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황윤주 기자] "배가 아니다. 기름 나는 섬이다."
생김새는 배와 같지만 실은 자기 힘으로 항해하지 않고 바다 위에 떠 있는 '에너지 플랜트'(FPSO)를 이르는 말이다. FPSO는 한 곳에 20~30년간 머물면서 해저의 원유를 생산하고 하역한다. FPSO가 건조된 후 유전이 있는 장소로 이동할 때도 항해하지 않고 예인선에 끌려간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선박이 아닌 플랜트로 구분한다.
같은 용도지만 원유가 아닌 가스를 생산하는 설비는 LNG-FPSO(FLNG)라고 부른다. 한국 조선업계는 세계에서 발주하는 FLNG를 독점하는 나라 중 하나다. 특히 삼성중공업은 2010년 이후 전 세계에서 발주된 4기의 초대형 FLNG 중 3기를 수주했다. 나머지 1기는 대우조선해양이 수주했다.
현재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는 '모잠비크 코랄 술(Coral Sul) FLNG'를 한창 건조 중이다. 길이 439미터, 폭 65미터, 높이 38.5미터로 자체 중량 21만t 급의 초대형 해양 설비다. 정규 축구장(길이 105미터, 폭 68미터) 4개가 나란히 들어가는 규모다.
삼성중공업이 수행하는 공사 금액만 2조 8534억원(약 25억 달러)에 달한다. 이 어마어마한 플랜트에 들어가는 후판 전량을 이례적으로 단일 철강사가 공급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조선사는 주로 대형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철강재의 공급사를 다원화하는 전략을 펼친다. 원가 절감도 꾀하고, 공급 안정성 측면에서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중공업은 이번 프로젝트에 사용하는 후판 전량을 포스코에 주문했다.
포스코가 이번 프로젝트에 후판을 독점 공급한 배경은 특별한 협업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Alliance TFT'. 양사의 프로젝트 유관부서가 정례적으로 교류하면서 서로의 원가를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구성된 TFT이다.
해양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사안 중 하나는 '건조일정단축'이다. 건조 일정이 단축되면 그만큼 조선사의 원가가 절감된다. 그리고 조선사가 납기를 단축하기 위해서는 주요 소재인 철강재를 빨리 받아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세상에서 가장 큰 배'로 불리는 프렐류드 프로젝트 당시 포스코는 삼성중공업에 통상 5개월이 걸리는 강종을 3개월 만에 공급했다. 일반적으로 조선해양용 후판의 주문을 넣을 때 고객이 주문서를 작성해 포스코로 전송하면, 포스코는 주문서에 맞춰 순서대로 강재 생산을 설계한다.
포스코와 삼성중공업은 이 루틴을 과감히 뒤집었다. 우선 정식 주문서를 발주하기 전, 삼성중공업이 필요한 강재의 규격과 사이즈를 포스코로 먼저 보냈다. 포스코는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계-마케팅-생산 부서가 함께 가장 단기간에 최적의 효율로 생산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을 짰다.
그렇게 만들어진 주문서를 시작으로 주문-설계-생산-출하 프로세스를 가동했더니, 삼성중공업은 초고강도 해양구조용 강재를 종전보다 두 달 빨리 받아보게 됐다. 포스코 역시 제품 생산성을 눈에 띄게 높였다. 양쪽의 설계, 생산 방식은 전혀 건드리지 않으면서 삼성중공업의 니즈를 충족시키며 양사가 윈윈(Win-Win)하는 결과를 낳았다. 영리한 협업이었다.
코랄 프로젝트에서도 협업 스킬이 빛을 발했다. 최초 설계 당시 삼성중공업은 LNG 저장탱크의 외벽용으로 극저온용 3.5% 니켈 강재 사용을 검토했다. 그러나 3.5% 니켈강은 원료 수급 변동성과 가격, 긴 생산 기간 때문에 조선사 입장에서는 부담일 수밖에 없는 강재. 새로운 솔루션이 필요했다.
이에 포스코는 기존 니켈강을 극저온용으로 개발된 일반 탄소강종으로 대체하기를 제안했다. 선주를 설득하며 설계를 변경해야 하는 꽤 도전적인 이 시도는, 결국 두 회사의 긴밀한 협업 덕분에 관철됐다. 삼성중공업은 원가와 납기를 모두 줄이며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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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는 포항제철소에서만 양산하던 이 극저온용강을 광양제철소에서도 양산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회사의 WTP(World Top Premium) 제품인 극저온용강의 신수요를 개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황윤주 기자 h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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