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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대법원 2013다61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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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이름은 김규수, 그의 고향은 군산이다. 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 인솔자는 1943년 1월 그를 야하타제철소로 데려갔다.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시설이다.


낯선 땅에서의 생활은 힘겨웠다. 도망을 치다 잡혀 7일간 매질을 당하기도 했다. 노역에 대한 임금은 전혀 없었다. 휴가나 개인 행동은 허용되지 않았다. 김씨는 일본이 패전한 뒤에야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김씨가 항변할 권리는 사라졌을까. 일본의 경제 제재 사태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한 의문의 시작이다.


[초동여담] 대법원 2013다61381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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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30일, 김씨가 일본으로 건너간 지 75년이 흐른 뒤에야 의문이 풀렸다. 대법원 2013다61381.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건 번호다. 김씨를 포함해 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결론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소송이 시작된 지 13년8개월 만에 최종 결론을 내렸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 의미는 남다르다. 한일협정은 불법적인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 청구 성격의 협상이 아니라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과 채무 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해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한일협정으로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최근 일본 외무성이 1961년 5월 회의록을 공개하며 반전을 꾀했지만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다. 대법원 판결문에는 해당 회의록 검토 내용까지 담겼다. 일부 교섭 담당자의 주장에 불과하고 해당 협상은 타결되지도 않았다는 것이 대법원의 설명이다. 특히 대법원은 일본 정부가 협상 과정에서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강제 동원 위자료 청구권이 한일협정으로 해소됐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법원의 판단이 일본을 불편하게 했다고 결론을 뒤바꿀 수 있을까. 삼권분립을 채택한 대한민국에서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대법원이 이미 배척한 회의록을 슬쩍 내놓으며 징용 문제가 해결됐다고 하는 것은 '얕은수'의 눈속임이다. 지금은 일제 식민 지배 시대가 아니다. 이른바 '토착왜구'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본의 억지 주장에 동조할 사람이 있겠는가.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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