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경쟁 불씨 살린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경쟁 정당 쪽에서 '명연설' 극찬한 이유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제가 꿈꾸는 보수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되며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하는 보수이다.”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2015년 4월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은 ‘원내대표 연설’의 교본으로 손꼽힌다. 여당 원내대표 연설에 야당이 ‘명연설’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은 것은 이례적인 모습이다.
유 원내대표는 보수의 새 지평을 열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증세 없는 복지가 허구라고 밝힌 대목은 당시 정치 환경을 고려할 때 파격이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의 문제점을 여당 원내대표가 인정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유 원내대표의 당시 연설문은 ‘새누리당판 제3의 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유 원내대표는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균형 발전을 추구하겠다”고 다짐했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2015 유승민 연설’이 여의도 정가의 관심을 받는 이유는 한국 정치의 근본적인 변화와 관련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 원내대표는 이날 정치와 경제, 사회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소신과 해법을 제시했다. 유 원내대표는 “(정부는) 재벌 대기업에 임금인상을 호소할 게 아니라 하청단가를 올려 중소기업의 임금인상과 고용유지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유 원내대표 연설은 정책 노선 경쟁의 불씨를 살리는 내용이었다. 당시 야당에서는 여당 원내대표 연설에 대한 극찬이 이어졌다.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은 “우리나라의 보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 명연설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석현 당시 국회부의장은 “유 원내대표의 연설이 개인의 정치적 메시지나 서민 코스프레로 끝나지 않고 새누리당 내에서 또 국회에서 진지한 논의로 발전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상식의 복원은 한국 정치의 과제이다. 여당 원내대표는 자화자찬에 집중하고 야당 원내대표는 원색적인 표현으로 정부 비판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장면이다.
감동도 없고 내용도 없고 대안도 없는 ‘메시지의 향연’이 방송 전파를 타고 전국에 전달되는 것은 ‘전파 낭비’일 수 있다. 상대 흠집을 내면 내가 올라설 것이란 착각에 빠져 네거티브 정치에 매몰되면 하향 평준화된 정치 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2015 유승민 연설’은 일반적인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과 달랐다. 상대 정책도 존중하면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법을 찾아나가려는 모습에 여론은 화답했다.
유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이 있은 지 3주 후인 2015년 4월29일 재·보궐선거. 서울 관악을, 인천 서·강화을, 경기 성남중원, 광주 서을 등 4곳에서 열린 4·29 재보선에서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3곳에서 승리하며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다.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 지역이 포함된 선거였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광주를 포함해 4개 지역 모두 패하는 참패를 경험했다. 새누리당은 기대 이상의 승리를 거두며 국정동력을 회복했다.
유 원내대표는 선거 다음날인 2015년 4월3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선거 결과에 대해 결코 착각하지도 자만하지도 않겠다”면서 “오히려 민심 앞에 더 낮은 자세로 국정 개혁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정치는 국민 마음을 헤아리는 작업이다. 국민이 정치인에게 어떤 모습을 기대할까. 겸손한 정치인, 노력하는 정치세력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 마련이다. 국민 지지가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 믿으며 초심을 잃는다면 민심은 떠나간다. 권력에 취한 이들만 모르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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