 아이가 갖고 있는 고객명단을 갖고 수사를 하다 보니 여자 아이도 불법이 되는 식”이라며 “온라인 공간에 적합한 수사기법도 필요하고, 입증절차도 필요하고 다양한 게 필요한 만큼 온라인 공간에서만이라도 제한적으로 유도수사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채팅앱을 통해 경찰이 미성년의 여자 아이인 것처럼 가장해 접근하는 수사 방식을 허용하고, 이 같은 과정에서 확보된 증거의 증거능력도 인정하자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번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이 환기되고 그동안 방치돼왔던 법과 제도의 흠결이 채워져 가야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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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변호사는 “지금 중요한 건 26만명의 n번방 참여자를 다 잡는 게 아니라 일벌백계와 더불어 관련 제도들을 정비해서 다시는 이 같은 범죄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석진 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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