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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소리] 일회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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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소리] 일회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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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을 사 들고 왔습니다. 나무젓가락이 따라왔습니다. 젓가락은 넣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깜빡 잊었나 봅니다. 그런데 그 물건의 품질이 보통을 넘었습니다. 한 번 쓰고 선뜻 버리기 어려울 만큼 단단하고 매끈했습니다. 잘 씻어서, 쓰고 또 썼지요. 그러려고 그런 것도 아닌데 일회용 젓가락을 열 번도 더 쓰고 있습니다.


문득 의구심이 일어납니다. '일회용품. 한 번만 쓰는 물건이란 뜻의 그 말은 옳은 표현일까요.' 묻고 싶어집니다. '종이컵은 정말 꼭 한 번밖에 못 쓰는 걸까요. 일회용 면도기는 딱 하루밖에 못쓸까요.' 금세 고개를 젓게 됩니다. 요즘 우리 제조업의 기술수준을 생각하면 그 정도 물건 만들기가 오히려 더 어려울 것입니다. 일회용이라 불리는 용품 중에는 적어도 두세 번, 잘만 쓰면 일주일, 열흘도 쓸 수 있는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일회용'이란 명찰을 달고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망설임 없이 버려집니다. 생명 가진 것에 비한다면, 멀쩡히 살아있는 목숨의 이유 없는 강탈입니다. 무고한 처형입니다.


이름을 고쳐 불러보면 어떨까요. 이를테면 재질의 내구성이나 복원력을 따져서 이렇게! '3회용 종이컵' '사흘 칫솔' '일주일 면도기' '열흘 젓가락' '아홉 번 접착제' 등등. 그렇게만 해도, 참 많은 일회용품들이 장수를 누릴 것입니다. 안타깝고 억울하게 죽어가는 물건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 것입니다.


호칭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기능을 다했다, 못쓰게 되었다, 이젠 쓰레기다'라는 판단 역시 일방적 죽음의 강요입니다. 인간의 정년 실력과 능력의 종말이 아니듯이, 사물과의 이별 시점이 효용의 끝을 의미하진 않을 것입니다. '일회용'이란 인간의 편의를 위한 폭력과 방임의 브랜드란 생각이 듭니다.


쓰레기장으로 보내려는 물건들과 인터뷰를 해보십시오. 그것이 새것이었을 때를 떠올려보고, 사랑스러웠던 순간들을 되새기며 물어보십시오. '더 하고 싶은 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마지막 소원을 들어보십시오. 사형수에게도 최후진술 기회는 주지 않던가요. 미션만 주면 '멋지게 해내겠다'고 답할 것입니다. 낡은 물건의 간절한 희망이 고물을 보물로 만듭니다. 최후의 소원이 부활의 아이디어가 됩니다. 제가 가진 어느 디자인 서적에는 그런 물건이 수두룩합니다. 터진 축구공이 컵받침이 되고, 바람 빠진 농구공이 과일접시가 되었습니다. 버려진 욕조가 세련된 의자로 바뀌었습니다. 낡은 장화가 멋진 꽃병으로 부활했습니다.


셰익스피어 작품 속의 유명한 대사가 생각납니다. "세상 전체가 하나의 무대이고, 모든 남녀는 배우입니다. 모두들 등장과 퇴장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평생 여러 역할을 합니다." 사람만 그러할까요. 우리 인생의 연기를 돕는 '소도구'들, 기계와 상품들의 역할도 그만큼 다양하지 않을까요.


작고 하찮은 것일수록, 새로운 가치와 용도의 개발이 쉽습니다. 예를 들면 새옷에 붙어오는 각종 상표(tag)가 그렇습니다. 무심코 떼어서 버릴 수도 있는 그것들을 소중히 챙겨보십시오. 패션 제품의 이름표답게 세련된 디자인에 멋진 끈 장식까지 달려 있어서, 책갈피에 끼우는 '북 마커'로 으뜸입니다.


다 쓰고 난 유리병 역시 각별한 인테리어 소품입니다. 그 말간 속에서는, 신문에서 오린 사진 한 장도 빛나고 영화표 한 장도 돋보입니다. 메모 한 장이 시간의 박제가 되고, 우표 한 장도 퍽 근사한 그림이 됩니다. 사소한 물건들의 퇴장 시기를 늦춰주는 일이, 하나뿐인 지구의 수명을 늘립니다.


가치와 기능과 효용이 딱 하나뿐인 물건은 없습니다. 일회용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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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림 시인ㆍ서울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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