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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산책] 둘리 비디오 - 기억 속으로 들어가 추억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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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간판만 남은 옛 비디오 대여점, 리모델링 통해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
연희동 포토존으로 입소문…대관 없을 땐 동네 이웃들 아지트로 변신

[인스타산책] 둘리 비디오 - 기억 속으로 들어가 추억을 만들었다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주택가 끝자락, 이미 십 수 년 전 자취를 감춘 비디오 가게의 간판이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진 = 김현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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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고요한 서울 연희동 주택가 어귀, 작은 작업실과 상점이 드문드문 있는 연희동 둘레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야트막한 언덕 위 궁동근린공원에 다다른다. 숨을 고르고 그 맞은편을 돌아보면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과 함께 오래된 간판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1990년대 비디오 대여점의 외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둘리 비디오’. 이곳은 비디오 테이프와 함께 사라진 예전 어느 시절로 안내하는 타임머신과 같은 공간이다. 한 때는 슈퍼마켓만큼이나 동네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비디오 대여점은 인터넷과 케이블 TV의 확산에 점차 줄어들다가 지금은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비디오 대여점이 ‘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추억의 장소가 된 지 오래여서 둘리 비디오의 낡은 간판은 ‘ 혹시 아직도 장사를 하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작은 부엌과 테이블이 다소곳이 손님을 맞는다. 빠르게 돌아가던 테이프 리와 인더 기계 소리와 함께 손님 영화 취향에 맞춰 작품을 추천하던 비디오 대여점 사장님은, 찾을 수가 없다.


[인스타산책] 둘리 비디오 - 기억 속으로 들어가 추억을 만들었다 낡은 간판만큼이나 폐허와 같았던 공간을 덜컥 인수한 이정호신지숙 부부는 업체를 배제하고 직접 리모델링을 하면서 이곳을 모두가 행복해 지는 따뜻한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사진 = 김희윤 기자

“좀 놀라셨죠” 인사와 함께 건네받은 명함에는 둘리 비디오 상호와 VHS 마크가 선명하다. VHS는 베타를 밀어내고 홈 비디오시장의 표준이 된 비디오 홈 시스템(Video H ome System, VHS)이 아니라 ‘ Very Happy Place’를 의미한다.


“원래는 술집을 해보려고 했어요. 저희 부부 지인들과 동네 단골 한두 명 오는 그런 술집이면 좋겠다 했었죠.” 이정호(38)·신지숙(42) 부부는 서로를 회장님, 사장님으로 부른다. 집 앞 2분 거리에 있는 낡은 비디오 가게를 인수한 부부는 이 공간을 술집으로 운영하고 싶었지만 잘 안됐다고 소개했다. “건물주가 식음료와 관계된 사업장 운영은 안 된다고 못을 박았죠. 그런데도 이 공간이 좋은 거예요.”


동네로 이사 오자마자 이 공간을 눈여겨봐뒀다는 부부는 어느 날 강아지와 산책 도 중 임대 공고문을 보고 바로 전화를 걸어 홀린 듯 계약을 했다고 털어놓는다. “이미 둘리 비디오는 여기 주변분들 사이에선 누구나 욕심내는 핫플레이스였어요. 개인 작업실로 쓰고 싶어 점찍어둔 분도 많았는데 저희가 덜컥 계약한 거죠.” 앞서 유명 카레 집 사장이 이곳을 카레 명소로 만들겠다는 생각에 4년 여간 임대하며 방법을 강구했지만, 건물주의 완강한 뜻에 한동안 창고처럼 쓰이다 부부에게 넘어왔다고 했다. 부부 역시 카페나 술집으로 운영할 생각이었지만 여의치 않게 되자 동네 사람들의 아지트이자 대관 공간으로 방향을 틀었다.


실내를 환히 비추는 통창 너머로 밖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몇 해 전 그룹 워너원의 ‘beautiful’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소개된 후 이곳을 ‘성지순례’하러 온 팬들의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졌다. 공간 자체는 차츰 유명해졌지만, 예전 임차인의 영업 실적은 영 시원찮았다. 부부는 이 난제를 공간 대여로 풀어 나갔다. 신 대표는 “임대료만큼 수익이 나는 건 아니지만, 독립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려는 분들이 종종 예약하시곤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주변에 공간을 선물할 수 있어 즐겁다고 덧붙였다.



[인스타산책] 둘리 비디오 - 기억 속으로 들어가 추억을 만들었다 건물주의 뜻에 따라 식음료와 관계된 수익사업이 어려워지자 부부는 공간 대관을 통해 문제를 풀어나갔다. 주위 시선 의식하지 않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아늑한 공간으로 최근에는 다양한 파티, 축하의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사진 = 둘리비디오 제공

집이나 식당이 아닌 도심 속에서 요리하고, 먹고, 마시며 주위 시선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독립된 공간에 대한 부부의 로망은 창고나 다름 없던 실내 곳곳을 따뜻한 온기와 손길이 녹아 있는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부모님 집 천장의 오래된 나무 장식은 버려지기 전에 남편의 손을 거쳐 세상에 하나뿐인 테이블이 됐어요. 손수 만든 나무 의자는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라 제가 직접 동대문시장에서 천을 떼다 맞춤 방석을 제작해 얹었고요.” 가구와 소품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들 부부의 설명엔 고생한 시간과 더불어 공간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난다. 문틀도 직접 가벽을 재단해 깊이감 있게 연출했다. 부부의 곡진한 마음이 죽은 공간을 살려낸 셈이다. 연말연시엔 대관 일정이 연달아 잡힐 만큼 이미 인스타에선 핫플레이스로 손꼽히고 있다.


대관 일정이 없을 때 둘리 비디오는 동네 이웃이 모여 차 한 잔, 밥 한 끼 나누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혼밥하는 이웃끼리 모여 유쾌한 점심을 즐기고, 급한 일이 생긴 이웃 견주가 키우는 강아지 맡길 곳이 마땅찮을 때 이곳에 맡겨두는가 하면, 저녁엔 함께 모여 영화를 보며 맥주 한 캔씩 즐기는 호사를 누리기도 한다. 이웃 간에 향유하는 연희동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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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산책] 둘리 비디오 - 기억 속으로 들어가 추억을 만들었다 그룹 워너원의 ‘beautiful’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뮤직비디오가 화제가 되면서 지금도 이곳을 '성지순례'하러 오는 팬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 = ‘beautiful’ MV 화면 캡쳐

무수한 영화들이 머물렀던 공간은 이제 이곳을 찾는 이들의 순간을 영화처럼 만들어 주고 있다. “건물주가 철거 비용 아끼려 내버려둔 간판이 이제는 하나의 유산이 된 것 같아요. 저희가 쓰기 위해 만든 공간이지만, 누군가에게 공간을 선물할 수 있는 특전도 누릴 수 있으니 수익에 대한 아쉬움보단 공간을 통한 만남에 만족합니다.” 허락되지 않는 욕심 대신 내실 있게 공간을 꾸려가는 부부의 겸허한 마음은 오늘도 연희동 끝자락을 따스하게 데우고 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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